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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 도전받는 시기 온다

입력
2024.09.02 17:5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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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불확실성, 동맹 균열 가능성
70년대 핵개발 계획, 신뢰 위기가 배경
우리 국익, 뒷전 안 되도록 역량 모아야

오는 11월 열리는 미국 대선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왼쪽 사진) 전 대통령과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오는 11월 열리는 미국 대선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왼쪽 사진) 전 대통령과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의 눈을 피해 한국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개발한 건 1970년대 초중반이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절의 미중 데탕트 시대가 충격으로 다가온 즈음이다. 6만여 주한미군 가운데 7사단 2만 명 철수는 '아시아 각국은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닉슨 독트린 연장선에 있었다. 여기에 월남전 패전과 미군철수, 박정희 정권의 인권탄압에 강경했던 지미 카터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공약 이행 움직임은 안보위기를 불러왔다. 박정희 정권은 핵무기 개발을 위한 장비, 소재, 인력을 끌어모았고, 74년 인도의 핵실험 성공 후 놀란 미국이 핵무기 소재, 장비를 추적하면서 핵 재처리 시설을 포함한 한국의 비밀 핵 개발계획이 포착됐다. 핵확산과 아시아 정세를 뒤흔들 후폭풍을 우려한 미국의 거센 압박에 박정희 정권도 포기하기에 이르렀지만 핵개발 의도는 분명했다. 미국에 대한 협상카드만이 아니라 신뢰의 위기에 대한 대응이었다. 한미동맹과 안보공약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불신이다.

휴전 이후 70년을 넘긴 한미동맹이 굳건했던 건 아니다. 미국의 정책방향과 정세변화 속에 흔들렸다. 개도국인 한국의 위상이 그러했다. 이제 11월 치러질 미국 대선의 불확실성과 함께 한미동맹, 한미관계가 또 한번 시험대에 오를 참이다. 북한이 협상과 기만을 넘나들면서 핵 고도화 성공 일보 직전에 있는 게 한 축이라면, 미국 정치 사상 가장 특이한 인물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또 다른 축이 될 것이다. 대북문제, 특히 북핵문제와 관련한 미국의 초당적 외교전략이 지금처럼 분열된 적도 없을 것이다.

최근 발표된 미국 공화·민주당의 정강에 전략적 목표로서의 '북한 비핵화'가 빠진 건 여러모로 놀랄 일이다. 당의 정강이 대통령 정책으로 그대로 구현된 게 없다는 우리 정부의 희망적 사고에도 불구하고 ‘핵보유국 북한’의 존재감이 어른거린다. 군사적 압박과 제재를 강화할 것이냐, 비핵화 포기 내지 협상 문턱을 낮출 것이냐는 기로에 있다는 걸 보여준다. 트럼프는 권위주의 국가를 상대로 한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의 외교 능력을 폄하하면서 북한의 핵 역량을 “매우 실질적”이라고 했다. 이는 북한 비핵화 목표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의미와 같다. 핵확산방지조약(NPT) 주도국이자 강대국 체면상 핵보유국을 운운하지 않더라도 핵 이전 방지에 주안점을 두고 북핵 협상의 문턱을 크게 낮출 것이라는 건 예상가능하다. 50년 전과 국가적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고는 하나 당사자인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우선순위에 있지 않을지 의문이다.

물론 미 대선이 혼전 중이라 천수답마냥 하늘에서 비가 내리길 기다라는 건 우스꽝스럽다. 핵 확장억지 정책을 구축하고 대북강경 모드로 일관해온 이 정부 외교 전략이 커다란 혼란에 빠질 것이란 점은 불문가지다. 트럼프 집권 시 50년 전과 마찬가지로 양국 간에 불협화음과 신뢰의 위기가 도래할 공산이 크다. 해리스가 집권해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을 유지한다고 해서 30년 제재를 버틴 북한이 달라질 건 없다. 제재회피의 뒷문은 더 열렸고, 러시아는 북러 조약에 비핵화 목표마저 폐기한 마당이라 북한의 핵 역량과 입지는 공고해질 판이다.

박정희 정권은 비밀 핵개발 당시 수개월 이내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과 능력을 갖추는 걸 목표로 삼았다. 오늘날 유사한 핵 잠재 능력 보유 주장이 나오는 건 북핵 고도화가 현실적 위협이 됐다는 의미다. 미 대선에서 누가 되든 우리 입장에선 핵무장과 북핵협상 수준을 둘러싼 백가쟁명식 혼란과 갈등은 불가피하다. 19세기 유럽의 세력균형 전쟁 와중에 영국 총리는 영원한 동맹도 영원한 적도 없다, 국익을 따르는 게 우리 의무라고 했다. 우리 국익이 후순위가 되지 않도록 역량을 모아야 할 때다.

정진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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