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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원 체불에 고작 8만9000원 받기도...사업주 '버티기', 제도가 뒷받침"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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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에서 전기기사로 일하는 A(66)씨는 2016년부터 6년간 일한 직장에서 2020~2022년간 연장근무 수당 등 약 1,000만 원을 받지 못했다. 2년 전 퇴사한 그는 임금이 체불됐다며 홀로 입증 자료를 만들어 관할 지방고용노동청에 3차례나 진정했다. 그러나 근로감독관은 '200만 원 받고 합의하자'고 제의했다. 이를 거절하고 사업주를 법정에 세우려 했으나 검찰은 지난달 28일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사건을 무혐의로 종결했다. 사건 종결 후 사업주가 입금한 돈은 단돈 8만9,000원. A씨는 "근로기준법을 어긴 사측이 처벌받길 원했다. 나처럼 당하는 사람이 없으면 좋겠다"며 억울해했다.
A씨 사례는 경제규모 세계 14위인 한국의 체불 임금 규모(지난해 1조7,845억 원)가 경제규모 1위인 미국의 7배, 4위인 일본의 10배에 달할 정도로 막대한 이유를 설명한다. 노동자는 스스로 임금 체불 사실을 상세히 증명해야 하는 반면 사업주는 노동자가 주장한 체불 임금 전체 액수를 물어주거나 중한 처벌을 받는 경우가 드물다. 사업주 입장에선 일단 끝까지 버텨 보는 게 이익이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 일성으로 임금체불 근절을 선언한 가운데, 정부는 올 추석을 앞두고도 임금 체불을 대대적으로 단속 중이다. 그러나 사후 단속은 매년 명절 및 연초마다 반복된 연례행사일 뿐, 임금 체불 근절이라는 목적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4일 한국일보와 만난 하은성 노무사는 A씨 사례를 들며 "노동자를 주로 대리하는 노무사의 사건 대부분에 임금 체불 문제가 끼어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체불 단속을 두고 "소방관들이 전국을 돌며 불 끄러 다니는 격"이라고 했다. "이미 발생한 임금 체불 피해는 회복이 어렵다"고 말한 그는 임금이 체불된 뒤에 사업주를 잡을 것이 아니라, 임금이 체불되기 전에 예방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 소속의 하 노무사는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 문제, 상시근로자 수를 축소해 근로기준법 적용을 회피하는 문제 등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고 있다. 지난달 구독자 146만 명인 한 유튜버의 매니저로 일하던 B씨를 대리해 '온라인 영상 편집·기획에 종사하는 노동자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 받아야 한다'는 판단을 고용노동부로부터 끌어낸 바 있다. 이는 유튜브 채널에 고용된 사람도 임금을 받는 노동자임을 증명한 국내 첫 사례였다.
하 노무사는 사업주들이 노동자에게 제때 임금을 안 주는 근본적인 이유는 벌칙 수위가 낮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선 형사 처벌의 경우, 근로기준법에 따라 임금 체불이 확인된 사업주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2005년 근로기준법을 개정하면서 ①임금체불을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했다. 당시 임금 체불의 빠른 해결을 위해 도입됐으나 뒤늦게 밀린 임금을 주기만 하면 법 위반 사실은 '없던 일'이 된다. 하 노무사는 "노동자 입장에선 체불 임금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업주와의 합의에 나서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A씨 사례처럼 근로감독관이 개입해 사업주와의 합의를 유도하는 일이 횡행한다.
②사업주가 노동자에게 일을 시키고도 돈을 안 줬다는 고의성을 노동자 스스로 입증해야 처벌할 수 있다는 점도 노동자에게 불리한 요소다. 하 노무사는 "특히 연장근로의 경우 △사업장에서 일한 증거 △가시적 성과물 등 잔업 증거 △잔업이 비자발적이라는 증거까지 모두 갖춰야 해서 매우 어렵다"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는 "임금체불을 무조건 형사 처벌로 다스릴 경우 근로자는 별도 민사 소송으로 체불 임금을 해결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노동자의 권리 구제가 오히려 어려워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노동계는 이를 고용부의 직무 유기로 보고 있다. 막대한 규모의 임금 체불이 상시 발생하고 있는 것은 정책 실패의 방증이라는 견해다.
임금이 체불돼도 재직자는 이자 한푼 못 받는 규정도 사업주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제도로 지목된다. ③임금 지급이 밀린 사업주에게 연 20%의 이자를 물도록 하는 지연이자제의 적용 대상이 퇴직자로 한정돼 있다. 재직 중인 노동자의 임금이 밀렸을 땐 별도의 지연이자를 붙이는 규정이 없다. 노동자가 밀린 임금을 달라고 요구하고 사업주에게 이를 강제하려면 일단 퇴직을 해야 실효성이 있는 셈이다.
노동·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5월 31일~6월 10일간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22대 국회가 직장인들을 위해 추진해야 할 최우선 노동 정책'을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87.3%가 체불 임금의 지연이자제를 재직자를 포함한 모든 임금 체불 대상에 적용해야 한다고 답했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도 지난 6월 이런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해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회부돼 있다.
이처럼 임금 체불의 사전 예방을 소홀히 한 결과는 고용노동부 통계로 나타나 있다. 고용부가 2011년부터 작년까지 집계한 자료를 보면 전국 임금 체불금액은 13년간 매년 1조 원을 넘었다. 올해는 처음으로 상반기에만 1조 원 이상을 기록했다.
하 노무사는 무엇보다 현행 제도에 뚫린 구멍을 막아야 임금 체불을 미리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체불 예방에 실패한 정부는 사후 제재를 한다면서 모든 노동 행정력을 동원하지만 중요한 것은 예방"이라고 강조했다.
핵심은 '실효성 있는 제재'다. 대표적으로 '배액배상제'를 들 수 있다. 사업주가 밀린 임금의 2배를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일종의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다.
고용노동부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에 실효성이 적다며 부정적이다. 근로자가 생계를 유지하며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하고, 소송을 해도 재산 상태가 좋지 않은 사용자를 상대로 체불임금 외 손해배상까지 받아내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 노무사는 배액배상제가 실현되면 '일단 버티고 보자'던 사업주들이 법을 지켜 임금을 지급하는 사례가 늘 것이라고 설명했다. "체불임금을 주지 않고 버티는 것보다 임금의 2배나 되는 돈을 지급하는 게 훨씬 손해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기업들이 임금 체불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막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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