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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승만 하면 메달이야”, “네? 전 3승 할 건데요” 승리에 배고팠던 임애지

입력
2024.08.02 14:31
수정
2024.08.02 14:49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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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애지, 한국 최초 여자 복싱 올림픽 메달 쾌거
8강전에서 카스타네다에 판정승 거둬
도쿄 올림픽 패배 후 그만두고 싶었지만
"이게 직업" 현실 직장인 마인드로 버텨

임애지가 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노스 파리 경기장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복싱 여자 54㎏급 8강전에서 판정승을 거둔 뒤 기뻐하고 있다. 파리=서재훈 기자

임애지가 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노스 파리 경기장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복싱 여자 54㎏급 8강전에서 판정승을 거둔 뒤 기뻐하고 있다. 파리=서재훈 기자

복서 임애지(화순군청)가 무관심, 무중계 설움을 한방에 날리는 ‘카운터 펀치’를 적중시켰다.

임애지는 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노스 파리 경기장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복싱 여자 54㎏급 8강전에서 예니 마르셀라 아리아스 카스타네다(콜롬비아)에게 판정승(3-2)을 거두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3·4위전이 없는 올림픽 복싱은 준결승에서도 패한 선수에게 동메달을 주기 때문에 임애지는 한국 여자 복싱 사상 최초로 올림픽 메달을 따냈다. 한국 복싱을 통틀어서는 2012년 런던 올림픽 한순철(남자 60㎏급 은메달) 이후 12년 만에 수확한 메달이다.

임애지가 상대 선수에게 펀치를 날리고 있다. 파리=서재훈 기자

임애지가 상대 선수에게 펀치를 날리고 있다. 파리=서재훈 기자

임애지의 메달은 이번 대회 전까지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32강을 부전승으로 통과한 이후 16강에서 타티아나 레지나 지 헤수스 샤가스(브라질)에게 판정승을 거뒀는데, 이 경기는 한국에서 TV 중계가 이뤄지지 않았다. 16강을 마치고 서운함을 내비친 임애지는 “8강전부터 중계가 되면 좋겠다”며 관심과 응원을 당부하기도 했다.

임애지의 바람대로 관심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1승만 거두면 한국 여자 복싱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로 등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코치진도 새 역사를 앞두고 “이제 1승만 더 하면 메달”이라고 뚜렷한 목표 의식을 심어줬다. 그러나 여전히 승리에 목마른 임애지는 “네? 저 세 번 더 이길 건데요”라고 말하며 더 높은 곳을 바라봤다. 8강부터 세 번의 승리는 금메달을 의미한다.

휴식 시간에 마사지를 받고 있는 임애지. 파리=서재훈 기자

휴식 시간에 마사지를 받고 있는 임애지. 파리=서재훈 기자

당찬 포부대로 일단 1단계 목표는 달성했다. 스텝을 통해 상대와 간격을 유지하는 아웃복서 스타일의 임애지는 저돌적인 인파이터 카스타네다를 상대로 쉽지 않은 경기를 펼쳤다. 카스타네다가 공격적으로 덤벼들었지만 특유의 스텝으로 파고들 간격을 주지 않고 견제했다. 큰 펀치가 날아올 때는 재빠르게 피한 뒤 카운터 펀치로 포인트를 쌓았다. 그렇게 3라운드 경기가 끝났고, 주심이 임애지의 손을 들어줬다.

경기 후 믹스트존에 오륜기 모양의 안경을 쓰고 등장한 임애지는 “우리나라 복싱 발전에 도움이 된 것 같아 정말 행복하다”며 기뻐했다. 경기 내용에 대해서는 “사실 너무 무서웠다. 상대가 원래 파워풀한 선수인데, 생각보다 더 달라붙었다”며 “내가 조금 더 정확하게 쳤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끝까지 승리를 확신할 수 없었다”고 돌아봤다.

현지시간으로 오후 9시 4분에 야간 경기를 펼친 것도 생소했다. 임애지는 “이렇게 늦게 경기한 건 처음이라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했다”며 “링 위에 올라가서는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임애지의 손을 들어주는 주심. 파리=서재훈 기자

임애지의 손을 들어주는 주심. 파리=서재훈 기자

임애지는 한국 여자 복싱 최초의 메달리스트가 되기까지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3년 전 도쿄 올림픽과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첫 판에 탈락했다. 특히 도쿄 대회를 마쳤을 때는 ‘파리 올림픽이 3년 남았다’는 얘기에 “또 3년을 준비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힘이 쫙 빠졌다. 당시엔 정말 못하고 져서 그만두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현실 직장인 마인드였다. 임애지는 “도쿄 때는 대학생, 항저우 땐 직장인이었다”며 “이게 직업이라 생각하면서 버텼다”고 밝혔다. 또한 3년 전 성적을 꼭 내야겠다는 생각과 달리 즐기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하면서 준비한 결과, 파리 올림픽에서 좋은 결실을 이룰 수 있었다고 한다.

임애지는 “(2017년) 세계유스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여자 복싱 최초라는 말을 들어 뜻깊었는데, 이번에도 또 최초 메달리스트 수식어가 붙었다”며 “이렇게 (한국에서) 늦은 시간까지 관심을 가져주고 응원을 해줘서 정말 감사하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임애지는 한국시간으로 4일 오후 11시 34분 하티세 아크바시(튀르키예)와 결승 길목에서 맞붙는다.

파리 = 김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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