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섬 연안에서는 땅에 묻힌 플라스틱이 변형된 ‘플라스티스톤’이 발견된다. 또 2차 세계대전 당시 전투가 벌어진 해변에서는 황동 총알이 사암과 석회암을 만나 새로운 물질로 변형된 지층이 형성됐다.” 지난 25일부터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고 있는 2024년 세계지질과학총회에서는 인간이 버린 쓰레기가 쌓여 지층을 형성하고 있다는 연구가 쏟아졌다.
이렇게 인간이 만든 폐기물 지층은 우리나라에서도 여럿 발견된다. 일제강점기 석탄 연소가 시작된 이후 낙동강 하구 퇴적물에는 중금속이 증가했다. 특히 산업화가 본격화한 1961년 이후 퇴적층에서는 수은 등의 농도가 높게 나타났다. 쓰레기 매립지도 지질학적 지층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매립지가 산사태 등을 일으켜 실제 지층 운동 같은 현상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해외에서는 지진으로 땅속 매립지가 파손되면서 메탄이 분출되는 환경피해도 잇따르고 있다.
사례가 쌓이면서 인간 활동이 지구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지질시대를 의미하는 ‘인류세’를 공식 지정하자는 움직임이 2000년 이후 시작됐다. 이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18세기 후반 석탄 연소가 늘어나면서 지구가 변화하기 시작했지만, 20세기 중반에 뚜렷해졌다고 보고, 특히 퇴적층에서 핵실험 흔적인 플루토늄이 나타나는 1950년 이후를 인류세로 보고 있다. 인류세의 시작을 규명하기 위해 2020년부터 23년까지 12개 연구팀이 전 세계 8개의 지질 환경에서 관련 증거를 찾았으며, 인류세 기간 큰 변화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이번 부산 지질과학총회에서 인류세가 공식 지정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지층 이름을 결정하는 지질과학회 내부 층서위원회는 1950년을 인류세 지층 시작으로 단정할 연구가 부족하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인류세 개념의 중요성이 부정된 것은 아니다.
공식적으로 현재 지층은 약 1만 년 전부터 시작된 홀로세다. 빙하기가 사라지고 지구가 온난해지면서 인류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 시기다. 홀로세가 얼마나 더 지속될지, 또 인류세가 언제쯤 홀로세를 중단시킬지는 인간의 환경 파괴 속도가 결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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