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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밀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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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엄혹했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활동 정보를 일본 쪽에 제공하는 사람들, 밀정(密偵)이 있었다. 독립군이 수천 명 결성돼도 밀정이 1명이라도 있으면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며 와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 어떤 반민족 행위보다 악질적이다. 영화 ‘밀정’에서 김장옥(박희순 분)은 자신을 회유하러 온 밀정 이정출(송강호 분)에게 이렇게 외친다. “윗놈들은 나라 팔아먹고 너 같은 놈들은 동포 팔아먹고, 그래서 먹고살 만하냐?”
□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던 2019년 KBS는 기밀 문서 등 5만 장가량의 문서를 입수∙분석해 밀정 혐의자 895명의 실명을 공개했다. 광복 이후 아무런 청산 과정 없이 슬그머니 사라진 밀정을 수면 위로 끄집어낸 것이다. 여기엔 청산리 전투의 영웅 김좌진 장군의 최측근 이정, 연해주 지역에서 활약했던 의병장 엄인섭 등 충격적 인물이 많았다. 논란은 분분하지만,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 거사를 함께 모의했던 우덕순도 밀정 리스트에 올랐다.
□ 이종찬 광복회장이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두고 연일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그는 후보가 3명으로 압축됐던 5일 기자회견을 열어 "독립기념관이 뉴라이트 세력에 유린당하고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럼에도 김 관장이 임명되자 7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용산 어느 곳에 일제 때 밀정과 같은 존재의 그림자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까지 했다. 주말인 10일엔 한 특강에서 “대통령 주변의 밀정들이 이 연극을 꾸민 것"이라며 광복절 행사 불참을 선언했다.
□ ‘밀정’이라는 단어를 대놓고 쓰는 건 다분히 감정적 대응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에 분노한 국민들이 낸 500억여 원 성금으로 1987년 개관한 곳이 독립기념관이다. 그 수장에 임시정부 역사를 부정하는 뉴라이트 인사를 앉혀야 하는 이유를 주인인 국민은 납득하기 어렵다. 독립기념관 이사에 식민지 근대화론 주장 인물을, 한국학중앙연구원장에 ‘반일 종족주의’ 공동 저자를 앉히기까지 한다. 사도 광산에 ‘강제’ 표현을 넣으라는 요구를 일본이 거절했음에도 세계유산 등재를 수용하는 등 실제 대일외교에서도 같은 흐름이 읽힌다. 다가오는 광복절이 분열하는 시간이 될 조짐이다. 일제가 밀정을 통해 노린 것도 이런 것 아니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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