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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업자만 배 불리면 소는 누가 키우나"...축산농 살리겠다며 '6차 산업화' 실증 나선 전직 대기업 임원

입력
2024.08.11 09:55
수정
2024.08.11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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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축·가공·유통 일괄한 '그로서란트' 매장 차려
중간 비용 없애 원가에 25% 수익만 붙여 판매
가맹비 1% 남짓..."수익 생산·소비자가 챙겨야"
"한우, 일본 와규보다 경쟁력...K푸드 키울것"

대기업 식품부문장을 하다 퇴사해 그로서란트 매장을 차진 임태춘 대표가 고기를 들어 보이고 있다.

대기업 식품부문장을 하다 퇴사해 그로서란트 매장을 차진 임태춘 대표가 고기를 들어 보이고 있다.

“국내 농축산의 6차산업 필요성을 주장하는 사람은 많지만 저처럼 실증에 나서 증명한 사람은 없다고 자부합니다.”

롯데백화점 식품부문장으로 재직하다 명퇴한 뒤 2년 전 '그로서란트' 매장을 차린 임태춘(61∙꿈에그린그로서란트) 대표는 요즘 K푸드 활성화 강연까지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현재 5개(1곳은 개업 준비 중)로 불어난 매장을 관리하랴, 강연하러 다니랴, 시간을 나누고 쪼개도 부족하다.

임 대표는 강연을 할 때마다 6차산업화 만이 국내 축산농이 사는 길이라고 힘줘 말한다. 6차 산업은 생산(1차) 가공유통(2차) 판매(3차)를 일괄하는 것을 말한다. 축산농이나 당국자들은 이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비용이나 방법이 막막해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게 현실이다.

2021년 명퇴한 임 대표는 6차산업화의 위력을 알려주기 위해 실제 창업에 나섰다. ‘백문이 불여일견’을 몸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임 대표는 용인시 처인구에 육가공 업체와의 합작을 통해 3층에 그로서란트 매장을 차렸다. 그로서란트는 그로서리(식료품점)과 레스토랑을 합성한 말로 재료를 사 그 자리서 요리해 먹는 복합식품매장을 말한다. 도매가로 고기를 구입해 바로 요리해 먹으니 신선하고 가격이 싸다는 장점이 있다.

임 대표는 도축장, 가공업체와의 협력을 통해 원가를 대폭 낮춘 가격에 고기를 판매하고 있다. 식당에서 파는 고기는 원가에 25% 이윤만을 붙였고 테이크 아웃을 할 때는 15%의 이윤만 더한다.

실제 광교점의 경우 한우등심(투플러스등급 100g 기준)이 9,050원, 채끝 1만500원, 치마살이 1만3,300원에 불과하다. 한돈 삼겹살(100g 기준)은 2,560원, 목살은 2,270원이다. 식당 차림비(1인 당 5,000원)을 감안하더라도 다른 매장의 3분의1 가격이다. 테이크아웃을 하면 이보다 더 싸게 한우를 즐길 수 있다.

점심식사 메뉴도 숯불양념갈비살정식이 1만5,000원으로 제일 비싸고 왕갈비탕(1만1,000원) 한우국밥(9,000원) 냉면(8,000원) 등 모든 메뉴가 헐한 편이다.

이 같은 판매전략으로 1호점과 2022년 문을 연 광교점은 월매출이 2억~2억5,000만 원에 이르고 지난해 개업한 하남점과 위례점 역시 월매출 1억2,000만 원 안팎을 달성했다. 하남점과 위례점은 상가 건설사가 ‘키 테넌트’(고객 유인에 핵심이 되는 점포)로 유치하기 위해 장소를 무료로 제공했다.

임 대표가 수조 저온 숙성기를 가리키고 있다. 수온 0~2도의 수조에서 기포가 고기를 때려주면 고기가 한층 연해진다고 한다.

임 대표가 수조 저온 숙성기를 가리키고 있다. 수온 0~2도의 수조에서 기포가 고기를 때려주면 고기가 한층 연해진다고 한다.


임 대표는 “생산 만 안할 뿐 도축과 가공, 유통, 판매를 일괄로 하다 보니 이렇게 착한 가격을 유지할 수 있다”면서 “특히 생육으로 판매하다 남은 재고는 바로 식당에서 소화하므로 재료 낭비가 일절 없다는 것도 한 몫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 대표는 진정한 6차산업화를 달성하기 위해 가맹점이 50개 안팎에 이르면 목장도 직접 경영할 생각이다. 당연히 가격을 더 낮춰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한우 브랜드로 K푸드를 개척하겠다는 포부다.

임 대표는 “경기 안성이나 강원 횡성 등에 목장을 만들어 은퇴 인력을 고용한다면 저렴한 인건비와 생산비로 원가를 더 낮출 수 있다”면서 “이렇게 되면 진정한 6차산업화가 완성되는 것으로 대부분의 부가가치가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전달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 대표는 “대기업 임원을 할 때 풍작이든 흉작이든 중간유통상들은 적당한 이윤을 챙기는 반면 피해는 농민과 소비자한테만 돌아가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다”면서 “중간유통상들도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지만 가장 중요한 생산자와 소비자가 충분한 이익을 봐야한다는 생각에서 창업했다”고 설명했다.

임 대표는 운영 노하우도 컨설턴팅 해줄 계획이다. 이윤보다는 국내 축산농들이 경쟁력을 갖춰 K푸드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게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랜차이즈비도 매출액의 1% 남짓만 받는다. 이런저런 명목으로 막대한 가맹비를 챙겨가는 다른 프랜차이즈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임 대표는 “한우는 일본 와규를 능가하는 맛과 품질을 갖고 있어 세계적으로 충분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면서 “호주나 남미로 한우 송아지를 보내 좀더 저렴한 가격에 생산, 현지에 바로 수출할 수 있다면 미국과 유럽시장에 K푸드를 정착시키는 첨병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범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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