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지옥이 된 바다 구하려면 "쓰레기 쏟아지는 수도꼭지 잠가야"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콧구멍에 플라스틱 빨대가 박혀 피 흘리는 바다거북, 배 속에 찬 쓰레기 탓에 죽은 향유고래. 먼바다 해양 생물들의 비극은 뉴스를 통해 잘 알려졌죠. 우리 바다와 우리 몸은 안전할까요? 한국일보는 3개월간 쓰레기로 가득 찬 바다를 찾아다녔습니다. 동해와 서해, 남해와 제주에서 어부와 해녀 63명을 만나 엉망이 된 현장 얘기를 들었고, 우리 바다와 통하는 중국, 일본, 필리핀, 미국 하와이를 현지 취재했습니다. 지옥이 된 바다. 그 가해자와 피해자를 추적했습니다.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는 물이 점점 욕조에 차오른다. 이 욕조에는 배수구가 따로 없다. 물이 넘쳐 욕실이 엉망이 되지 않게 하려면 둘 중 하나 이상을 당장 실행해야 한다. ①욕조 속 물을 계속 퍼내거나 ②수도꼭지를 잠그는 일이다.
우리 바다를 엉망으로 만든 해양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수도꼭지 이론'과 비슷하다. 동해와 서해, 남해로 해마다 새로 버려지는 쓰레기는 14만5,000톤(2019년 기준 추정치)에 달한다. ①버려지는 쓰레기 양을 줄이거나 ②이미 바다에 유입된 쓰레기보다 더 많이 줍는 게 해결책이다. 정부는 그동안 줍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새로 버려지는 쓰레기)이 워낙 많다 보니 큰 효과가 없었다. 해양 쓰레기 문제를 다루는 민간연구소 '동아시아바다공동체 오션'의 홍선욱 대표는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일은 물이 욕조 밖으로 넘치는데 바닥만 닦고 있던 것"이라며 "이제라도 수도꼭지를 잠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양 쓰레기 정책의 중심축이 수거에서 발생을 줄이는 쪽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정부도 이를 모르는 건 아니다. '청정한 바다'를 국정과제 중 하나로 내건 윤석열 대통령은 "10년 안에 연간 해양플라스틱 쓰레기 발생량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해양수산부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지난해 '해양 쓰레기 저감 혁신대책'을 내놓았다. 핵심은 단순 수거 위주가 아닌 쓰레기 발생을 막는 데 더 신경 쓰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말잔치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당장 정책 수립의 밑바탕인 해안 모니터링 사업(해마다 동·서·남해안 60곳에 버려진 쓰레기를 분석해 양과 출처 등을 확인하는 것) 예산을 15년 만에 전액 삭감했다. 인간이 버리고 바다 생물들이 섭취하는 해양 미세 플라스틱 오염 대응 관련 기술 연구개발(R&D) 예산도 작년보다 67%나 깎였다.
바다를 살릴 마음이 진짜 있다면 지금이라도 더 과감해져야 한다. 버려지는 쓰레기 양을 획기적으로 줄이지 못하면 청정한 바다는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특별기획팀은 3개월간 해양 쓰레기 문제를 취재하며 만난 바다 전문가 37명과 어부, 해녀 등 현장 어민 63명에게 그들이 생각하는 '진짜 대책'을 물었다.
제주 먼바다에서 조업한 '607 영진호'(아래 연관 기사 참고)에서 목격했듯 어부들이 버리는 낡은 어구들은 바다를 망치는 주범이다. 해수부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어민들은 한 해 약 4만 톤의 그물과 통발 등 어구를 바다에 버린다. 같은 기간 바다에서 줍는 폐어구 평균량은 1만1,000톤이니, 매년 3만 톤이 바다에 쌓여 어장을 썩게 만든다.
정부도 폐어구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안다. 이 때문에 올해부터 어구 보증금제를 도입했다. 새 통발을 팔 때 1,000~3,000원의 보증금을 붙이고 나중에 못 쓰게 될 때 반환하면 보증금을 돌려주는 제도다. 맥주·소주의 빈 병을 소매점에 가져다주면 100~130원을 환급해주는 것과 유사하다. 폐어구를 바다에 버리면 보증금을 받을 수 없으니 돈이 아까워서라도 육지로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가 깔렸다.
하지만 벌써 꼼수가 판친다. 어민들이 어구를 대량 구매하면 생산업체에서 보증금 액수만큼 할인해주는 것이다. 어민 입장에선 보증금을 자기 돈으로 내지 않았으니 폐어구를 반환하려는 유인이 떨어진다.
하와이 몽크물범을 괴롭힌 우리나라 장어 통발 문제(아래 연관 기사 참고)도 해결책이 있다. 바다에 유실되더라도 2~3년쯤 지나면 썩어 없어지는 친환경 제품을 만들면 된다. 국립수산과학원이 2007년에 세계 최초로 생분해성 어구를 개발했지만 많이 팔리진 않았다. 나일론 그물보다 2~7배 비싼 탓이다. 정부는 이 어구를 보급하려고 올해 34억 원을 썼다. 이 돈으로 생분해 그물·통발을 사려는 어민에게 일반 그물과 가격 차이가 나는 만큼 지원해줬다.
하지만 어민 인식이 바뀌지 않고 있어 나랏돈을 쏟는 정책은 한계가 있다. 어민 안휘성(68)씨는 "보조금을 받는 만큼 친환경 통발을 쓰고는 있지만 사용 기한이 일반 어구의 3분의 1 수준으로 짧고, 어떤 회사 제품은 어획량도 떨어진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생분해 어구의 성능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홍보하지만 어민들은 사용을 꺼리고 있다.
현실을 단박에 바꿀 묘수는 없다. 이럴 땐 정수를 선택해야 한다. 우리나라 어민 수는 8만7,100명이다. 충남 예산군이나 전북 남원시 등 지역 소도시 인구와 비슷한 수준이다. 교육 등을 통해 이들의 마음만 바꿔도 바다는 지금보다 훨씬 깨끗해질 수 있다.
흑산도 어부인 최승진(48)씨는 "어민들도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있지만 당장 뭘 해야 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정부나 시민단체, 언론 등이 쉽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는 얘기다.
“고깃배가 쓰레기 버리는 걸 막으려면 보증금제 정도로는 부족해요. 구매 이력을 기록해두고 다 쓴 그물을 반납하지 않으면 벌금이라도 물려야 해결될 겁니다.”
충남 서산 어민 박정섭(66)씨는 강한 규제책이 있어야 어부들이 마음을 고쳐먹을 것으로 본다. 해수부 공무원들도 이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예컨대 어선들이 생활 쓰레기를 바다에 버리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봤다. 해수부 관계자는 “어선들이 출항할 때 생필품을 얼마나 싣고 가는지 일일이 체크하는 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본보가 현장 취재한 미국 하와이는 달랐다. 참치어선 선장인 스티븐 리(71)는 “이곳 정부는 쓰레기 문제에 철두철미해 플라스틱은 물론 종이로 만든 미끼 상자까지 바다에서 쓴 물건은 모두 가지고 오게 한다"고 했다. 해양경비대(우리의 해양경찰)가 어선 입항시 불심 검문을 하는데 미끼를 담았던 박스와 생활 쓰레기 등 선내 폐기물이 없을 경우, 최대 5만 달러(6,801만 원)의 벌금 또는 최대 5년의 징역형에 처해진다. 하와이의 또 다른 참치어선 선장인 조희재(73)씨는 “여기선 정부가 하지 말라는 일을 하면 사업을 접어야 할 정도로 규제가 강력하다”고 말했다. 특히 해양 환경을 망치는 행동에는 타협이 없다고 했다. 미국 해양대기청 소속 감독관은 1~2개월에 한 번씩 어선에 동승해 선원들의 불법 행위를 감시한다.
대신 어부들의 선행에는 확실한 '당근'을 제공한다. 폐그물이나 집어 장치(어류를 유인하는 장치) 등 남이 버린 해양 쓰레기를 주워 오면 1파운드(0.45㎏)당 1~3달러(약 1,300~3,900원)의 포상금을 준다. 우리 정부와 지자체들도 폐그물을 주워 오면 보상해주는 '먼바다 조업 중 인양쓰레기 수매사업'을 한다. 200L(약 25~30㎏)를 건져 오면 2만5,000원을 준다. 하지만 전체 예산이 9억 원(올해 기준)에 불과해 이미 지난 4월 동났다.
수도꼭지를 잠그는 또 다른 방법은 육지 쓰레기가 강을 따라 바다로 흘러드는 걸 막는 것이다. 국내 해양 쓰레기의 65%가 육상에서 유입된다. 같은 쓰레기라도 깊은 바다에 쌓이기 전 뭍에서 수거·처리하면 비용을 1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 플라스틱이 바다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크기로 쪼개지면 건져낼 수도 없어, 유입 차단은 더욱 중요하다.
문제는 ‘바다 쓰레기 담당은 해수부, 육지 쓰레기는 환경부’라는 공고한 구조에 있다. 행정편의주의 탓에 강과 바다가 썩는데도 유기적으로 대응을 못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달 집중호우 때 한국일보 기자들이 찾았던 충남 서천 현장(아래 연관 기사 참고)이 그 사례다. 쓰레기는 대전과 세종, 충남 공주∙부여∙논산 등 충청권 도시와 농촌에서 버려지지만 피해는 온전히 금강 하구의 서천군 어민들이 본다. 금강이 쓰레기를 휩쓸고 와서 바다에 내다버리는 탓이다.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간단하면서 효과적인 방법이 쓰레기 차단막 설치다. 거름망처럼 생긴 차단막을 하천에 만들면 육상에서 쓰레기가 유입되더라도 하류로 흘러가는 걸 막을 수 있다. 하지만 국내 5대 하천(한강·금강·영산강·섬진강·낙동강) 중에서 차단막이 제대로 설치된 곳은 낙동강(106개, 2022년 기준)뿐이다. 해수부와 환경부도 차단막 확대를 계획했지만 '돈' 문제로 발목이 잡혔다. 차단막 1개를 설치하려면 6억 원이 든다.
해양 오염은 정파를 초월한 생존의 문제라서 국회에서 여야가 협력할 여지가 충분하다.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해양 폐기물 및 해양오염퇴적물 관리법' 개정안을 내놨다. 국비를 지자체에 지원해 차단막 등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조 의원은 한국일보 통화에서 "강 하류에 사는 주민들이 쓰레기 처리 비용을 다 부담하는 건 부당하다"며 "논란이 크지 않은 법안인 만큼 국회 통과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실 비슷한 법안이 직전 21대 국회에서도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의해 발의됐다. 김 의원은 "굉장히 시급한 문제인 만큼 조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조속히 처리되도록 돕겠다"고 했다.
어민 중에도 해양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작은 노력이라도 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바다에서 쓰레기를 주워 와도 놓아둘 때가 없다는 게 문제다.(아래 연관 기사 참고) 전국에 항·포구가 2,301개인데 해양 쓰레기 집하장은 795개뿐이다. 항구에서 멀리 떨어진 집하장이 많아 차로 한참을 가야 하는 것도 문제다. 오랜 조업 탓에 피곤함에 찌든 선원 입장에선 쉽지 않은 일이다. 막상 쓰레기를 집하장에 가져다 둬도 수년째 방치되는 일도 빈번하다.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수거했지만 처치 곤란했던 경험을 한 어민들은 “다시는 안 하게 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어민들이 주워 온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 돈을 안 쓴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임미애 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해수부 자료에 따르면, 연간 집하장의 쓰레기 처리 예산은 30억 원(국비 50%, 지방비 50%)에 불과하다. 단순 계산하면 한 해 7,500톤 정도 처리할 수 있는 돈인데, 이는 지난해 강원도 한 곳에서 수거한 해양 쓰레기 양과 비슷하다. 박문옥 전남도의원(민주당)은 “돈 번 사람(어민)이 알아서 치우라는 식으로만 대응하면, 어민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하겠느냐”고 반문했다.
해양 쓰레기를 줄이려면 결국 모든 시민의 노력이 필요하다. 전 세계 해양 쓰레기의 80%를 차지하는 플라스틱 제품을 최대한 쓰지 않는 게 핵심이다.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는 "플라스틱 저감 대책을 마련하고 생산을 줄이도록 정부와 기업을 움직일 수 있는 건 결국 각성한 시민들"이라고 강조했다. 플라스틱을 쓰지 않으려는 시민들의 행동이, 법이나 제도만으로 할 수 없는 거시적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일보 특별취재팀
팀장 : 유대근 기자(엑설런스랩)
취재 : 진달래·원다라·이서현 기자(엑설런스랩), 조영빈(베이징)·허경주(하노이) 특파원, 한채연 인턴기자
사진 : 이한호·최주연·정다빈 기자
영상 : 박고은·김용식·박채원 PD, 제선영 작가, 이란희 인턴PD
※<제보받습니다> 한국일보는 해양 쓰레기 문제를 집중 취재해 보도해 나갈 예정입니다. 해양 쓰레기 예산의 잘못된 사용(예산 유용, 용역 기관 선정 과정의 문제 등)이나 심각한 쓰레기 투기 관행, 정책 결정 과정의 난맥상과 실효성 없는 정책, 그 외에 각종 부조리 등을 직접 경험했거나 사례를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다면 제보(dynamic@hankookilbo.com) 부탁드립니다. 제보한 내용은 철저히 익명과 비밀에 부쳐집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뱃사람도 포기한 바다
늙은 어부의 고백
해양 쓰레기의 역습
세금 포식자가 된 쓰레기
국경 없는 표류
불편한 미래
살고 싶어요
국회와 정부가 나선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