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총지출 677조4,000억 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어제 공개했다. 이날 국무회의 의결을 거친 예산안은 정기국회에 제출돼 감액 심의 후 최종 확정된다. 예산안 총지출액은 올해보다 20조8,000억 원 늘어난 것이며, 증가율로는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올해 2.8%보다는 높은 3.2%이지만, 내년 경제성장률 예측치 4.5%보다도 낮은 고강도 ‘긴축재정’으로 평가된다. 정부는 대신 필요한 곳에 더 많은 예산을 돌리도록 24조 원 규모의 지출구조조정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건전재정을 내세워 씀씀이만 줄이는 긴축예산을 고수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 정부는 총수입 예산을 올해보다 6.5% 증가하는 데 그친 651조8,000억 원 규모로 편성해 정부가 추구하는 건전재정이 ‘덜 걷고 덜 쓰는’ 방식임을 재확인했다. 일례로 내년 지출이 20조8,000억 원 늘었다고는 해도 인건비 등 의무지출 증가액만 18조2,000억 원에 달해 재량지출 예산은 불과 2조6,000억 원(0.8%) 증가한 데 그친 셈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즉각 내수활성화 등에 필요한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외면한 “부자감세, 민생 외면, 미래 포기가 반영된 예산안”이라는 비판을 제기한 배경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지난 정부는 5년 동안 400조 원 이상의 국가채무를 늘렸다"며 "재정 부담이 크게 늘면서 정부가 일하기 어렵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정부가 지금 상황에서 ‘허리띠를 졸라매는 방식’으로만 건전재정을 추구하는 건 문제가 있다. 꼭 필요하다면 그만큼 세수를 늘려 필요한 만큼 쓰면서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는 방법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 3년간 각종 세금감면 기조를 유지함으로써 스스로 재정 확충의 여지를 봉쇄해 버렸다. 물론 국민 입장에선 세금을 덜 걷을수록 좋을 수 있다. 하지만 감세에 함몰돼 경기 회복, 복지 확대, 미래 대비 투자 등 재정의 역할을 방기하는 건 ‘돈 풀기’ 포퓰리즘 못지않게 위험할 수 있다. 지금은 ‘감세는 보수, 증세는 진보’ 같은 고루한 진영논리를 고집할 때가 아니다. 본예산이 안 된다면, 필요한 재정 역할을 위해 '부자감세' 축소나 증세 방안 등을 강구할 필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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