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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피로 쓰인 역사, 혀로 덮을 순 없다"…시민·후손 500명 몰린 광복회 기념식

입력
2024.08.15 15:33
수정
2024.08.15 17:07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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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광복회장 "저열한 역사 인식 판친다"
"역사 분열·대립 아닌 미래 위한 동력 삼길"
시민들 "정부 통합 위해 더 노력해야" 지적

15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광복회 주최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축하공연이 진행되고 있다. 신용주 인턴기자

15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광복회 주최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축하공연이 진행되고 있다. 신용주 인턴기자

79주년 광복절인 15일, 광복회가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백범기념관에서 56개 단체가 모인 독립운동단체연합과 함께 자체 기념식을 열었다. '뉴라이트 성향' 논란에 휩싸인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등 정부에 항의하는 취지다. 광복절 행사가 정부 공식 경축식과 독립운동단체 주최 기념식으로 쪼개진 건 해방 이후 처음이다.

조국 대표 등 의원들 개인 자격 참석

이날 광복회 행사에는 정원(300명)을 훌쩍 넘긴 500여 명이 몰렸다. 광복회는 자칫 정쟁의 중심이 될 것을 우려해 정치권 인사는 초청하지 않았으나,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등 야당 인사 100여 명이 정부 행사 대신 이곳을 찾았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비롯해 태극기를 들고 기념관 앞에서 사진을 찍는 등 광복회 행보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기꺼이 참석한 일반 시민들의 모습도 보였다.

광복회 주최 광복절 기념식에서 이종찬 광복회장이 기념사를 하며 '국민을 위하는 후손이 되겠습니다'라고 적힌 소책자를 들자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 등 참석자들이 소책자를 따라 들어 올리고 있다. 연합뉴스

광복회 주최 광복절 기념식에서 이종찬 광복회장이 기념사를 하며 '국민을 위하는 후손이 되겠습니다'라고 적힌 소책자를 들자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 등 참석자들이 소책자를 따라 들어 올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종찬 광복회장은 기념사에서 "대단히 참담한 심정"이라고 입을 뗐다. 이어 "진실 왜곡과 친일사관에 물든 저열한 역사인식이 판치며 우리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며 "역사의식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물러설 수 없는 투쟁의 일환으로 광복회원의 결기를 보여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회장과 참석자들은 '국민을 위하는 후손이 되겠습니다'라고 쓰인 손팻말을 번쩍 들어 올리기도 했다.

이 회장은 정부의 역사관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피로 쓰인 역사를 혀로 논하는 역사로 덮을 순 없다"며 "자주독립을 위한 선열들의 희생을 폄훼하는 일은 국민들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어 "건국절을 만들면 얻는 건 이승만에게 건국 아버지라는 관을 씌워주는 것 하나뿐이지만, 우리는 일제강점을 합법화하고 독립운동 역사가 송두리째 부정돼 실로 많은 걸 잃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 "역사는 통합과 미래로 나아가는 동력이 돼야 한다. 분열과 대립의 빌미를 역사에서 찾지 말길 호소한다"고 덧붙였다. 연설 중간중간 참석자들은 "옳소" "맞다"며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이종찬 광복회장이 광복회 주최로 열린 광복회 주최 광복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신용주 인턴기자

이종찬 광복회장이 광복회 주최로 열린 광복회 주최 광복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신용주 인턴기자

행사에 참석한 독립운동가 후손들도 둘로 갈라진 한국 사회를 회복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전직 독립기념관 이사이자 의병장 이강년 선생의 외손주인 김갑년 고려대 교수는 "광복 79주년인데 나라 둘로 찢어져 있고 그 하나인 대한민국 안에서도 이리 찢기고 저리 찢겨 바닷가 모래섬 같은 상황"이라며 "광복절 기념식마저도 쪼개져 거행되고 있고, 대통령은 그 책임을 광복회와 국민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친일 편향 국정 기조를 내려놓고 국민을 위해 옳은 길을 선택하고, 그럴 생각이 없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사단법인 조선의열단기념사업회 회원들이 광복회 기념식이 열리고 있는 백범기념관 앞에서 현수막을 들고 있다. 서현정 기자

사단법인 조선의열단기념사업회 회원들이 광복회 기념식이 열리고 있는 백범기념관 앞에서 현수막을 들고 있다. 서현정 기자


시민들 "분열 조장하는 정부, 통합 노력하라"

정부 공식 경축식이 열린 세종문화회관 대신 백범기념관으로 온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정부가 분열을 조장한다는 부정적인 목소리가 적잖았다.

권오법(63)씨는 "뉴라이트 인사를 임명한다는 뉴스에 너무 화가 나서 홀로 집에서 나왔다"며 "민족 정기를 바로잡기 위해 광복회에 도움을 주고 싶어 왔다"고 말했다. 처음 기념행사에 와봤다는 허재만(63)씨도 "일본과 친하게 지내는 건 좋지만, 일방적으로 일본한테 끌려다니면서 목숨까지 바친 선조들은 뭐가 되냐"며 "과거는 사죄하면서 친분을 도모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인천 미추홀구에서 왔다는 신남휴(57)씨는 "친일세력을 독립기념관 원장으로 세운 적은 없었다. 울분이 터져 여기까지 왔다"고 분노했다.

시민들은 어느 때보다 통합의 가치가 중요한 시대인 만큼, 정부가 사회적 합의에 더 공을 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태극기를 들고 가족들과 함께 기념관에 온 김대광(39)씨는 "정치의 역할은 분열이나 갈등이 아니고 통합인데 지금 반쪽짜리로 분열이 생기고 있다"며 "광복회 등 기존 단체들이 원하지 않는 인사를 꼭 해야 할지 깊게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항단연)은 25개 독립운동가 단체장들, 야당 인사들과 함께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취소를 촉구하며 대통령실이 있는 삼각지역까지 항의 행진을 벌였다. 이들은 행진 내내 "뉴라이트가 점령한 윤석열 정권의 참담한 역사·교육기관장 임명에 대해 제2의 독립운동을 하는 심정으로 투쟁할 것"이라고 외쳤다.

서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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