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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겨우 이겼더니 '항소'한 국가, 軍 의문사 유족은 두 번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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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익척결, 민간인 학살, 간첩조작, 고문치사… 독재정부와 군사정권이 지배하는 동안 이 나라에선 국가가 국민 위에 군림했습니다. 정부가 앞장서 기본권을 침해하고 인권을 고의로 외면한 권력 남용 사건이 많았습니다. 민주화 정부 이후 뒤늦게 국가가 과거 잘못을 인정하고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려는 노력도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과오 자인’이 곧바로 사법부의 ‘국가배상 인정’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국가 폭력에 희생된 이들과 그 가족은 왜 국가와의 법정싸움에서 판판이 패소하고 있는 것인지,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의 구조적 한계와 정부의 고의적 면피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짚어봤습니다.
'제1심 판결 중 대한민국 패소 부분을 취소한다.'
1년 2개월 만의 패소였다. 형이 군내 괴롭힘 탓에 자살했다는 진실은 바뀌지 않았는데도, 1심과 2심 재판부는 엇갈린 결론을 내놓았다. 대법원 판단을 구해 볼 수 있었지만, 유족인 김모(71)씨는 상고할 뜻을 접었다. 변론기일에 전부 출석했던 김씨의 마음을 후벼 판 한 장면 때문이다.
"국가가 항소심에서 '이중배상'을 새롭게 주장했어요. 2심 재판장님이 '상징적으로 처리해 줄 수 없겠느냐'고 조정을 권유했는데, 국가 측 대리인이 '상부 지시가 있어서 못하겠습니다' 하더라고요. '아, 이 소송은 포기해야만 하는구나' 생각이 들더군요." 김씨는 한국일보와의 서면인터뷰에서 이처럼 토로했다.
김씨 형은 1969년 스물두 살의 나이로 군대에서 허망하게 죽었다. 형에 대해 국가가 남긴 건 '군대 지휘소로 혼자 귀대하던 중 평소 군복무에 염증을 느끼고 자살을 결심, 칼빈총(M1 카빈) 멜빵끈에 목을 맸다'는 단 세 줄의 사망 확인 조서가 전부였다. 형의 죽음에 그 누구도 사과 한마디를 건네지 않았다. 시신을 확인하러 온 가족에게 쥐어진 2만 원이 전부였다. 40년이 흐른 2022년 군 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가 나선 후에야, 형의 죽음은 병영 부조리와 신병 관리 소홀로 인한 자살로 바로잡혀 순직 처리됐다.
김씨는 진상규명위 조사 결과를 토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그러나 국가는 순직을 인정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추가적인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심지어 "망인이 총을 반납하지 않아 망인의 탈선행위로 봐야 한다"는 주장까지 했다. 김씨는 "1960년대에 군대에서 일어난 일에 관해 민간인이 어떻게 더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있는지, 추가 입증을 하라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됐다"고 떠올렸다.
1심 재판부는 김씨 손을 들어줬다. △선임병들의 심한 구타 등 가혹행위 △신병 관리를 안 한 부대 관계자들의 관리·감독 소홀이라는 국가의 불법행위가 자살 배경으로 지목됐다. 청구금액 7,900만 원에 못 미치는 1,900만 원만 배상받게 됐지만, 중요한 건 국가의 책임을 법원이 인정해줬다는 것이었다. 김씨는 희망을 품었다. '국가도 형의 죽음이 미안한가 보구나.'
김씨의 희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국가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단서인 '이중배상 금지 원칙'을 들고나와 항소했다. '장병 본인이나 그 유족이 다른 법령에 따라 재해보상금, 유족연금, 상이연금 등 보상을 지급받을 수 있을 때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장병 본인이나 그 유족이 다른 법령에 따라 재해보상금, 유족연금, 상이연금 등 보상을 지급받을 수 있을 때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규정은 여러 차례 불합리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지난해 10월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이 '(전사·순직) 유족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실제 김씨 가족은 형의 죽음으로 배상받은 적도 없다. 지난해 2월 재해사망군경 결정을 받아냈지만, 1992년 어머니가 사망해 유족 등록을 할 수 없었다. 형제들은 법상 유족(배우자, 자녀, 부모 등)에 해당하지 않아서다.
이에 김씨는 항소심 과정에서 정부가 약속한 개정안에도 실낱같은 기대를 걸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개정안 통과를 기다려 두 차례나 선고를 미뤘다. 그러나 21대 국회 임기가 종료돼 끝내 개정안은 폐지됐다. 결국 항소심 재판부는 "재해보상금이 지급될 수 없는 경우에도 이 단서 적용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땐, 형의 사망 원인을 몰라 권한 행사를 못 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사망원인이 뒤늦게 밝혀진 책임이 국가에 있다고 보긴 어렵다"며 물리쳤다.
결국 김씨는 소 제기 2년 만에 패소했다. 국가에 대한 실망과 소송 비용에 대한 부담 탓에 김씨는 상고는 포기했다. 3심마저 패소하면 소송 비용 전부를 김씨가 떠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항소는 국가를 상대로 싸우는 개인에게는 그 자체로 가해일 수 있다. 국가는 "불법 행위가 없었다"고 항변하면서, 명백한 피해자가 존재하는 사건 책임을 부정한다. 수많은 피해자가 애써 승소해도 기뻐하기보다 "제발 항소하지 말라"며 절규하는 이유다.
'한국판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로 불리는 1970년대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12월, 형제복지원 피해자 소송 중 법원이 국가 책임을 처음 인정한 사건에서도 국가는 항소했다. 수용 기간을 기준으로 한 위자료 산정이 과다하단 취지였다.
피해자들은 국가가 책임지는 자세로 나서줄 것이란,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서 고통을 호소한다. 항소심 첫 공판에서 피해자 측은 "원고들은 빈곤하거나 노약자"라면서 "국가 조력으로 생활에 보탬이 됐으면 하는데, 재판이 늘어지면 원고들이 돌아가시는 등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항변했다. 김씨 역시 항소심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자들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김씨 사건의 경우 특히 국가가 2심에 와서야 이중배상을 들고나온 건 의문이다. 김씨는 "1심부터 이중배상 주장을 했다면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면서 "국가 측 대리인에게 '항소 포기를 해 달라'고 읍소도 해봤다"고 씁쓸해했다. 김씨를 대리한 법률사무소 가득의 박혜원 변호사도 "1심에서 이중배상 원칙을 주장하지 않은 이유가 어떤 것이든 최소한 1심에서부터 국가가 최선을 다해 소송에 임하지 않은 것"이라며 "국민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얼마나 국가가 책임 의식을 느끼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국가 폭력 피해자들을 좌절케 하는 이중배상 금지 원칙의 개정도 시급하다. 법무부는 한국일보에 "전사·순직 군경 등 유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을 보장하여 유족의 권리 구제 범위를 확대할 필요성이 있는 바, 국회와 협력해 신속한 법 개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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