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1945년이 역사적으로 더 중요… 백선엽 친일 논란 다시 봐야"

입력
2024.08.12 20:30
수정
2024.08.12 20:37
3면
구독

‘학자 김형석’과 다른 ‘관장 김형석’ 주장도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이 12일 서울보훈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 신용주 인턴기자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이 12일 서울보훈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 신용주 인턴기자

역사관 논란으로 광복회 등으로부터 퇴임 압력을 받고 있는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보다 1945년 해방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을 중심으로 제기된 1948년 정부 수립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해 오던 그간의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선 것이다. 다만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안익태와 백선엽 장군 등에 대해선 "학문적 재검증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유지해 논란은 이어질 전망이다. 김 관장은 자진사퇴 의사가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김 관장은 12일 서울보훈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임명 적절성 논란의 배경이 된 건국절 제정 옹호 논란과 친일 역사관, 뉴라이트 성향 등에 대해 해명했다. 그는 "독립운동가를 폄훼하고 일제강점기의 식민지배를 옹호한다는 의미로 말하는 뉴라이트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광복회 등 독립유공자단체와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에서 김 관장에 대한 임명 철회를 요구를 불식시키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왔다.

“건국절, 정부가 추진해도 관장직 걸고 반대”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이 12일 서울보훈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 신용주 인턴기자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이 12일 서울보훈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 신용주 인턴기자

김 관장을 둘러싼 가장 큰 논란은 건국절 논쟁이다. 이를 의식한듯 김 관장은 모두발언부터 "나는 건국절을 만들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건국절 제정을 추진할 때 독립기념관장직을 걸고 반대할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에 "역사학자로서의 양심을 걸고 분명히 반대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는 그간 김 관장이 학자로서 해 온 주장과 거리가 있는 발언이다. 김 관장은 지난해 12월 "대한민국이 1945년 8월 15일 광복됐다며 그게 광복절이라고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참 많은데, 역사를 정확하게 모르는 것"이라며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이야말로 진정한 광복"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전날 한 언론 인터뷰에서도 "나에게 ‘1945년 광복과 1948년의 제헌, 둘 중에 어느 쪽이 중요한가’라고 물으면 단연코 후자"라고 답했다. 불과 하루 사이에 발언의 뉘앙스가 달라진 것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둘러싼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결이 다소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김 관장은 '이 전 대통령과 백범 김구 선생을 함께 국부로 모시자'는 과거 주장에 "사인으로서 학자와 공인으로서 관장의 역할이 다르다"며 한 발 물러섰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을 높이는 것이 임시정부와 4·19혁명을 계승하는 헌법에 위배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독립기념관장으로서 이 전 대통령을 건국의 아버지로서 추대할지에 대해선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애매하게 답했다.

“백선엽 조선인 토벌 없더라”… 답변 중 ‘한일합방’ 표현도

친일인명사전. 한국일보 자료사진

친일인명사전. 한국일보 자료사진

친일파에 대한 판단에는 여전히 논란이 남을 만한 답변을 내놓았다.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과 관련해 "억울하게 친일파로 매도된 분들이 있어선 안 된다"며 취임 때 했던 얘기를 재차 확인했다. 특히 김 관장은 백선엽 장군의 일제시대 간토특설대 복무를 옹호했다는 지적에 대해 "이분(백 장군)이 간도특설대에 있을 때 108차례 토벌작전이 이뤄졌다"며 "일지를 보니 조선인 독립운동가 대상 토벌은 없다"고 주장했다. 백 장군이 1993년 펴낸 일본판 자서전에서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그 때문에)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밝힌 것과도 상반된 내용이다.

독립기념관장 지원자 면접 당시 그가 "일제시대 (우리 민족의) 국적은 일본"이라고 답한 점을 인정하면서 "그래서 국권을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을 한 것 아니냐고 답변했다"고 해명했다. 답변 과정에서 그가 "한일합방을 한 그 순간부터 우리는 국권을 빼앗기고 일본 국적으로 편입이 돼 버린 것"이라고 한 부분도 도마에 올랐다. 둘 이상의 나라가 하나로 합쳐졌다는 뜻의 '합방'이라는 표현은 일제의 강압에 의해 이뤄졌다는 사실을 배제하고 있어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김형준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