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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석 뚫는 충성심'은 옛말… 곪아 터진 정보사의 폐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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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금석을 뚫는 충성심으로 점을 찾아 선을 이어 통일 성업 완수에 헌신한다.”
정보사 슬로건
쇠붙이와 돌덩이, 무엇이든 뚫어낼 것 같던 ‘육군 정보사령부의 정신’이 방향을 잃었다. 점으로 선을 잇기는커녕, 정보요원(블랙요원) 신상정보 등 민감한 기밀이 잇달아 유출되고 초유의 지휘부 항명 사태까지 터지면서 조직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다. 시스템이 붕괴됐다는 자성과 우려의 목소리가 정보사 안팎에서 터져 나온다.
1990년 육해공군 정보부대 통합으로 개편된 정보사는 주로 해외 첩보와 기밀을 다루는 기관이다. 국가정보원이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한다면, 정보사는 음지로 스스로를 더 숨기고자 한다. 정보사 출신 인사는 19일 한국일보에 "우리는 모두 공작원이고 특수부대 중의 특수부대"라며 "국방부 지휘라인 아래 있지만 실제 업무는 국정원의 통제를 받는다"고 말했다.
호칭도 사령부는 회사, 간부는 회장 또는 사장으로 부른다. 1946년 군정청 국방 총사령부의 정보과로 시작해 80년 가까이 해외에서 군사정보를 입수하는 중추 역할을 해왔다.
정보사령관을 정점으로 한 지휘부 항명사태와 블랙요원 정보 유출 등 최근의 잇단 사태에 정보사 내부에선 '조직의 최대 위기'라는 자조와 우려가 적지 않다. 은밀해야 할 조직의 존재와 조직 내부의 정보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 자체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부는 섭섭함을 잔뜩 섞은 불만의 목소리를 터뜨린다. 특히 항명 사태를 두고는 지난해 육군 출신 정보사령관 인사를 꼬집는다. 정보사의 역할과 특수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외부 인사가 분란과 갈등을 불러일으켰다는 지적이다. 정보사 간부 출신의 예비역 A씨는 본보와 통화에서 “(정보사) 일 자체가 불법과 합법을 넘나드는 업무라 특수성을 모르면 안 된다”고 꼬집었다. “온몸을 나라에 바쳐서 근무해도 (진급 등 동기부여가) 안 되면 탈이 나지 않겠느냐”는 게 그의 해석으로, ‘조직 내 잔뼈가 굵은’ 정보사 인력을 예우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보사 바깥의 시각은 딴판이다. “우리는 특수조직”이라며 시스템보다 카르텔로 움직여 온 정보사의 폐쇄적 구조가 곪을 대로 곪아 터졌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항명 사태는 물론이고, 앞서 터진 군무원 블랙요원 명단 유출 사건도 무조건적인 폐쇄성 아래 자정 작용을 잃은 사례라는 지적이다. 정부 출연 연구소 출신의 안보전문가는 "최근의 사건들은 카르텔의 폐해를 보여준 전형적 사례"라며 "현직 군무원은 검은 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조직의 근간을 해쳤고, 현직 간부는 예비역 단체와 결탁해 서로의 이권을 챙겨준 과정이 드러난 모습"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분석은 각각이지만, '검은 돈'에 취약해진 내부 실태와 원인을 점검하고, 과거와는 다른 방식의 보상책을 고민할 때라는 지적에는 대부분 공감한다.
정보기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 B씨는 "간첩이 우리 측 정보원으로부터 아주 작은 기밀정보를 받고도 생각보다 많은 금전적 보상을 지급하고 신뢰관계를 쌓아간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관계를 바탕으로 같은 일들을 반복한 뒤 결정적 순간 뒤통수를 친다"고 지적했다. 금전적 유혹의 첫 단계에서부터 뿌리칠 수 있는 차단막을 구조적으로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김주형 안보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싱가포르는 일정기간 정보유출이 되지 않을 경우 구성원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며 “(보상 제도를 개선하면서) 9·11테러 직후 정보기관 개혁을 통해 국가정보장(DNI)을 신설한 미국처럼 정보기관의 권력 남용 방지를 위한 독립기구 설치도 고민해 볼 시기”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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