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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폭염에 장사 접을 순 없잖아요!"… '에너지 빌런' 개문냉방 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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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시원해서 야장하기도 좋아요, 얼른 앉아요." 지난 4일 저녁 7시쯤 서울 종로3가의 노포 거리. 야외에 테이블을 펴던 상인이 행인들을 향해 외쳤다. 가게 접이식 문은 전부 접혀 안쪽의 에어컨 냉기가 거리로 뿜어져 나왔다. 이곳은 야외에 테이블을 놓고 음식이나 술을 먹는 이른바 '야장' 명소다. 해가 진 뒤 야장을 즐기러 오는 사람들을 위해 상점들은 가게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실내 에어컨 바람을 내보내 열대야 무더위를 식히는 호객 행위의 일환이었다.
냉방을 가동한 채 문을 열고 점포를 운영하는 이른바 '개문냉방' 영업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현행법상 엄연히 금지되는 행위지만, 상인들은 폭염과 열대야 속에서 손님을 한 명이라도 더 데려오려면 어쩔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종로3가 노포 거리엔 아예 야외 테이블 근처에 공업용 에어컨 여러 대를 끌어다 사용하는 고깃집도 있었다. 냉방이 더 잘 되는 가게 내부에 자리가 많아도 굳이 야외를 고집하는 이들을 위해 가게가 선보이는 서비스였다. 이 매장 직원은 "관광객, 손님들은 야외 테이블에 앉으러 오는 건데 (폭염에) 이렇게 안 하면 장사 자체가 힘들다"고 강조했다. 인근 을지로 노포 거리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한 50대 사장도 "열대야가 계속되면서 가게를 찾는 사람이 눈에 띄게 줄어 조금이라도 덜 더운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전기요금 걱정은 그다음"이라고 잘라 말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달 4일까지 전국 평균 열대야 발생일은 12일로, 사상 최악의 폭염을 기록했던 2018년(9.5일)보다 길다.
코로나19 엔데믹(풍토병화) 이후 외국인 관광객들이 돌아와 생기를 되찾은 중구 명동 상권도 비슷했다. 이날 오전 11시 기준 기온이 34도까지 치솟은 가운데, 300m 넘게 줄지어 있는 가게들을 살펴보니 51곳 중 47곳이 개문냉방 영업을 하고 있었다. 화장품 가게 직원 30대 김모씨는 "비슷한 가게들이 몰려 있어 문을 열어두지 않으면 손님들이 굳이 찾지를 않는다"면서 "(개문냉방을 하면) 더위를 피하려 들어오는 손님에게라도 호객을 할 수 있어 매출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개문냉방은 에너지 과소비와 환경 문제를 부채질한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개문냉방 영업 시 문을 닫고 냉방했을 때보다 약 66% 많은 전력량이 소요된다. 이에 에너지이용합리화법은 출입문을 개방 상태로 고정시켜 놓고 5분 이상 영업하다 2회 이상 적발될 시 경고 및 최대 3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 계도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지 오래다. 개문냉방 금지 조항만 있을 뿐 단속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탓이다. 지방자치단체의 개문냉방 영업 단속은 전력 예비율이 10% 미만으로 떨어지는 등의 상황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에너지 사용 제한 조치'를 내렸을 때만 가능하다. 2016년 8월 서울시가 내린 경고 121건, 과태료 부과 2건이 가장 최근의 행정 조치다. 게다가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환기를 위해 문을 열어놓고 영업하던 행태가 굳어져 지차제 입장에선 무작정 다시 단속하기 쉽지 않다. 결국 현재로선 상인들의 자발적 참여에 기댈 수밖에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일단 캠페인과 홍보 활동을 집중적으로 펼칠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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