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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역사에 수려한 자연... 영남 유생의 과거급제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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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문경은 생각보다 가깝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나 시외버스로 2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어 당일치기 여행도 어렵지 않다.
오늘의 목적지는 그 유명한 문경새재도립공원. 조선 태종 14년(1414) 개통된 관도 벼슬길로 영남과 기호지방(수도권)을 잇는 영남대로의 상징적 옛길이다. 이 길을 통해 백두대간 마루를 넘나들며 문물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1594년 선조 때 제2관문 조곡관, 1708년 숙종 때 제1관문 주흘관, 제3관문 조령관을 설치하며 요새 역할도 병행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새도 쉬어 넘는 힘든 고개’라는 의미의 조령으로 언급됐는데, ‘억새가 우거진 고개’ ‘하늘재와 이우릿재(이화령) 사이의 고개’ ‘새로 만든 고개’라는 해석도 있다. 험준한 고갯길의 대명사로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을 오르내리던 선비들의 청운의 꿈, 백성들의 삶과 땀이 서려 있는 길이다. 현재는 넓고 평탄한 숲길로 조성돼 걷기 명소로 자리 잡았다.
주차장에서 걸으면 옛길박물관, 제1관문(주흘관), 문경새재오픈세트장을 통과한 후 본격적으로 옛길로 접어든다. 조령원터, 교귀정, 용추, 산불됴심비, 조곡폭포, 제2관문(조곡관), 문경새재아리랑비, 낙동강발원지, 제3관문(조령관)까지 편도 7.0km다.
전체를 걷기 부담스러우면 컨디션에 따라 조절하면 된다. 오픈세트장이나 2관문까지만 왕복하는 이들도 많다. 제2관문까지 전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방법도 있다. 문경새재를 제대로 체험하려면 느릿느릿 걷기를 추천한다. 시간과 마음이 여유로워야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걷기에 앞서 옛길박물관에 들른다. '옛 사람들의 여행 가방(괴나리봇짐) 속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과거시험지에는 뭐라고 썼을까? 합격의 영광과 금의환향, 반대로 낙방의 시름은 어떠했을까? 여행기와 풍속화에 담긴 옛길의 모습은 어떨까?' 문경새재를 비롯한 옛길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도록 전시해 놓았다. 도자기, 연인, 돌, 생태를 주제로 조성한 문경미로생태공원도 함께 볼만하다.
제1관문 주흘관을 지나면 문경새재오픈세트장(입장료 성인 2,000원)이 나타난다. 광화문·경복궁·동궁·서운관·궐내각사·초가집·기와집·양반집이 실제처럼 들어선 사극 전문 촬영장이다. 드라마 ‘태조왕건’ ‘대조영’ ‘광개토대왕’, 영화 ‘활’ ‘관상’ ‘나는 왕이로소이다’ 등 웬만한 사극은 이곳에서 찍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여행을 하는 느낌이 든다.
세트장을 지나 울창한 숲길로 접어들면 자연스럽게 형성된 그늘과 솔솔 부는 바람에 절로 시원해진다. 조선시대와 고려시대 출장하는 관리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조령원터, 길손들이 지친 몸을 한 잔의 술로 풀어내던 주막, 경상감사 교대식이 거행됐던 교귀정이 차례로 나타나고 티 없이 맑은 계곡에 흐르는 물소기가 청아하다. 발길마다 무릉도원이다. 바위에 빨간 글씨로 새겨놓은 ‘산불됴심’ 표석은 조선후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자연을 소중한 자원으로 인식하고 보호하려는 인식은 옛날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깊은 산속에 자리한 제2관문 조곡관에 도착하면 충분히 휴식하기를 권한다. 이곳에서 3.5km 떨어진 제3관문까지는 해발고도가 380m에서 650m로 높아지는 오르막길이다. 물맛이 뛰어난 조곡약수로 목을 축이고 쉬엄쉬엄 걷다가 노랫소리가 흘러나오는 문경새재 아리랑비에서 걸음을 멈춘다. 아리랑은 한국인의 정체성이자 지역색도 두드러진다. 문경새재아리랑은 1965년 홍재휴 교수가 ‘어문학 13집’을 통해 소개했고, 고(故) 송영철·송옥자에 의해 보존 전승되고 있다.
곧이어 이진터에 닿는다. 임진왜란 당시 신립 장군이 농민 모병군 8,000명을 이끌고 제1진을 제1관문에 배치한 데 이어 제2진의 본부를 설치했던 장소다. 신립의 군대는 허수아비를 세워 초병으로 위장한 후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맞섰지만 중과부적으로 순절했다. 왜군이 초병의 머리에 까마귀가 앉은 모습을 보고 위장임을 알아채고 안심하고 고개를 넘었다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곳부터 장원급제길을 걷는다. ‘문경초점’ 표석이 보인다. 초점은 문경새재의 옛 지명으로 낙동강의 3대 발원지다. 세종실록지리지는 ‘낙동강은 그 근원이 셋인데 하나는 봉화현 북쪽 태백산 황지에서 나오고, 하나는 문경현 북쪽 초점에서 나오며, 하나는 순흥 소백산에서 나와서 물이 합하여 상주에 이르러 낙동강이 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시험을 앞둔 수험생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마음이 절박하다. 이 길의 ‘책바위’는 과거에 응시하고자 새재를 넘던 선비들이 합격을 기원하던 장소였다. 요즘도 입시철이면 소원성취를 비는 발길이 이어진다.
책바위를 지나면 마지막 제3관문 조령관에 도착한다. 문을 통과하면 충북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다. 급제를 꿈꿨던 선비처럼 영남에서 충청도로 고개를 넘었다. 이곳부터는 계속 내리막길이다. 조령산자연휴양림을 지나 고사리마을에서 걷기 여행을 마무리한다. 다소 힘들지만 몸도 마음도 한결 가뿐하다.
문경에서 괴산 방향으로 걸으려면 시내버스로 문경새재 종점에 내리면 된다. 시청 소재지인 점촌터미널 인근 홈플러스 정류소에서 21번 버스가 약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문경터미널도 들르는 노선이다. 반대로 괴산에서 문경 방향으로 걸으려면 충주터미널에서 하루 4회 운행하는 242번 버스, 괴산터미널에서 하루 2회 운행하는 104·109번 버스를 타고 원풍리 종점에 내리면 된다.
시간을 잘 맞추면 대중교통을 이용해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하다. 점촌터미널에서 오전 9시 20분(문경터미널 10시)에 출발하는 21번 버스를 타고 문경새재 입구에 도착한 후 제1·2·3관문을 차례로 걷고, 오후 4시 8분 괴산 원풍리에서 242번 버스를 타고 충주터미널로 돌아가는 방법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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