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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먼바다 쓰레기 정말 심각" 여수 지켜온 두 선주의 호소

입력
2024.08.12 14:00
수정
2024.09.19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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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 : 지옥이 된 바다]
대형 트롤 어선 운영, 주해군 회장·김익수 사장
김 사장 "어선들 사면초가... 고기 안 잡혀 시름"
주 회장, 여수 배 이끌고 해양 쓰레기 60톤 수거
임정훈 조합장, 해수부 설득해 수거 예산 확보
"예산 크게 늘리고 선원 움직일 인센티브 필요"

편집자주

콧구멍에 플라스틱 빨대가 박혀 피 흘리는 바다거북, 배 속에 찬 쓰레기 탓에 죽은 향유고래. 먼바다 해양 생물들의 비극은 뉴스를 통해 잘 알려졌죠. 우리 바다와 우리 몸은 안전할까요? 한국일보는 3개월간 쓰레기로 가득 찬 바다를 찾아다녔습니다. 동해와 서해, 남해와 제주에서 어부와 해녀 63명을 만나 엉망이 된 현장 얘기를 들었고, 우리 바다와 통하는 중국, 일본, 필리핀, 미국 하와이를 현지 취재했습니다. 지옥이 된 바다. 그 가해자와 피해자를 추적했습니다.


바다의 날을 나흘 앞둔 지난 5월 27일 부산공동어시장에서 대형기선저인망수협이 제주 인근 해역에서 수거해온 해양 쓰레기들을 집게 차로 옮기고 있다. 거대한 폐타이어 등이 보인다. 부산=원다라 기자

바다의 날을 나흘 앞둔 지난 5월 27일 부산공동어시장에서 대형기선저인망수협이 제주 인근 해역에서 수거해온 해양 쓰레기들을 집게 차로 옮기고 있다. 거대한 폐타이어 등이 보인다. 부산=원다라 기자


고기 잡아서 먹고사는 사람들은 사면초가예요. 중고 선박 가격조차 크게 떨어져 팔 수도 없죠. 해수온 상승과 고유가 등 구조적 어려움도 있지만 해양 쓰레기 문제는 정말 심각하게 봐야 합니다.

전남 여수에 기반을 둔 김익수(66) 영진수산 사장은 바다를 평생 터전 삼아 살았다. 군 제대 후 은행을 다니다 '배 타면 돈 많이 번다'는 얘기를 듣고 1982년 어선에 처음 탔다. 한결같이 열심히 일한 덕에 선장이 됐고 모은 돈으로 배를 건조해 138톤급 저층 트롤(저인망) 어선인 '607 영진호' 선주가 됐다. 어황이 한창 좋은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걱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기름값, 어구 구입비, 인건비 등 출항 비용은 해마다 뛰어오르는데 고기는 좀처럼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어기(2023년 10월~2024년 7월)도 적자를 봤다. 김 사장은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선주가 많아 내년에는 도산하는 수산업체가 많을 것 같아 속이 탄다"고 털어놨다.

김 사장은 고기가 잘 안 잡히는 주된 이유로 바닷속 쓰레기를 꼽았다. 영진호는 주로 제주 남부 바다에서 민어와 조기, 딱새우, 붕장어 등을 잡는데 서남쪽으로 70~80해리(130~150㎞) 떨어진 어장은 폐그물 등 쓰레기가 너무 많아 아예 조업을 포기했다. 유자망 어선(물고기가 다니는 길목에 그물을 수직으로 펼쳐 놓고 잡는 방식) 등 어민들이 버린 쓰레기가 대부분이라 김 사장도 책임을 느낀다.

김익수 영진수산 사장. 트롤 어선인 '607 영진호'의 선주인 그는 해양 쓰레기 문제를 해결할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익수 사장 제공

김익수 영진수산 사장. 트롤 어선인 '607 영진호'의 선주인 그는 해양 쓰레기 문제를 해결할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익수 사장 제공

엉망이 된 바다의 실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김 사장은 "지금이라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선 영진호가 할 수 있는 노력부터 시작했다. 조업 중 대형 그물에 걸린 폐그물을 뭍으로 다 가져오지는 못해도 감당할 수 있는 양만큼 조금씩 수거해오고 있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 선주나 선장 입장에서는 '밭'이나 다름없는 근해 어장 밑바닥의 쓰레기를 자발적으로 수거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이를 직접 치워야 하는 선원들로서는 품이 많이 드는 노동이다. 그들에게 매번 "봉사활동 차원에서 치우라"고 시키기 어렵다는 뜻이다.

김 사장은 "남이 버린 해양 쓰레기를 주워 오면 정부가 200L당 2만5,000원의 지원금을 줬는데 예산이 부족해 금방 끊겼다"면서 "액수가 적더라도 선원들에게 대가를 지급할 수 있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수거 작업을 지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겨울에는 트롤 어선들이 마음먹고 해양 쓰레기를 그물로 건져 올려 육지로 가져왔는데 수거량이 배 한 척당 200~300포대에 달했다.

"해저 쓰레기 줍는 데 100억 필요…지원은 10억"

여수에는 해양 쓰레기 수거 문제에 진심인 선주가 또 있다. 대형트롤여수생산자협회의 주해군(69) 회장이다. 이 협회는 대형기선저인망수협 소속으로 트롤, 외끌이, 쌍끌이 어선 등이 회원이다. 주 회장의 어선을 포함한 여수의 저층 트롤 어선 20여 척은 지난 5월 제주 남부 바다에서 쓰레기 수거 활동을 벌여 60톤을 수거했다. 임정훈 대형기선저인망수협 조합장은 해양수산부를 설득해 수거·처리 예산을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주 회장은 "여수 트롤은 바닥을 긁듯 조업하기에 해저 쓰레기를 효과적으로 수거할 수 있는 어선은 우리 배들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주해군 회장이 지난 6월 4일 전남 여수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여수=유대근 기자

주해군 회장이 지난 6월 4일 전남 여수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여수=유대근 기자

주 회장은 특히 연안보다 상대적으로 먼 바다인 근해의 해양 쓰레기는 해양수산부가 제대로 지원해주지 않으면 치우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해저 쓰레기를 어선들이 제대로 주우려면 인건비와 기름값 등으로 한해 100억 원 정도는 들어가는데 해수부에서 지원해주는 돈은 10억 원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해양 쓰레기 문제 전문가인 김경신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부연구위원은 "연안 쓰레기는 최근 수년간 많이 주워서 조금 나아진 측면이 있다"면서 "하지만 정부가 먼바다에 가라앉은 쓰레기에는 상대적으로 신경을 안 썼는데 이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근해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수거 작업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게 바다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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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유대근 기자
부산= 원다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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