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최근 북·중보다 북·러 관계에 방점
중국 “실체없는 억측”이라 부인하지만
‘국익 중시’ 외교, 양국거리 더 벌어질 것
2000년대 초 평양에 회담하러 갔을 때 일이다. 금요일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안내 참사가 월요일 아침 다리를 절며 고려호텔에 나타났다. 다쳤냐고 물으니 ‘토요일 오후 중국 대사관과 축구 시합을 하다가 부상당했다’고 했다. 사회주의 혈맹 국가인 중국과의 친선경기는 살살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중국과의 경기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열을 올렸다. 그러면서 중국은 틈만 나면 우리 공화국을 간섭하고 통제하려고 한다며 대외정책에서 주체사상을 강화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당시는 중국에 대한 북한의 불만이 이해되지 않았고 남측 사람 앞에서 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추측까지 했다. 유엔에서 중국이야말로 러시아보다 북한을 지지하는 최고의 후원 국가인데 왜 불만을 갖는지 알 수 없었다.
지난 5월 김정은이 러시아의 전제군주(autocrat) 푸틴을 '가장 진실한 지도자'라고 평가하는 것을 보고 20년 전 안내 참사의 발언이 떠올랐다. 5차례 북·중 정상회담을 한 시진핑 주석보다도 푸틴이 우위라고 중·러 양 지도자를 공개적으로 비교한 것은 전 세계 지도자 중에서 김정은이 최초다. 최근 북·중 관계의 이격(離隔)을 판단할 수 있는 핵심 요점이다.
린젠(林剑)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7월 초 북·중 이상설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일부 한국 매체가 북·중 관계에 대해 '실체 없는 억측'과 '과장된 선전'을 하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표출했다. 그러면서 "중조(中朝)는 산과 물이 이어진 이웃으로, 줄곧 전통적 우호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단골 멘트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북·중 관계의 간극이 벌어지고 있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최근 중국 정부가 자국 여자 프로농구 리그에 진출한 북한 선수가 이적 직후 급히 귀국했다는 보도에 대해 이례적으로 "대북 제재 이행"을 언급했다. 두 달 전만 해도 북·중 간 이상기류 조짐을 공식 부인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10만 명에 달하는 북한 근로자의 조기 출국 압박부터 양국 기념행사에 참석자 수준이 낮아졌으며 우호 관계를 강조하는 발언도 없다. 다롄(大連)의 시진핑·김정은 정상회담 기념 동판도 사라졌다. 북한은 지난 5월 하순, 4년 5개월 만에 서울에서 열린 한일중 정상회의에서 한반도 비핵화가 거론되자 이례적으로 중국까지 싸잡아 비판했다. 지난 6월 푸틴과 김정은이 북·러 포괄적 전략 동반자협정을 체결하여 군사동맹을 복원하면서 북·러 관계는 최고조에 달했지만 북·중 관계는 정상 궤도를 이탈했다. 대북 제재에 시달리는 평양은 경제적 지원은 하지 않고 종속적 입장만 고수하는 베이징과 소원해질 수밖에 없다.
북한은 중·러를 사이에 두고 '시절인연(時節因緣)'에 따라 좌우를 오가는 시계추 외교를 해오고 있다. 북한은 중·러와 연대하여 한미일에 대응하는 신냉전 구도를 형성하는데 주력했다. 반면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불량국가' 취급을 받는 북·러와 손잡고 한미일에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 더 이상 '유효하지도 현명하지 않은 시대착오적 외교 방식'이라는 판단이다. 특히 베이징은 북·러의 군사 결탁으로 동아시아판 나토(NATO)가 형성되면 대만 흡수 통일이 어려워질 것을 우려한다.
중국의 북한에 대한 시각도 이중적이다. 중국은 북한 부담론(liability)과 북한 역할론(role player) 사이에서 시기별로 유연하고 모호한 입장을 견지해 왔다. 북한이 미국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몸값이 올라가면 북한을 긍정적으로 관리하고 평양의 요구 사항을 수용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북·중 관계는 외부 시각과 달리 '특수한 보통 외교관계'에 불과하다. 냉엄한 국제정치에서 국익은 최우선 기준이고 혈맹, 이념 등은 부차적인 잣대다.
북·중 간 이격은 좁혀지기보다는 더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서로 국익이 다르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국제정치의 변동성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일은 국익 수호에 중요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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