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역 흉기난동 예고' 중국인 남성, 항소심서 협박 유죄

"예고 글 삭제했어도 고의 없다 볼 수 없어"
1심 협박 무죄, 출입국관리법 위반만 유죄

서울중앙지법·서울고법이 위치한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에 '서울 혜화역에서 흉기난동을 벌이겠다'며 살인 예고 글을 올렸다가 삭제한 중국인 남성이 항소심에서 가중된 형량을 선고받았다. 항소심 재판부가 1심과 달리 협박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1-3부(부장 조정래)는 지난해 협박 및 출입국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왕모(32)씨 항소심에서 22일 징역 1년 2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앞서 1심에선 협박 혐의를 무죄 선고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글을 올렸다가 8초 만에 내려 협박의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항소심 재판부는 하지만 "(왕씨가 작성한) 인터넷 살인 예고 글이 커뮤니티 사이트에 재차 게시되는 등 인근 많은 사람들에게 해악의 내용이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전달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의 살인 예고에 의사결정 내지 실행의 자유가 침해되고 밀집한 사람이 해악을 느꼈다"면서 "(해당 글이) 전파된 이상 비록 게시 후 삭제했다고 해도 고의가 없다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왕씨의 글 탓에 경찰 123명이 동원돼 비상 근무를 했고 전국적 불안감이 고조된 상황 등을 고려하면 죄질이 좋지 않고 불법 체류 기간도 긴 점 등도 감안해 결정을 내렸다. 다만 "동종 범죄 전력이 없고 글이 금방 삭제된 것은 인정된다"면서 "협박 내용을 실행할 의사는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 외국인 신분으로 보호 수용돼 자유 속박을 고려해 집행유예를 선고한다"고 덧붙였다.

왕씨는 지난해 8월 당근마켓 커뮤니티 게시판에 "(8월) 혜화역에서 5일 오후 3시에서 밤 12시 사이 흉기난동을 벌이겠다"는 취지의 글을 올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왕씨는 8초 만에 해당 글을 삭제했지만 에브리타임 등 다른 커뮤니티로 퍼져나갔고, 이내 경찰에 체포됐다. 실제 흉기는 발견되지 않아 살인 예비 혐의는 적용되지 않았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