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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의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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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쓰레기다. 내가 왜 쓰레기로 불리는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날 쓰레기라고 부른다. 아주 몹쓸 사람을 ‘인간 쓰레기’로 부르는 걸 보면, 쓰레기가 좋은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태어날 때부터 쓰레기였던 건 아니다. 한때는 나도 그럴듯한 이름이 여럿 있었다.
페트병과 비닐봉지는 가장 흔한 내 이름이었다. 스티로폼이나 플라스틱 바구니로 불리는 경우도 많았다. 가끔은 농약 통이나 음식 담는 용기로 사용되며 이리저리 굴러 다녔지만 쓰임이 있다는 건 나쁘지 않았다. 어부들은 나를 그물이나 통발로 칭했다. 내 몸에 상처라도 생길까 봐 노심초사하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나에게 화양연화가 언제냐고 물어보면 사람들이 날 아껴주던 그 시절이 될 거다.
하지만 쓸모가 없어지면 나는 찢기고 뜯기고 구겨지며 버려진다. 그 전에 어떤 이름으로 불렸건 그때부터 난 쓰레기가 된다. 내가 바다로 흘러 들어가면 특별히 ‘해양 쓰레기’라고 불러줬다. 어차피 세상에 나올 때부터 버려질 운명이었기에 쓰레기 취급을 받았다고 섭섭하진 않다. 다만 사람들에게 배신감을 느낄 때가 많다. 그렇게 나를 유용하게 써먹더니 헤어질 때는 안면몰수하고 함부로 대하기 때문이다. 쓰레기니까 쓰레기처럼 다룬다고 하지만, 나도 사람들에게 사랑받던 시절이 있었기에 작은 바람이 있다. 버릴 때 버리더라도 제대로 처리해달라는 거다.
내가 이렇게 호소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나 같은 해양 쓰레기가 얼마나 무서운지 아직 모르는 것 같다. 뱃사람들은 뭐든 바다에 버리는 게 습관이 됐다. 아귀 배를 갈랐더니 500㎖ 플라스틱 생수병이 나왔다. 사체로 발견된 향유고래 뱃속은 그물이나 낚싯줄, 비닐봉지로 가득했다. 바다거북도 혓바닥 깊숙이 낚싯바늘이 꽂힌 채 고통스럽게 죽었다. 바다에 버려진 통발이나 그물에 물고기가 갇혀 굶어 죽는 '유령 어업' 현상도 예삿일이 됐다. 바다를 쓰레기통으로 생각하고 마구 내다버린 건 인간들인데, 동물들은 나를 원망하고 있으니 정말 억울하다.
내가 바다를 떠돌고 있는 건 하천 쓰레기의 탓도 크다. 한국에서 발생하는 해양 쓰레기의 65%가 육상에서 유입된다. 바다에 쌓이기 전에 뭍에서 쓰레기를 수거·처리하면 비용을 1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 하천 곳곳에 쓰레기 차단막을 설치하면 해결되지만, 사람들은 수십 년째 예산 타령만 하며 방관하고 있다.
말이 나온 김에, 사람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게 있다. 나는 불사신 같아서 버려졌다고 쉽게 죽지 않는다. 플라스틱 쓰레기는 수백 년 동안 썩지 않고 전 세계 바다를 돌아다니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결코 원한 건 아니지만, 이제는 나 때문에 사람까지 죽고 있다. 선박 스크루에 걸린 나를 제거하려고 물 속에 뛰어든 어부들이 잇따라 세상을 등지고 있다. 한국에서만 연간 부유물 감김 사고가 1,686건에 달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나는 바닷속에서 잘게 부서져 물고기 밥이 되고, 결국 사람들 밥상에 오른다. 한때는 나를 소중히 대해줬기에, 사람들 몸속으로 들어가는 건 정말 피하고 싶다. 나를 삼켜버린 사람들에게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쓰레기는 소망한다. 제발 바다로 날 보내지 말아달라.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면, 끊임없이 사람들을 괴롭힐 수밖에 없다. 바닷속에서 나는 불사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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