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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대사 혜능의 고향... 알 듯 모를 듯 선종 불교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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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둥성 중서부 지급시 윈푸(雲浮)는 기원전부터 남방 민족 백월(百越)의 땅이다. 현급시 뤄딩(羅定)에서 버스를 탄다. 중남부 카이핑(開平)까지 가는 시외버스다. 고속도로로 달리면 2시간이다. 경유하는 지명이 수두룩하다. 도착 시간을 장담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냥 마음 비우면 편하다. 다행히 신싱(新興) 터미널까지 직행이다. 80㎞를 1시간 반에 주파한다.
다시 남쪽으로 30분 이동한다. 2004년에 마을 이름을 바꿨다. 원래 지청진(集成鎮)이었던 류쭈진(六祖鎮)에 도착한다. 4만 5,000명 주민이 육조(중국 선종의 제6조)의 명성을 존경한다. 당나라 시대 고승 혜능(慧能)의 고향이자 원적지다. 선종의 선구자 소림사 달마대사의 6대째 의발 제자다. 말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사찰을 세웠다. 당나라 중종이 국은사(國恩寺)라 하사했다. 영광스럽게도 ‘나라’를 명명한 최초의 사찰이다. 선종성역(禪宗聖域)으로 들어간다.
패방을 지나 계단을 오르니 입구가 나온다. 가운데 문에 쓴 글씨는 누구 솜씨인지 모르나 황실 하사품은 아니다. 문도 글씨도 오래되지 않은 듯하다. 양쪽 담당문(担當門)과 행직문(行直門)은 단순해 보이는데 생각보다 어렵다. 부처와 선종을 학습하면 근심을 잊고 보은을 하며 무념무상무위(無念無相無位)의 마음으로 수행하면 성불한다는 뜻 같다. 왠지 ‘부처님 말씀’ 잔뜩 들어야 하지 싶다.
호법전이 나타난다. 육조가 불법을 설파하던 장소다. 티베트에서나 보던 마니차가 보인다. 옴마니밧메훔 육자진언을 새긴 빨간 문자가 선명하다. 큰 통 하나, 작은 통 여섯 개가 한 묶음이다. 부처의 마음으로 복을 빌며 빙글빙글 돌린다. 티베트 문자가 아닌 한자를 새겼다. 육조의 설법을 기록한 육조단경(六祖壇經)으로 보인다. 제자가 엄청 많았다. 생애 마지막까지 바로 옆에서 수행하며 원적을 지켜본 두 제자가 있다. 신회(神會)와 법해(法海) 불상이 양쪽 벽면을 하나씩 차지하고 있다.
불광보조(佛光普照) 담장이 나온다. 부처가 내뿜는 지혜의 빛이 두루 온사방에 비춘다는 말이다. 둥글고 하얀 원에 거침없는 필체라 따뜻한 감성이 느껴진다. 담장 위로 올라가니 산문이다. 향로 틈새로 살짝 보니 황실이 하사한 편액이 보인다. 용이 빈틈없이 꼬인 채 소중한 필체를 보듬고 있다. 황제의 명령인 칙(敕)은 보이지 않아도 하사한 사(賜)로도 국은사의 위상은 허명이 아니다.
산문 옆에 제일지(第一地) 패방이 있다. 문 앞에 수평으로 나란한 원칙을 어기고 뜻밖에도 수직으로 위치한다. 패방을 통해 똑바로 지나야 문과 만나는 방식이다. 지형 때문이다. 애초에 산세를 따라 짓다 보니 산문이 서쪽을 향했다. 음문(陰門)이라 생각했다. 명나라 만력제 시대에 남쪽 방향으로 새로 세웠다. 양문(陽門)이 됐다. 사연을 기념했다. 기둥에 진보방지산제일(進步方知山第一)과 입문시각지무쌍(入門始覺地無雙)이라 기록했다. 부단히 발전해야 산이 탁월하다 알게 되고, 문으로 들어서야 국은사가 둘도 없이 독특하다는 걸 깨닫는다는 말이다.
황실이 보낸 편액이라 현란하다. 천왕전이 바로 붙어 있어 미륵불도 번쩍거린다. 검은 판자에 금칠 한 대련이다. 명나라 고승이 썼다 전해진다. 천하의 모든 명승지 중 단연 최고라는 백성연수무쌍지(百城煙水無雙地)니 국은사 예찬이다. 부처의 마음으로 전파한 선종 교리가 유일무이하다는 육대풍번자일천(六代風幡自一天)이니 육조 숭배다. 바람과 깃발은 선종을 좀 안다면 곧바로 육조를 떠올리게 된다. 갑자기 펄럭이는 현상이 바람이냐 깃발이냐로 승려 무리가 논쟁했다. 육조는 바람도 깃발도 아니라 ‘너희들 승려’의 마음이 움직였다고 말한다. 뜻도, 미담도 좋고 필체도 단정해 선종의 여운이 스며든다.
미륵불과 사대천왕을 지나 전각을 나온 후 뒤돌아본다. 중국 사찰에 흔히 출몰하는 위태보살이다. 검을 쥐고 있는 위용이 금빛 찬란하다. 부처의 사리를 훔친 도둑을 끝까지 쫓아가 되찾아온 수호 장군이다. 사찰 어디에서도 본 기억이 없는 여시관이 적혀 있다. 집착과 번뇌를 부수고 깨달음으로 이끄는 지혜의 불경인 금강경 마지막 편에 등장하는 게송이다. 마땅히 ‘이와 같이 봐야 한다’는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이다. 앞부분으로 가보면 이렇다. 불법을 따른다고 하는 모든 일은 마치 환상이자 물거품이고 이슬이나 번개 같다. 깨닫고 나서 경전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설파해 준다는 관념 자체에 집착하지 않는 여여부동(如如不動)을 말한다. 도무지 무슨 말인가? 알 듯 말 듯하다.
대웅보전 앞에 비문이 있다. 용의 아홉 아들 중 하나로 거북 출신인 비희(贔屓)가 비석을 짊어지고 있다. 가운데 비문에 금륜성신황제(金輪聖神皇帝)라 적혀 있다. 당나라 여제 무측천의 존호 중 하나다. 육조 대사에게 보낸다는 사재(賜齎)도 적혀 있다. 황제이자 불교신자라 그런지 난해한 용어가 많다. 대승(大乘)과 돈교(頓教), 해탈(解脫)과 보리(菩提)는 이해되는 수준이다. 최고의 불법인 제호(醍醐), 가르침을 알았다는 영음(聆音), 오랫동안 생각했다는 서상(伫想)은 황제 수준이 아니면 알기 어렵다. 당나라 시인이 거듭 육조를 찬양하는 시를 썼다. 왕유를 비롯해 유종원과 유우석 시비가 보인다.
낯익은 필체의 대웅보전이다. 중국 문화계에 궈모뤄가 있다면 불교계에는 자오푸추가 있다. 기념비가 될 필체를 온 동네에 남겼다. 중국불교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석가모니와 서방의 아미타불, 동방의 약사불이 사이좋게 삼세불의 위상을 드러내고 있다. 대웅보전의 흔한 불상인데도 육조 사찰이라 그런지 남다른 느낌이 든다. 양쪽 벽에 10명씩 이십나한이 정좌하고 있다.
대웅보전 뒤로 크기가 작은 전각 4곳이 있다. 아미타불을 보좌하는 대세지보살은 홀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석가모니를 협시하는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이 함께 거주한다. 비로자나불을 지키는 보현보살과 문수보살도 코끼리와 사자를 타고 앉았다. 독방을 사용하는 달마대사도 있다. 육조 스승의 스승이니 마땅한 대우다. 서쪽으로 간 달마대사가 제자의 제자가 이룬 업적에 만족하고 있을 듯하다.
육조전이 나온다. 일찍 아버지를 잃고 궁핍하게 살던 혜능은 우연히 금강경을 듣게 된다. 천재는 늘 그렇듯 한번 듣자마자 곧바로 깨우친다. 오조 홍인(弘忍)을 찾아간다. 허드렛일을 하던 중인데 후계자 점지를 위한 게송 대회가 열린다. ‘보리는 본디 나무가 없고(菩提本無樹), 밝은 거울도 받침대가 없네(明鏡亦非臺). 부처의 성품은 항상 깨끗하니(本來無一物), 어디에 티끌과 먼지가 있으리(何處惹塵埃)’라는 게송이다. 시기와 질투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염려한 홍인은 야밤에 금강경을 설법하고 가사와 바리때를 전수했다. 단번에 문득 깨우치는 돈오(頓悟)의 적임자로 봤다. 선종의 기본 사상이다. 육조전에 걸린 전불심인(傳佛心印)이 강렬하다.
전신 좌상을 바로 앞에서 바라본다. 광대뼈 살짝 드러난 노인의 인상이다. 부처의 지혜를 전승하는 전불심인은 핵심 교리다. 점점 계속해 수행하는 점수(漸修)는 어떻게 해야 하나? 육조단경에 나오는 무념무상무주(無念無相無住)와 불생불멸불천(不生不滅不遷)이 기둥에 새겨져 있다. 마치 육조의 말투로 설법이 들리는 느낌이다. 어려운 불교 용어를 설명 한 번만으로 딱 깨달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모든 존재에 대해 생각이나 마음이 머물지 않고 얽매이지 않는다. 새로 생기지도, 사라지지도 않고 변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조금이나마 돈오와 점수가 가슴에 다가온다.
육조전에 수불(睡佛)이 있다. 와불과 달리 팔을 머리에 괴고 누운 모습이다. 무얼 보여주려 하는가. 파란 바탕에 약간 도금된 대련에 숨은 뜻이라도 있는가? 좌우에 ‘잠은 원래 무심하니 몸은 누웠으나 마음은 눕지 않는다(睡本無心, 那知身臥心非臥)' '부처는 꿈에 있지 않으니 선이란 꿈나라 아닌 현실에 있다(佛存別夢, 默示禪玄夢亦玄)’라 적혀 있다. 불심이란 늘 현실에 존재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사찰 뒤에 육조가 직접 심었다는 여지나무가 있다. 1,300년 수령을 지녔다고 천년불여수(千年佛荔樹)라 부른다. 화재로 나무가 손상됐어도 다시 의연히 우뚝 살아났다. 가지가 많고 잎도 무성해 여름에는 결실도 맺는다 한다. 신공이 놀라울 뿐이다. 높이 28.8m에 이르는 7층 팔각형의 보은탑(報恩塔)이 있다. 육조의 지시에 따라 네 가지 대상에 보은하려는 마음으로 쌓았다. 부처, 부모, 나라 그리고 중생이다. 청나라 초기까지는 잘 버텼다. 1990년에 중건했다.
1989년 중건을 준비하며 탑이 놓였던 바닥을 정리했다. 1357년의 원나라 연호가 새겨진 벽돌 잔해를 다수 발견했다. 고탑이고 명찰이라 신기한 유물이 내장돼 있었다. 2006년에는 고고학자가 지궁(地宮) 유적에서 부처 사리 일곱 알을 발굴했다. 당나라 시대부터 보관됐다고 추정했다. 가사와 바리때와 함께 오조 홍인이 육조 혜능에게 전달한 증표로 판단한다. 현재 탑 옆에는 출토 유적지를 남겼다. 사리보전을 짓고 소중히 소장하고 있다.
보사중은(報四重恩)으로 보은탑을 만들었다. 부모 은혜만큼 인간의 본성에 가까울 수 있을까? 왼쪽 능선에 육조부모문(六组父母坟)이 있다. 어릴 때 사망한 아버지와 어머니 이씨의 합장묘다. 당시 풍수지리 대가가 부자의 초청을 받았다. 성질이 모질고 인색한 부잣집을 떠나 육조 모자가 거처하는 초라한 집에 머물렀다. 어머니는 정성스레 대우했다. 대사는 감사의 표시로 두 개의 묫자리를 알려주고 선택하라 했다. 구대장원(九代狀元)과 만대향연(萬代香烟)이었다. 어머니는 9대에 이르는 영화보다 영원히 후손의 제삿밥 먹을 자리를 골랐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찾아와 향을 지피니 현명한 판단이 아닐 수 없었다.
입구에 방생지(放生池)가 있다. 잉어가 헤엄치며 어슬렁거린다. 황하의 용문에서 상류로 거슬러올라 폭포를 뛰어넘는 이약용문(鯉躍龍門)이 생리다. 한가로이 작은 연못에서 노닐 운명이라니 아쉽다. 제자리를 못 찾은 용과 거북도 마찬가지다. 거북이 용의 등을 타고 있다. 아무리 ‘개천에서 용 났다’ 해도 신령스러운 자태는 아니다. 장수의 상징 거북이 용의 등에 올라타다니 둘의 융합은 어떤 뜻인가? 육조 사찰에서 부처의 영험을 받아 지혜로 무장한 중생은 아닐까?
몸은 보림에 있으나 마음은 집에 있다(身在寶林心在家)는 글을 새긴 바위가 보인다. 육조가 한 말이다. 수행에 대한 태도를 나타낸다. 수행하는데 반드시 사찰이 중요한 공간이 아니고 티 없이 맑고 편안한 마음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집이란 편안한 공간이자 안식처이니 이해가 된다. 도대체 보림은 어디를 말하는가? 불교 용어는 아니다. 그러면 성지이자 사찰일 듯하다. 다시 길을 떠난다. 그러다 보면 육조의 보림과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 선종 공부로 머리는 무겁지만 발걸음은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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