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 체계 붕괴' 가자지구서 25년 만에 소아마비 발병

"백신 미접종 10개월 아기, 소아마비 확진"
7월 가자지구 하수서 바이러스 발견되기도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지난달 19일 가자지구 중부 데이르알발라에서 거리에 고인 폐수 근처를 지나 식량 배급소로 향하고 있다. 데이르알발라=AFP 연합뉴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이 11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가자지구에서 25년 만에 소아마비가 발병했다. 잦은 공습과 피란으로 가자지구 내 보건·위생이 붕괴되면서 제기됐던 감염병 우려까지 현실화한 셈이다.

16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보건부는 이날 가자지구 중부 지역에서 백신을 맞지 않은 10개월 아기가 소아마비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의사들은 아기의 소아마비 증상을 의심해 아기의 대변을 요르단 연구소로 받아 검사를 진행했다고 보건부는 설명했다.

가자지구에서 소아마비가 발병한 것은 25년 만이다. 소아마비는 백신 보급으로 대부분의 국가에서 종적을 감췄으나,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7월 가자지구 하수 샘플에서 2형 변이 소아마비 바이러스를 발견했다며 감염병 확산 위험을 경고한 바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가자지구에서 8월 말부터 7일간 두 차례 전투를 멈추고, 64만 명의 어린이에게 백신 접종을 하자고 촉구하기도 했다. WHO와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도 "전투를 중단해야 어린이와 가족이 안전하게 의료 시설에 접근할 수 있고, 지역 사회 복지 종사자들이 소아마비 예방 접종을 위해 의료 시설에 갈 수 없는 어린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며 "휴전은 가자지구와 그 지역에서 공중 안보를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소아마비 바이러스는 하수와 오염된 물을 통해 퍼지며 전염성이 매우 강하다. 주로 5세 미만 어린이에게서 발병하지만 성인도 걸릴 수 있고, 영구적인 근육 쇠약과 마비 등 증상을 겪을 수 있다.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는 "보건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가자지구의 '어려운' 상황, 즉 거리에 하수가 퍼지고, 의료품이 부족하고, 이스라엘 봉쇄로 개인 위생용품이 부족한 상황을 이 지역에 바이러스가 퍼진 원인이라고 비판했다"고 전했다. 앞서 소아과 의사 타냐 하지하산은 가자지구 하수에서 발견된 소아마비 바이러스를 "시한폭탄"이라고 칭하며 "일반적으로 소아마비에 걸린 환자가 있으면 격리하고, 화장실을 따로 사용하고, 다른 사람과 가까이 있지 않도록 해야 하지만 그것은 (피란민이 밀집한 난민 캠프에서) 불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나연 기자 is2ny@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