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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습격한 '들개'라 낙인 찍혔지만.. 바라는 것은 조용한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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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안타까워하며 무사 구조를 기원하던 TV 속 사연 깊은 멍냥이들.
구조 과정이 공개되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지금은 잘 지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가족을 만났다면 어떤 반려생활을 하고 있는지,
보호자와 어떤 만남을 갖게 됐는지, 혹시 아픈 곳은 없는지..
입양을 가지 못하고 아직 보호소에만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새 가족을 만날 기회를 마련해 줄 수는 없을지..
동물을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이라면 당연히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며 궁금해할 것 같습니다.
궁금한 마음을 품었지만 직접 알아볼 수는 없었던 그 궁금증, 동그람이가 직접 찾아가 물어봤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편견을 갖고 이 친구를 바라봤을지 모르겠어요.”
동물자유연대 위기동물대응팀 송지성 팀장은 2년 전인 2022년 1월의 그날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시 부산에서 구조 요청을 받은 송 팀장은 조금 긴장했었다고 합니다. 그가 현장으로 출동하기 받았던 정보를 요약하면 이랬습니다.
‘부산의 한 공단 일대에서 들개 무리가 나타나 고양이들을 잡아먹고 있다.’
사람과의 접점이 없고, 야생화된 들개는 보통 낯선 사람을 향해 공격성을 먼저 보이기 쉽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송 팀장과 구조팀 역시 조금은 긴장했습니다. 평소에 준비하던 보호장구도 더 철저히 준비하기도 했었죠.
그러나 막상 구조에 성공하고 만난 들개는 걱정과는 정 반대였습니다. 갑작스럽게 포획틀에 갇혔을 때 당황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펄쩍펄쩍 뛰어오르긴 했지만, 흥분하지 않고 진정하도록 시간을 주자 들개는 포획틀 구석에서 얌전히 앉아 있었습니다. 송 팀장이 다가가 쓰다듬어줘도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사람의 손길을 익숙해하진 않는 것 같았어요. 그러나 두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해서 무조건 다 공격성을 드러내는 건 아니라는 것도 깨달은 구조 사례라고 해야 할까요.
동물자유연대 송지성 위기동물대응팀장
들개는 구조 이후 2개월 만에 동물자유연대 온센터에 입소했습니다. 다행히 건강 상태는 큰 이상이 없었습니다. 구조 상황을 전달받았음에도 여전히 활동가들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에게는 공격성을 안 보일지 몰라도 혹시 다른 동물에 대한 공격성이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됐죠. 그런데, 의외의 상황이 반복됐어요.
동물자유연대 이민주 온센터 돌봄활동가
녀석은 아무도 위협하지 않았습니다. 산책을 나갈 때도, 먹을 것을 먹을 때도 함께 지내는 동물들과 경쟁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선호하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이 활동가는 “이 친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조용한 평화’일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그래 이 친구의 이름은 자연스레 ‘평화’로 정해졌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의문이 남습니다. 평화는 구조되기 전까지만 해도 떠돌이 개 무리들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다른 개와의 교류를 썩 즐기지 않는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는데요. 2년 가까이 평화를 지켜본 이 활동가는 “무리 생활을 하는 것도, 당시 길거리에 놓인 평화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생존의 수단이 아니었다 싶다”며 “평화가 원하는 것은 오히려 ‘조용한 자유’인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방송을 통해 짧게 보인 모습들과는 달리, 평화는 정말 혼자만의 시간을 원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평화에게 주어진 대형견사는 꽤 넓은 편이었지만, 평화가 지내는 곳은 구석진 공간뿐이었습니다. 마치 ‘건드리지 않으면, 나 또한 여기서 나가지 않겠다’라는 뜻처럼 보였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지금 평화는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조건에 갇혀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평화의 곁에는 수북이 쌓인 밥그릇이 있었지만, 평화는 전혀 관심조차 두지 않았습니다. 그걸 보니 한 가지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구조 당시에도 평화는 길가에 있었던 먹이에 특별히 욕심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생존을 위한 정도의 먹이만 먹어도 되고, 다른 존재와의 소통도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굳이 나서지 않는 모습을 보니, 평화는 어쩌면 아직도 ‘생존의 조건’ 이외에는 다른 소통 방식을 배워본 적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어색한 만남이 계속되던 순간, 이 활동가가 무언가를 갖고 들어오자 평화의 눈빛이 활기차게 바뀌었습니다. 벌떡 일어난 평화는 이 활동가의 곁으로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목줄을 전혀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간식을 주려고 곁에 다가갔을 때도 슬슬 피하던 평화가 사람의 곁을 거부하지 않는 유일한 순간이었습니다.
산책을 나가자 평화의 꼬리가 한껏 올라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원래 이렇게 활발한 친구였나 싶을 정도로 잰걸음으로 나가다가 냄새를 맡고, 가고자 하는 방향을 스스로 정하는 모습이 천상 반려견이었습니다. 목줄을 잡아당기거나 돌발행동도 없이 스스로 원하는 바를 찾아 걷는 모습이었습니다.
평화가 선택한 산책 장소는 인적이 드문 물가였습니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 이외에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평화로운 곳. 어쩌면 여기서 어떤 자극도 없는 생활을 바라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고요했습니다. 이런 평화를 위해서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과 만나는 게 처음인 친구예요. 사람이 주는 밥을 먹거나, 사람의 손길을 느껴보는 등 모든 게 처음인 친구죠. 그러다 보니 활동가나 봉사자님들이 찾아와도 먼저 반기거나 이런 걸 기대하기는 좀 어려워요. 단 하나, 산책 나갈 때만 제외하고요.
그러니 입양을 희망하는 분들이라면, 평화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주셨으면 좋겠어요. 굳이 바깥에 나가서 노는 기회를 만들거나 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아요. 그런 외향적인 것보다는 가정에서 점잖게, 조용한 환경이 갖춰진 곳이라면, 평화만의 공간을 존중해 주는 분이라면 안정감을 느끼고 사람에게 다가올 것 같아요.
동물자유연대 이민주 온센터 돌봄활동가
공존을 위한 규칙이 없는 야생의 일 때문에 ‘사나운 개’로 재단당하기 일쑤인 평화와 같은 떠돌이 개들. 그러나 이 문제는 사실 사람들이 버린 유기견이 근본 원인입니다. 그 문제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라도 부쩍 늘어난 떠돌이 개는 분명 사람의 손으로 줄여야 합니다. 송지성 팀장은 “떠돌이 개가 야생화되면 고양이뿐 아니라 다른 야생동물도 결국 피해를 입을 것”이라며 “개는 사람에게서 보호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확실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사람이 져야 할 또 다른 책임은 바로 평화처럼 구조된 친구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어주는 것일 겁니다. 사람에게 곁을 잘 주지 않는 평화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향해 사랑의 손길을 보내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겨울이면 따뜻한 방석 위에서 잠들길 바라며 선물을 보내준 평화의 후원자는 이런 메시지도 보내줬습니다.
크리스마스 선물 보내주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날씨가 추워져서 일단 방석 먼저 보낼게.
차가운 바닥에 앉는 것보다는 나았으면 좋겠다.
정말정말 많이 보고 싶다! 조만간 또 보러 가야겠어.
언젠가는 너를 꼭 데리러 갈게. 사랑해.
언젠가 가족을 만나는 날이 된다면, 평화는 분명 이 사랑이 마음속에 쌓이고 쌓여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반려견이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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