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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16배 태평양 거대 쓰레기장 만든 주범은 일본·중국·한국

입력
2024.08.20 12:00
수정
2024.09.19 11:1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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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 : 지옥이 된 바다 2부>
② 불편한 미래
GPGP 최고 전문가 로랑 르브르통 인터뷰
수산대국 3국, 어구 많이 쓰고 마구 버려
이대로 가면 2060년 바다 폐플라스틱 4배
파리기후협정 수준 강력한 국제 규범 필요

편집자주

콧구멍에 플라스틱 빨대가 박혀 피 흘리는 바다거북, 뱃속에 찬 쓰레기 탓에 죽은 향유고래. 먼바다 해양 생물들의 비극은 뉴스를 통해 잘 알려졌죠. 우리 바다와 우리 몸은 안전할까요? 한국일보는 3개월간 쓰레기로 가득 찬 바다를 찾아 다녔습니다. 동해와 서해, 남해와 제주에서 어부와 해녀 63명을 만나 엉망이 된 현장 얘기를 들었고, 우리 바다와 통하는 중국, 일본, 필리핀, 미국 하와이를 현지 취재했습니다. 지옥이 된 바다. 그 가해자와 피해자를 추적했습니다.


네덜란드의 비영리단체인 '오션클린업'이 북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에서 발견한 플라스틱 쓰레기들. 장어 통발 유도구(좌측 상단) 등 다양한 플라스틱 쓰레기가 보인다. 오션클린업 제공

네덜란드의 비영리단체인 '오션클린업'이 북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에서 발견한 플라스틱 쓰레기들. 장어 통발 유도구(좌측 상단) 등 다양한 플라스틱 쓰레기가 보인다. 오션클린업 제공

미국 서부 해안에서 배를 타고 서쪽으로 밤낮없이 나흘쯤 달리다 보면 푸른 바다에 색색의 양념 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은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자세히 보면 잘게 부서진 플라스틱 조각들이다. 사람들은 이곳을 ‘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GPGP)’라고 부른다. 남한 면적의 16배 크기(약 160만㎢ 추정)로 세계 각국이 바다에 버린 온갖 폐기물이 해류를 타고 흘러와 한데 모여 쓰레기장을 이룬 곳이다.

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 위치. 그래픽=강준구 기자

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 위치. 그래픽=강준구 기자


한중일 폐어구가 태평양 망가뜨려

로랑 르브르통(40)은 ‘지옥이 된 바다’를 상징하는 GPGP에 대해 가장 잘 아는 해양학자로 꼽힌다. 그는 2016년 네덜란드 비영리단체(NGO)인 오션클린업에 합류해 9년째 GPGP를 연구하고 있다.

로랑 르브르통이 지난 6월 28일 화상 시스템으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유대근 기자

로랑 르브르통이 지난 6월 28일 화상 시스템으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유대근 기자

뉴질랜드에 사는 르브르통은 지난 6월 28일 한국일보와 화상 인터뷰에서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북아 3국을 GPGP라는 괴물을 만든 ‘범인’으로 지목했다. 그는 “우리 연구팀이 2019년 이후 GPGP에서 플라스틱 파편(5㎝ 이상) 6,000여 개를 주워 포장지에 쓰인 글씨 등을 토대로 발원국을 분석했다”며 “한중일에서 온 비율이 76%에 달했다”고 설명했다. 한반도에서 온 쓰레기 비율은 10%로 일본(34%)이나 중국(32%)보다는 적었지만 위안 삼을 수 없는 수치다.

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GPGP)의 플라스틱은 어디서 왔나. 그래픽=이지원 기자

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GPGP)의 플라스틱은 어디서 왔나. 그래픽=이지원 기자

태평양을 접하고 있는 나라는 30~40개국쯤 된다. 왜 하필 한중일 세 국가가 해양 쓰레기 문제의 주범이 됐을까. 르브르통은 “수산업 규모가 매우 큰 나라들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수산업이 거대해질수록 더 많은 어구를 쓰고 버리는데, 이 쓰레기가 바다를 망가뜨리는 주된 오염원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GPGP에 떠있는 쓰레기 가운데 75~86%가량이 버려지거나 유실된 폐어구(그물, 통발 등)라는 게 르브르통 연구팀의 분석 결과다. 한중일 어부들이 유기∙유실한 그물 등은 북태평양의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미국 캘리포니아와 하와이 사이까지 떠내려 가서 쌓인다. 르브르통은 “GPGP에 가보면 한국어가 적힌 어업 쓰레기는 흔히 볼 수 있다”며 “통발이나 부표, 제리캔(액체를 담는 손잡이가 달린 플라스틱 통) 등이 많다”고 설명했다.

한중일 3개국 수산물 생산량. 그래픽=이지원 기자

한중일 3개국 수산물 생산량. 그래픽=이지원 기자


2060년 바다 플라스틱 폐기물 4배 증가

쓰레기장에도 생명체는 산다. 르브르통은 “최근 미국 동료 연구자들과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원래 다른 지역에 살던 해양생물종이 쓰레기에 붙어 GPGP까지 떠내려오고 있으며, 이 중 일부는 바닷속에 널브러진 쓰레기를 바위나 해초처럼 익숙한 자연 환경으로 여기고 살아남기 위해 적응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르브르통은 국제 사회가 마음을 고쳐 먹고 획기적인 대책을 시급히 마련하지 않으면 미래의 바다는 더 암울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이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플라스틱을 계속 생산한다면 2060년에는 전 세계 바다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4배로 불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로 떠내려오기 전에 이를 차단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이 해양 과학자의 설명이다.

그는 강력한 국제 연대 없이는 GPGP를 비롯한 해양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기후위기가 심각해지자 국제사회가 2015년 법적 구속력을 가진 '파리기후협정'을 만들었듯, 해양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구체적인 규범이 수립돼야 한다는 게 르브르통과 동료들의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르브르통이 올해와 내년에 주목하는 도시가 하나 있다. 바로 대한민국 부산이다.

"유엔환경계획(UNEP) 주도의 국가 간 협상이 오는 11월 부산에서 열려요. 플라스틱 오염 해결을 위한 국제협약을 만들기 위한 자리죠. 내년 6월에는 같은 도시에서 '제10차 아워 오션 콘퍼런스(OOC)'가 개최되는데 해양 오염 문제와 지속가능한 어업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입니다. 바다에 관심을 둔 이들의 눈이 한국에 쏠릴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이 해양 플라스틱 문제 해결에 기여한 나라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한국일보 특별취재팀
팀장 : 유대근 기자(엑설런스랩)
취재 : 진달래·원다라·이서현 기자(엑설런스랩), 조영빈(베이징)·허경주(하노이) 특파원, 한채연 인턴기자
사진 : 이한호·최주연·정다빈 기자
영상 : 박고은·김용식·박채원 PD, 제선영 작가, 이란희 인턴PD


※<제보받습니다> 한국일보는 해양 쓰레기 문제를 집중 취재해 보도해 나갈 예정입니다. 해양 쓰레기 예산의 잘못된 사용(예산 유용, 용역 기관 선정 과정의 문제 등)이나 심각한 쓰레기 투기 관행, 정책 결정 과정의 난맥상과 실효성 없는 정책, 그 외에 각종 부조리 등을 직접 경험했거나 사례를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다면 제보(dynamic@hankookilbo.com) 부탁드립니다. 제보한 내용은 철저히 익명과 비밀에 부쳐집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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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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