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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은 '격차', 이재명은 '독도'… 여야 '백드롭'에 담긴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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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드롭'(뒷걸개)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여야 대표가 회의실이나 행사장에서 발언하는 동안 각 당이 내세우는 메시지를 한눈에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여야는 정책 비전부터 상대를 향한 비판까지 다양한 내용을 수시로 바꾼다. 때로는 의미를 담은 사진으로 시선을 집중시킨다. 최근 여야 신임 지도부가 출범하면서 '메시지 전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취임한 직후인 7월 25일 당 회의실에는 '국민과 함께 미래로 갑니다'라는 백드롭이 붙었다. 전당대회 내내 민심을 강조했던 한 대표 발언의 연장선이었다. 한 대표 취임 한 달을 맞아 백드롭은 '차이는 좁히고 기회는 넓히고'로 교체됐다. '1호 특위'로 출범시킨 격차해소특별위원회와 맞물린 메시지다. 지난 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회담에서 한 대표는 당시 민주당 백드롭('새로운 민주당, 다시 뛰는 대한민국')과 비교해 "전통적인 기준으로 보면 양당의 슬로건이 서로 바뀐 게 아니냐"고 언급했다.
한 대표가 지난해 12월 비상대책위원장으로 4월 총선을 진두지휘할 때 당은 백드롭에 주요 정책 공약을 부각했다. 2월 '김포시 서울 편입론'을 띄우자, 중앙당사 백드롭에는 목련 그림과 함께 '봄이 오면 국민의 삶이 피어납니다'라는 문구가 등장했다. 3월 27일 '국회 세종시 완전 이전'을 공약으로 발표한 날에는 '4월 10일 '여의도 정치'를 끝내는 날'이라며 문구를 당사에 내걸었다.
민주당은 최근 윤석열 정부를 향해 비판 메시지를 백드롭에 주로 활용하고 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응급실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민주당은 지난 9일 최고위원회의 백드롭 문구를 '응급실 뺑뺑이 정부는 왜 있습니까?'로 교체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회의에서 "정부·여당이 자존심보다는 국민 생명을 지킨다는 자세로 임해달라"며 의료대란 해결을 촉구했다.
'독도 지우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등 윤석열 정부를 향한 친일 공세도 백드롭을 통해 부각했다. 독도 조형물 철거 문제와 관련해 '독도 지우기 진상조사단'을 발족한 지난달 26일 국회 민주당 회의장에는 독도 사진이 배경으로 붙었다. 지난해 7월, 민주당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메시지로, 이순신 장군 동상 사진을 활용했다. 당시 백드롭에는 '국민 안전 수호,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 반대' 문구가 있었다.
슬로건 대신 특정인의 과거 발언으로 백드롭을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2020년 김종인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이 대표적이다. 당시 민주당은 기존 방침을 뒤집고,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 공천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김 비대위원장은 "민주당은 (재보선 공천을 위해) 2015년 문재인 대통령이 당대표 시절 만든 소위 '문재인 당헌'을 뒤집으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비대위원장 뒤로 민주당을 상징하는 파란색 글씨로 2015년 문 전 대통령이 재보궐선거 책임이 있는 정당은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로 했던 발언이 등장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문재인 정부가 22번째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상황에서, 여당이던 민주당 의원이 TV 토론에서 "그렇게 해도 안 떨어져요. 집값"이라고 언급해 논란이 된 발언을 백드롭에 담았다. "부동산이 안정될 것"이라는 정부 측 발언 아래 '새파란 거짓말'이라는 문구가 들어간 백드롭도 있었다.
하지만 상대 정당을 헐뜯거나 정쟁에만 매몰된 메시지를 과도하게 활용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사회 전체적으로 정치에 대한 신뢰가 낮은 상황에서, 정치권 스스로 국민들의 불신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백드롭은 각 당이 집중하고 있는 주제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때 효과적"이라며 "오히려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을 얘기하고, 공세에만 메시지가 쏠리면 국민들의 피로감만 유발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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