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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사 기내 커피가 맛없는 이유

입력
2024.08.24 04:30
19면

커피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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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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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로 여행을 떠난다는 친구가 나에게 커피를 부탁했다. 마시기 편하게 드립백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물만 부으면 바로 커피가 되도록 말이다. 한데 티베트는 고도 4,000~5,000m의 고산지대인데다, 히말라야의 물이 흐른다. 커피를 사랑하는 친구에게 아무거나 줄 수 없는 노릇이다. 머릿속에 맥가이버 드라마의 주제가가 흘렀다.

커피액의 98.6%는 물이다. 커피 맛에 물이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고도 5,000m에 이르는 티베트에서는 물이 끓는점도 다르다. 여기서 100℃에 끓는 물이 티베트에서는 85℃쯤에 끓는다. 비행기에서 마시는 커피가 밍밍하고 향도 약하고 쓴맛이 많은 건, 상공을 날 때 기압이 낮아져 추출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친구에게는 85℃ 물에 추출해도 맛있는 커피가 필요하다. 커피 볶음 정도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또 다른 문제도 있었다. 수질이다. 수질은 지역마다 서로 달라서 같은 원두를 사용해도 향미가 크게 달라진다. 티베트는 세계의 지붕이라고 일컬어지는 히말라야산맥 북측, 칼륨과 마그네슘의 양이 많은 경수다. 수질은 미각의 여러 면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매일 먹는 연수로 커피를 내리면 산미가 잘 드러나며 단맛이 좋고, 향미 밸런스가 좋다. 개인적으로는 삼다수나 석수로 내린 커피를 좋아한다.

반면 대표적 경수인 에비앙을 끓여서 커피를 마셔보면 쓴맛이 더욱 쓰게 느껴지는 경향이 있다. 유럽에서 진한 커피에 우유나 설탕을 많이 넣는 데는 쓴맛과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함도 있다. 노르딕이라고 부르는 커피는 완전 약배전으로 북유럽에서 인기가 있는 이유는 경수의 영향으로 산미가 자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여행 떠나 보낼 커피 만들기. 85℃ 온수에 천천히 추출하도록 강배전 과테말라를 블렌딩하기로 했다. 다만 강배전 비율이 너무 높으면 경수의 영향으로 쓴맛이 도드라질 수 있으니, 비율을 살짝 낮추기. 산미는 도드라지지 않을 것이므로, 약배전 에티오피아 비율을 살짝 높였다. 그다음 두 종류 커피를 잘 묶어주도록, 중배전 에티오피아 내추럴을 넣어 향미와 보디감을 올렸다. 마지막으로 커피 입자는 평소보다 굵게 분쇄하여, 낮은 온도(85℃), 천천히 추출에 적합하도록 했다.

고작 드립백 하나 만들면서, 맥가이버처럼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것'까지 떠올리며 나름 과학적으로 고민하는 시간이 내게는 큰 기쁨이었다. 나의 이런 고민이 친구의 여정에 향기로운 에너지가 되어주길 바라며, 돌아오면 여행 소감을 선물로 들어야겠다. 그나저나 우리나라 항공사 기내 커피 좀 맛있게 바꿀 수는 없는 것일까.


윤선해 ㈜후지로얄코리아·와이로커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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