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고종이 신하들 설득해 한일병합 서명?… 日교과서 극우화 '브레이크'가 없다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가깝고도 먼 나라,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던 일본은 이제 한국과 동등하게 마주 선 관계가 됐다. 활발한 문화 교류로 MZ세대가 느끼는 물리적 국경은 사라졌고, 경제 분야에서도 대등한 관계로 올라섰다.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한일 관계의 현주소와 정치 외교적 과제를 짚어본다.
"아이들 손에 들어오는 교과서는 신중하게 채택돼야 합니다. 가해 역사를 부정하는 교과서를 합격시킨 문부과학성에 강력 항의합니다."
6월 25일 오후 일본 도쿄 중의원(하원)의 한 회의실에서 일본 내 과거사 관련 시민단체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올해 4월 문부과학성(교육·과학·문화·체육 관장)이 통과시킨 레이와서적 역사 교과서의 오류를 짚고, 통과시킨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서다. 레이와서적 교과서는 일본 역사를 전반적으로 미화하면서, 식민지배나 태평양 전쟁 등 어두운 면을 축소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왜곡 교과서, 위안부, 오키나와 전쟁, 강제동원 관련 단체 대표들이 나와 레이와 교과서의 왜곡 서술을 하나하나 반박했다. 7·8월 교과서 채택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교사와 시민을 대상으로 열리는 전시회를 앞두고, "잘못된 교과서를 택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하기 위해서다. 일본은 초·중·고별로 4년마다 교과서가 개정되는데 문부성 검정을 통과하면 이 전시회에 후보로 올라간다. 각 학교 교과서는 교사들의 투표와 지방자치단체 교육위원회를 거쳐 채택된다.
레이와 교과서는 지난 5년간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시민단체에서 말하는 '위험한 교과서'다. 이날 회견에 참석한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 네트워크 21의 스즈키 도시오 대표위원은 "일본군이 조선 여성을 강제 연행한 적이 없고 보수를 받고 일했다고 기술하는 등, 자민당 정권이 계승해 온 고노 담화까지 부정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며 "문부성이 이를 문제가 없다고 본 것을 믿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고노 담화는 1993년 당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고노 다로 현 디지털상의 부친)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사과한 것으로, 일본 정부가 일본군의 위안부 직간접 개입을 인정한 최초 사례다.
일본 정부의 역사 인식이 퇴행 중이라는 우려는 일본에서만 있는 게 아니다. 한국에서 만난 이신철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운영위원장은 "일왕과 친족 관계인 유튜버가 만든 교과서가 통과됐다"며 "역사 왜곡이 정말 극에 달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탄했다. 이어 "예컨대 강제병합 조약 때 고종이 신하들을 설득해 조인했다는 아예 잘못된 문장들이 제도 속에서 인정을 받았다"며 "의무 교육인 중학교의 교과서로 채택되면서, '후대에게 가르쳐줘도 되는' 역사관으로 정부의 공인을 받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양국 시민단체들은 교과서 왜곡이 역사에 대한 외면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되는 부분을 가르치기도, 시험에 내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한국인 이모(26)씨는 "독도 문제가 교과서에 있긴 했지만 시험 문제로 전혀 안 나왔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 네트워크 21의 고지야 요코 사무국장은 "왜곡 기술된 부분이 사실과 아예 달라 시험 문제에 나오면 오답이 되어버린다"며 "부모들도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레이와 교과서의 파생 효과도 걱정거리다. 고지야 국장은 레이와 교과서를 '희생플라이'에 빗댔다. 그는 "야구로 얘기하면 (다른 주자를 득점하게 하는) 희생플라이로, 레이와에 비하면 그동안 대표적인 우익 교과서로 지목된 지유샤, 이쿠호샤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분위기가 생겨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레이와서적의 교과서를 쓴 사람도 공립학교에서 이 책을 사용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며 "진학률 높은 명문고 학생들이 레이와서적으로 공부를 해 이들이 사회적 리더가 되길 바라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우익 교과서 채택을 둘러싼 일본 정부의 압력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고지야 국장은 "형식적으로는 투표를 통해 정해 객관적으로 보이지만, 실제 교육위에 가면 (우익교과서에 대해) 좋은 말만 적으라고 선생님을 압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2015년부터 종합교육회의가 생기면서 지자체장이 교과서 결정에 개입할 수 있게 된 것도 변수다. 정치적 입김이 더욱 커질 수 있는 것이다.
분위기가 이러니 교사들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이 위원장은 "교과서를 쓰고 지도할 때 일본 정부가 정한 학습지도요령과 검정기준에 맞춰야 한다"며 "일본군 '위안부'라는 용어는 물론 군이라는 용어도, 강제동원이라는 용어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 고지야 국장은 "예전엔 선생님들이 교과서 채택 전시회를 전후해 필사적으로 책을 읽고 의견도 냈고, 교과서 편집자들도 이에 맞춰 써서 종군위안부라는 단어들이 나왔다"면서 "지금은 의견을 내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어긋나면 교장한테 지도를 받는 탓에 젊은 선생님들이 적극적으로 자기 생각을 말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양 단체가 걱정하는 건 앞으로다. 왜곡된 교육을 거치며 전쟁과 식민지의 역사가 지워진다는 것이다. 고지야 국장은 힘주어 말했다. "문제는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이들이 이제 선생님이 되고, 보호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일본이 왜 전쟁을 시작했고 왜 그만두지 못했는지, 전쟁이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기는지, 어떤 책임을 지는지 알지 못한다는 거죠. 이걸 바꾸는 게 우리 목표입니다."
물리적 국경이 사라진 문화 영토
일본이 무시 못하는 '큰 손' 한국
혐오 줄었지만, 역사도 잊힌다
갈등과 공존, 기로에 서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