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중국 취업난의 마지막 피난처 '라이더', '차량공유 기사'는 왜 가난해졌나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5,000년간 한반도와 교류와 갈등을 거듭해 온 중국. 우리와 비슷한가 싶다가도 여전히 다른 중국. 좋든 싫든 앞으로도 함께 살아가야 할 중국. '칸칸(看看)'은 '본다'라는 뜻의 중국어입니다. 베이징 특파원이 쓰는 '칸칸 차이나'가 중국의 면면을 4주에 한 번씩 보여드립니다.
수년 전만 해도 중국에서 '음식 배달 라이더'(이하 라이더)와 '차량 공유 서비스 운전기사'(이하 차량공유 기사)는 실직자들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졌다. 취업난 탓에 '좋은 정규직' 일자리는 얻지 못하더라도 두 업종의 문은 늘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구직 실패로 낙담한 중국인들도 "괜찮아. 음식 배달 뛰든지, 디디추싱(중국판 우버) 기사라도 하면 먹고살 수는 있어"라고 말하곤 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그러나 현 상황은 다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불어닥친 불황 여파는 전례 없는 규모의 실업자를 쏟아냈다. 최악의 구직난에 처한 실업자들은 '면허증만 있으면 OK'인 라이더·차량공유 기사 일에 너도나도 뛰어들었다. 내수 침체로 인해 배달 음식 주문량과 차량 호출 건수가 모두 줄어들었지만, 주문을 받겠다는 라이더·차량공유 기사의 수는 금세 과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당연히 이들이 가져가는 수수료 단가는 점차 낮아졌다. 한때 중국 실직자의 피난처였던 라이더·차량공유 기사직이 이제는 생계유지조차 간당간당한 수준의 '막다른 직업군'으로 전락하고 있다.
상하이에서 배달 라이더로 일하는 다이야전(34). 정규직 직장을 관두고 이직을 준비했으나 여의치 않자, 지난해 1월 라이더 일에 뛰어들었다. 배달 업무를 하며 수수료를 챙기는 라이더 업무 특성상, 생활비를 버는 것 정도는 거뜬할 듯했다. 하지만 '경쟁 상대'인 라이더 수가 계속 늘어난 게 문제였다. 반대로 내수 침체가 장기화하며 음식 배달 주문은 줄어들기만 했다. 다수의 라이더가 소수의 배달 주문을 서로 가져가려 하니, 배달 수수료를 스스로 낮추는 '제 살 깎아 먹기' 경쟁에 불이 붙었다. 다이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돈을 번다기보다는 '버티는' 중"이라며 "앞으로 신규 라이더는 생활비조차 벌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최대 배달 플랫폼 '메이퇀'에 등록된 라이더 수는 2019년 398만 명에서 △2020년 470만 명 △2021년 527만 명 △2022년 624만 명 △지난해 745만 명으로 폭증하고 있다. 경쟁 업체인 '어러머'(2022년 기준 200만 명)와 '징둥닷컴'(100만 명) 등록 라이더를 합치면, 총 1,000만 명을 웃돌 것으로 추산된다.
라이더 수 급증과 달리, 음식 배달 시장은 날로 위축되고 있다. 유럽 통계 공유 사이트인 리서치게이트에 따르면, 해당 시장 성장률은 2019년 28%, 2020년 46%를 각각 기록하며 정점을 찍은 뒤 △2021년 25% △2022년 9% △지난해 14% 등을 보이며 둔화세를 보이고 있다. 음식 주문은 감소하는데 라이더는 많아지니, 단 한 개의 주문이라도 더 가져가기 위해 배달 수수료를 더욱 낮춰야만 하는 악순환의 덫에 걸린 셈이다.
차량공유 기사도 다르지 않은 처지다. 지난달 27일 기자와 만난 자오는 중국 대형 차량공유 플랫폼 디디추싱 소속 기사로 베이징에서 5년째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날 오전 8시부터 퇴근 시간인 오후 5시까지, 총 9시간 동안 받은 호출은 딱 9건뿐. 사납금 절반 정도를 떼고 나면 그가 가져갈 돈은 200위안(약 3만7,000원)도 채 되지 않는다. 자오는 "3, 4년 전만 해도 하루 20건 정도 호출을 받았는데 지금은 손님 10명만 받아도 나쁘지 않은 날"이라고 말했다. 실업자들이 공유차량 기사직으로 몰린 탓에 일거리가 줄어든 탓이다. 그는 이렇게 토로했다. "예전에는 적게나마 저축도 했었는데, 지금은 생계유지도 쉽지 않습니다. (베이징에서 함께 살고 있는) 부인과 아들은 고향인 쓰촨성으로 돌려보낼 생각입니다."
중국 차량공유 시장 점유율 70%를 차지하는 디디추싱의 등록 기사 수는 2022년 1,300만 명에서 지난해 1,900만 명으로 1년 새 약 48%나 증가했다. 그러나 이용객 규모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중국 국무원 산하 중국인터넷네트워크정보센터(CINIC) 자료를 보면, 중국 차량공유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앱) 이용자는 2022년 4억3,000만 명에서 지난해 5억2,000만 명으로 늘어났다. 증가율은 약 20%에 그쳤다. 공급(차량공유 기사 증가세)이 수요(승객 증가세)를 압도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영국 기반 중국 전문 매체 진저리버리뷰는 이러한 흐름에 비춰 "2020년 23.3건이었던 차량공유 기사 한 명의 일일 운행 건수는 지난해 11건 미만으로 감소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공유 기사의 수입 하락세는 당연한 결과다. SCMP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 광둥성 둥관시에서 활동하는 차량공유 기사의 하루 평균 운행 건수는 9건에 불과했다. 2022년 대비 20% 하락한 수치다. 같은 기간 일일 평균 수익도 3% 줄어든 261위안(약 4만8,000원)으로 집계됐다. '주 5일 근무'라는 전제하에 월급으로 환산하면 5,200위안(약 97만 원) 수준이다. 작년 4분기 중국 주요 도시 38곳의 신입사원 월평균 급여인 1만420위안(약 190만 원)의 절반밖에 안 된다.
사실 한때는 '중국판 긱워커(gig worker·고용주의 필요에 의한 단기 노동자)'의 대표 직종으로 각광받던 일자리였다. 고수익은 어렵지만 일한 만큼 벌고, 쉬고 싶으면 언제든 마음대로 쉴 수 있는 '노동 유연성' 때문이었다. 정규직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최소 생활비를 마련할 구직자들의 '경유지' 역할도 했다. 실제 중국 정부는 라이더·차량공유 기사와 택배원, 인터넷스트리머 등 온라인 상거래 시장을 토대로 형성된 긱워커 직군을 '유연한 고용'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중국 경제가 주저앉으며 '유연한 고용'은 가장 경쟁적인 직군이 됐다. 급격히 위축된 내수 시장은 실업난을 키웠고, 거리로 내몰린 실업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배달·차량공유 플랫폼 기업에 몰려들었다. '정규직 일자리를 얻을 때까지만'이라고 결심하던 이들은 구직에 실패하자 아예 눌러앉아 버렸다. 장기화하는 불황은 더 많은 실직자를 매일매일 이 시장으로 진입시켰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지난달 16일 발표한 7월 청년(16~24세) 실업률은 17.1%로, 올해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7월 도시 실업률(5.2%)도 전월보다 0.2% 상승했다. 중국 취업 전문 사이트 자오핀 조사에 따르면, 올 상반기 대졸자 중 13.7%가 "유연 고용직에 종사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과포화 상태라는 점을 알고도 라이더·차량공유 기사 일을 찾는 인구가 더 많아질 수밖에 없는 흐름이다. 영국·중국 무역협회(CBBC)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의 긱워커 직군은 안정적 직장을 구하기 전까지 필요한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매력적인 일자리였지만, 지금은 최저 수준의 임금을 받으면서도 가장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일자리가 됐다"고 지적했다. 상하이의 한 차량공유 기사는 중국 매체 식스톤에 "먹잇감은 없는데 늑대만 많아지는 꼴"이라고 푸념했다.
SCMP는 국가통계국 자료를 근거로 중국 내 긱워커가 2억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2022년 기준 중국 노동인구(16~59세)는 8억7,500만 명이다. 중국인 근로자 5명 중 최소 한 명은 라이더, 차량공유 기사, 택배원 같은 긱워커일 수 있다는 의미다.
긱워커가 중국 고용시장의 '뉴 노멀'(새로운 표준)이 되어가는 반면, 이들의 노동 여건은 열악하기만 하다. 중국 인력자원사회보장부는 지난 3월 '배달·승차공유 서비스 플랫폼 기업의 노동자 임금이 최저임금 수준에 부합하도록 해야 한다'는 방침을 발표했으나, 이는 가이드라인일 뿐 강제성이 없다.
노동법의 근로시간 제한(주당 44시간) 규정도 적용할 수 없다. 국가통계국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 통계에도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고용주와 합의한 최대 근로시간을 초과했을 경우, 이를 '푸시 알림 앱'을 통해 노동자에게 알려 줘야 한다는 당국 권고가 고작이다. '노동법상 정식 근로자'가 아닌 탓에 국가가 보장하는 의료보험이나 양로보험은 꿈도 꿀 수 없다. 지난해 유럽연합(EU)이 우버 기사 등 긱워커를 '고용보험 가입 권리를 가진 근로자'로 인정한 노동규칙 초안을 승인한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중국의 각종 배달·택배 시스템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유명하다. FT는 "중국 대도시의 배달 시스템이 훌륭한 것은 우수한 알고리즘 때문이 아니라, 열악한 노동 조건하에서도 뛰어다닐 수밖에 없는 노동자가 풍부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