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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필요하지만 불편한’ 기업-스포츠협회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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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총수가 협회장 맡아 성과 냈지만
시스템 함계 드러내며 곳곳 파열음
협회는 풀뿌리 운영 체계 만들고
기업은 협회 후원사로 참여 바람직
유난히 더운 여름을 보냈던 우리에게 감동을 흠뻑 선사한 2024 파리올림픽이 지난 11일 폐막했다. 아직 감동은 멈추지 않았다. 28일부터 시작되는 제17회 파리패럴림픽에서 영웅들의 서사가 계속된다.
이번 올림픽에서 기업의 역할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스포츠협회와 기업은 필요하면서도 때론 불편한 관계 속에 명암도 있다. 스포츠협회와 기업의 건강한 관계를 위한 해법은 무엇일까. 올림픽 전체 메달의 70% 이상을 경제부국들이 가져가는 ‘신경쟁’ 상황에서 스포츠협회와 기업 그리고 한국의 스포츠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번 2024 파리올림픽에서 한국은 1948년 이래 가장 적은 인원이 출전해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메달 순위 10위권 나라는 사회주의 중국을 제외하곤 모두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 달러 이상(2022년 기준)의 주요 7개국(G7) 회원국과 한국, 호주, 네덜란드다. 마치 1960년대 동서 냉전 시대 올림픽 메달이 국가의 우위를 나타내는 대결의 장이 된 것처럼 이제는 경제부국들의 경쟁의 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훈련은 과학적으로 변했고 기술과 장비는 더욱 첨단화됐다.
이런 구도에서 한국 체육계의 파리올림픽 준비는 대한체육회를 중심으로 특정 종목에 선택과 집중을 한 것처럼 보인다. 축구, 농구, 배구, 하키 등 여자 핸드볼을 제외한 구기 종목의 무더기 예선 탈락은 경기력 저하가 가장 큰 원인이지만, 메달을 위한 특정 종목의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 역시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선택과 집중은 한정된 자원으로 목표에 집중하는 데 효과적이지만, 스포츠라는 본연의 수평적 문화의 저변 확대를 높이는 측면에서는 좀 더 깊은 고려가 필요하다.
한국의 체육계 구조는 G7들과는 다른 독특한 형태를 갖고 있다. 유럽 스포츠 선진국은 모든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풀뿌리 지역 스포츠클럽 제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종목별 협회가 중심이 되는 구조다. 반면 한국은 박정희 정권 이후 정부 주도의 학교 운동선수를 기반으로 엘리트 체육 제도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협회 운영에 대한 정부의 부담을 대기업의 몫으로 돌렸는데, 이 과정에서 기업은 한국의 스포츠와 동행하게 됐다.
처음에는 원치 않게 떠안은 면이 많았으나 대기업이 꾸준히 참여하면서 차츰 ‘기업 총수=협회장’이라는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아마추어 비인기 종목을 맡고 있는 기업 협회장의 경우 프로 구단주보다 훨씬 더 사회 공헌적이고 대중 친화적이어서 많은 미담이 나오곤 한다.
실제로 대를 이어 양궁을 후원해 온 현대차그룹은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금메달 5개 은메달, 동메달 각각 1개의 성과를 올렸다. 특히 여자 양궁 단체전은 올림픽 10연패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며 무려 40년간 최고의 자리를 수성했다. 올림픽은 물론 각종 세계 대회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는 펜싱도 협회장사인 SK그룹의 역할이 컸다. 사격의 경우 한화그룹이 지난해 11월 협회를 떠났지만 2002년부터 21년간 대한사격연맹 회장사로 한국 사격을 지원했던 역할은 무시하기 어렵다. 주로 공공 재정으로 운영되는 패럴림픽 종목은 전직 정치인, 기관장, 기업 최고경영자(CEO) 등 다양한 출신의 협회장들이 부족한 재원 마련에 힘쓰고 있다.
기업이 스포츠 협회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형태는 크게 두 가지다. 후원사가 돼 협회의 공식 파트너로 참여하는 경우와 기업의 장이 직접 협회장을 맡는 경우다.
전자는 올림픽 공식 파트너인 삼성전자가 대표적인 사례다. 파리올림픽을 통해 자사 제품인 갤럭시 폰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주력했다. 완전히 기업 마케팅 전략 차원에서 접근한 것이다. 반면, 후자는 일종의 사회적 책임 활동 성격이 짙다. 특히 비인기 종목의 협회장이 되면 협회와 협회장이 동시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후원 효과는 사회적인 이미지 제고를 넘어 협회장의 국제 비즈니스적 친분을 넓힐 기회로 활용되기도 한다.
문제는 한국의 아마추어 스포츠협회는 물론 프로스포츠조차도 거의 대부분 기업인에게 의지하는 데 있다. 이 경우 주인-대리인 관계가 성립되며, 자칫 주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대리인이 움직일 수도 있다. 한국의 프로야구, 프로축구 구단의 대표이사나 단장들은 자신을 임명한 구단주(기업 총수)의 의중에 맞춰 팀을 운영하게 된다. 또 기업 CEO가 아마추어협회를 직접 맡으면 실무진과 임원들조차도 회장과의 이해관계에 쏠리게 된다. 총수가 협회의 실소유자가 아닌데 마치 소유와 경영을 동시에 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 소유-경영이 일치하는 구도에서는 메달이란 성과를 향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경제위기나 지도력 상실 등 오너 리스크와 예스맨 임원들로 인한 협회장 멋대로 행정을 피할 수 없는 위험도 있다. 최근 불거진 일부 협회의 문제 발생도 이런 원인 때문에 기인한 면도 있다.
스포츠협회는 소유와 경영의 잣대로 움직이면 안 되는 자발적 봉사와 대중스포츠 인구에 기반한 공동체 조직이다. 현재와 같은 특정 종목에 기반한 선수 발굴과 집중 훈련을 통한 특별반 운영과 같은 스포츠 시스템은 지속성에 한계가 있고 해당 종목의 기반인 대중스포츠 인구는 정체의 길로 갈 수 있다. 이런 구조에서는 메달을 딴 선수들조차도 은퇴 후 지도자 외에는 갈 길이 많지 않다. 정부에서 만든 포상금, 생계비 위주의 체육인복지법도 이런 구조에 대한 대책으로 풀이된다. 이번 올림픽에 출전한 다른 나라 선수들의 경우 전기 기술자, 방산기업에 근무 중인 원자력공학 석사, 조정 여자 경량급 2인조 스컬에서 금메달을 따고 영국으로 돌아온 지 3일 만에 청진기를 두른 의사 등 자기 직업을 갖고 스포츠를 입체적으로 병행한 사례가 많다. 이는 지자체나 실업팀에 의지하는 한국의 엘리트 운영 체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를 들어 펜싱의 경우, 펜싱을 좋아하는 A선수가 지역 동호회나 지역 스포츠클럽에 다니면서 실력을 쌓은 뒤 지역대회 및 전국대회에서 우승하고 국가대표에 선발되면, 그 선수가 속해 있는 그 클럽이나 학교에 깃발을 꽂고 그 자리가 국립 펜싱 트레이닝센터가 되어 우수한 지도자와 훈련이 과학적으로 지원되는 유연한 체제여야 한다. 또 협회는 광역시도 단체, 시군구, 읍면동에 이르기까지 풀뿌리 스포츠활동 조직과 운영체계를 만들어 투명하고 책임 있는 거버넌스를 도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 협회의 후원사로 참여해 연맹과 파트너십을 통해 비인기 종목의 재정적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기여하고 협회는 참여하는 기업에 사회적 공헌의 실제적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공유가치창출(CSV·Creating Shared Value) 형태의 상생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후원하는 기업, 실업팀이나 프로팀 그리고 지자체의 참여가 더욱 활성화돼 스포츠의 경제적 파이를 키울 수 있다.
한국의 스포츠 발전에 기여한 대부분의 스포츠협회장들은 한편으로는 정부와 권력자의 의지를 살펴야 하는 경제정책에 민감한 기업인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부는 메달 수가 중요한지 아니면 어떤 구조를 통해 메달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한지 한국 체육계의 방향성에 대해 명확한 비전과 철학을 밝혀야 한다. 아울러 스포츠무브먼트를 이끄는 대한체육회는 정부와 모든 체육인 그리고 국민에 대해 스포츠를 통한 사회발전과 사회통합의 시대적 소명을 다하고 있는지 더욱 성찰해야 한다.
전 세계에 울려 퍼지는 애국가를 부르며 감동하고 조국에 대한 사랑과 기쁨을 누리는 기회는 올림픽과 같은 국제 경기 외에는 많지 않다. 예나 지금이나 힘든 훈련과 고통을 인내하며 출전한 선수들이지만, 스포츠에 임하는 자세는 조금 달라 보인다. 예전 세대가 헝그리 정신으로 싸워왔다면, 선진국 한국에서 태어난 MZ세대 선수들은 경기를 즐기는 모습이다. 경기장에서의 거침없는 모습, 시상대에서도 구김살 없는 모습을 보이는 그들에게서 한국의 밝은 미래를 발견한다.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스포츠과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프랑스 그르노블1대학에서 박사를 받은 뒤, 교토대 경제학연구과 초빙교수, 대한올림픽위원회 스포츠마케팅위원회, 법무부 국적심의위원회 위원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스포츠에 대한 글로벌 시각을 토대로, 한국 스포츠에 접목할 사회적·경제적 가치 본연의 자세를 모색하고 있다. '프랑스 스포츠체제의 조직이론', '일본 글로벌 광고회사의 스포츠마케팅 전략', '프로스포츠 구단의 서비스 혁신 전략' 등 다수의 논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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