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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 오독을 막는 통계학

입력
2024.09.04 16:00
수정
2024.09.04 18:37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197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당시 취재진들이 접근 통제선 외곽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AP

197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당시 취재진들이 접근 통제선 외곽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AP

2016년 5월, 서울 강남역에서 20대 여성에 대한 ‘묻지마 살인’이 벌어지는 등 혐오 범죄가 사회 이슈로 떠올랐다. 워싱턴 특파원이던 기자는 ‘정상 사고’(Normal Accidents) 이론으로 명성을 얻은 찰스 페로(1925~2019) 미국 예일대 명예교수에게 의견을 구했다. 구순을 넘긴 학자는 솔직했다. 사회 급변에 따른 범죄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곱씹어볼 조언을 내놨다. “이 문제는 주요 국가가 공통으로 경험하고 있지만, 국가별 대응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 ‘정상 사고’는 원전 같은 복잡계에서는 작은 실수가 겹쳐 초대형 인재가 될 수 있으며, 100% 예방은 불가능하다는 이론이다. 페로 교수는 1979년 3월 펜실베이니아 스리마일 원전 사고 후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냉각장치 파열에 따른 노심용융으로 핵연료가 유출된 미국 최악의 원전 사고였다. 카터 대통령은 재발 방지를 약속하며 페로 교수가 포함된 조사단을 보냈다.

□ 현장에선 사소한 잘못과 연속된 불운이 확인됐다. 필터의 불순물로 냉각수 공급이 멈추며 시작됐다. 종종 발생했던 일로, 비상 펌프 작동으로 해결되곤 했다. 다만 당일에는 보수 작업으로 펌프가 잠겨 있었다. 잠긴 밸브를 즉각 열 수 있었지만, ‘잠김’을 알리는 계기판 위에 우연히 점검 기록표가 놓이면서 아무도 펌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사고는 그렇게 확대됐다. 페로 교수는 ‘복잡계의 사고 확률을 낮추려면 평소에는 복잡성을 낮추는 ‘분산화’가, 사고 대응에서는 집중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 분산과 집중의 적절한 조화. 양립이 어려운 제안에는 민심 데이터 사용법이 담겼다. 다수 의견이 집중되는 평균, 데이터의 극한 정도를 보여주는 분산을 반드시 함께 살펴야 한다는 얘기다. 안타깝게도 대통령실과 야당은 각각 평균과 분산에만 매달린다. 응급실 가동률에 변화가 없다며 다급한 소수 사례는 외면된다. 야당은 계엄령 의혹, 독도 포기 등 평균적 인식과 괴리된 주장을 내놓는다. 대통령의 낮은 인기에 편승해 ‘삼인성호’를 노리는 것이라면 부질없다. '똑같은 어려움에도 몇몇 국가는 효과적으로 대응한다’는 생전 노교수의 지적이 우리에겐 통하지 않는 모양이다.

조철환 오피니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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