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50만 부 팔린 '긴긴밤'…안 울 도리 없는 '슬픈 동화'의 힘 [인터뷰]

입력
2024.09.04 11:30
22면
구독

'긴긴밤' 루리 작가 인터뷰

2021년 발간 이후 누적 판매 50만 부를 넘어선 동화 '긴긴밤'의 루리 작가가 작업을 하고 있다. 문학동네 제공

2021년 발간 이후 누적 판매 50만 부를 넘어선 동화 '긴긴밤'의 루리 작가가 작업을 하고 있다. 문학동네 제공

"왜 동화는 조금 슬퍼야 하는가."

아동문학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뉴베리상을 2번 받은 미국 작가 케이트 디카밀로는 2018년 1월 미국 시사주간 타임지 기고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눈물 쏙 빼는 동화 '긴긴밤'은 그에 대한 답이다. '긴긴밤'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루리(필명) 작가는 최근 한국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우리 삶에서 슬픈 일들은 피할 수 없고, 결국 이별이나 상실을 맞이하게 되지만, 그래도 우리는 또 어떻게든 견뎌낼 수 있을 거라는 응원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슬픈 이야기를 읽은 어린이들이 다시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말이다.

어른들의 인생 책, '긴긴밤'


루리(오른쪽) 작가가 지난달 30일 '긴긴밤' 50만 부 기념 북콘서트가 열린 서울 마포중앙도서관 마중홀에서 송수연 아동문학평론가와 대화하고 있다. 문학동네 제공

루리(오른쪽) 작가가 지난달 30일 '긴긴밤' 50만 부 기념 북콘서트가 열린 서울 마포중앙도서관 마중홀에서 송수연 아동문학평론가와 대화하고 있다. 문학동네 제공

출판사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대상을 받고 2021년 2월 출간된 '긴긴밤'은 슬픈 동화의 저력으로 누적 판매 50만 부를 넘어섰다. '책을 읽고 오열했다'는 후기가 넘쳐나는 '긴긴밤'을 '인생 책'으로 꼽는 성인 독자들이 많다. 지난달 30일 '50만 부 기념 북콘서트'를 열고 독자들과 만난 루리 작가는 "(긴긴밤에 그려진) 견뎌내고 살아내는 삶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게 아닐까 싶다"고 했다.

'긴긴밤'은 지구에 한 마리만 남은 흰바위코뿔소 노든과 버려진 알에서 태어난 펭귄이 함께 바다를 찾아 나서는 여정을 그린다. 루리 작가는 노든의 이야기를 쓸 때 많이 괴로웠다고 한다. "노든한테 감정이입을 하는 동안은 일부러 슬픈 음악만 듣고 슬픈 생각만 떠올렸어요. 그래도 세상에 하나 남은 존재가 된다는 그 괴로움을 감히 헤아릴 수 없겠더라고요." 루리 작가는 2018년 북부흰코뿔소가 멸종하기 전까지 최후의 수컷으로 남았던 '수단'에 관한 기사를 본 후 '긴긴밤'을 썼다.

2020년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루리 작가에게도 수없는 '긴긴밤'이 있었다. 그는 "15년을 같이 산 강아지가 죽고, 아빠가 암에 걸리는 일이 한꺼번에 찾아왔는데 내 힘으로 어쩔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며 "이제는 30대가 됐고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는 책을 낸 작가도 됐는데 여전히 힘든 일들이 찾아오고 사는 건 쉽지 않다"고 했다. 그가 이야기를 쓰게 되는 건 그럴 때였다. "이야기를 만들어서 거기로 도망을 치고 그 속에서나마 산다는 비극을 아름답게 만들려고 애를 써요. 그래서 이야기를 쓰는 일이 삶을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었습니다."

멸종한 흰코뿔소 '수단'에서 시작한 이야기


긴긴밤·루리 지음·문학동네 발행·144쪽·1만1,500원

긴긴밤·루리 지음·문학동네 발행·144쪽·1만1,500원

루리 작가는 필명을 쓰고 언론 인터뷰는 거의 하지 않는다. 직장 생활과 작품 활동을 성실하게 병행 중이다. '스타 작가'가 된 이후에도 달라진 건 없다. 그는 "매일매일 반복되는 회사원의 일상을 살다 보니 작가라는 자각이 들 때가 별로 없다"면서도 "초등학생인 사촌조카가 학교에서 '긴긴밤'을 읽었다고 했을 때는 좀 으쓱했다"고 했다.

내년 상반기 출간이 목표인 후속작은 집에 관한 이야기다. "이번 이야기는 전쟁으로 무너진 집에 홀로 앉아 있는 한 노인의 사진에서 시작됐어요. 무너진 집에 머물기를 고집하는 노인의 모습이 이해할 수 없지만 어딘가 아름다워 보여서 쓰게 된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집이지만 이번에도 동물이 등장합니다."

권영은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