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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에 적응하는 유연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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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길에는 걷는다. 탄천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샛강과 함께다. 병원까지는 30분 정도가 걸리는데, 이 시간이 나에게는 소소한 운동과 사색의 시간이다.
며칠 전 출근길에 왜가리를 보며 강쪽으로 붙어 걷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어떤 어르신이 무언가 말을 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음악을 들으며 걷고 있어서 가까워졌을 때야 그의 말을 알아들었는데, "사람은! 우측 통행!"이라고 외치셨다. 그 어르신은 마치 자신의 '사람됨'을 행동으로 증명이라도 하듯이 직진으로 '우측 통행'을 고수하면서, 굳은 얼굴로 좌측 통행자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연한 마음이 든 나는 그분의 비타협 정신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몸을 옆으로 급히 돌렸다.
이런 원칙적이고 완고한 분들 덕분에 세상의 질서가 굳건하게 유지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아쉬운 것은 '레미제라블'의 자베르 경감처럼 지나치게 원칙만을 고수하는 모습이 때로는 비정하고 비윤리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의 인생의 말로도 장발장에 비해 좋지 못했지 않은가. 곧은 나무도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려야 가지가 부러지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신경 신호 전달이 느려지고 근골격계의 노화로 유연함이 떨어지기 때문에 부드럽고 민첩한 운동 기능이 약해진다. 이로 인해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은 더 거칠어 보일 수 있다. 귀 안쪽의 감각 세포들은 소리를 감지하고 그 신호를 뇌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 기능이 저하되면 청력이 떨어지게 된다. 잘 들리지 않으면 무의식적으로 소리를 더 크게 내려고 한다. 진료실에서 늘상 벌어지는 일이다.
노안은 대개 40대 중반부터 시작돼 점차 진행된다고 알려져 있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눈의 변화로, 가까운 물체를 선명하게 보기 어려워진다. 나이가 들수록 수정체는 두꺼워지고 단단해져 유연성을 잃게 되며, 이로 인해 초점을 조절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또한 모양체근의 탄력성과 힘이 약해지면서 수정체를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없게 된다. 남의 일인 줄로만 알았던 '자연스러운' 일이 나에게도 찾아왔다. 복강경 수술을 하면서 멀리 있는 모니터를 볼 때는 전혀 문제가 없다가, 눈앞의 실제 수술 시야에서 장기를 직접 만져야 할 때 눈이 흐릿해지는 경험을 하면서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여러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이 다중초점 렌즈였다. 누진 다초점 렌즈는 렌즈의 상단에서 하단으로 갈수록 초점 거리가 점진적으로 변화하여, 착용하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시야 전환을 제공한다. 초기에는 적응 기간이 필요할 수 있으며, 사용자에 따라 다소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이며 초점을 맞춰야 하는 1주일 정도의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매우 만족스럽게 잘 쓰고 있다. 스마트폰을 볼 때도 자연스럽고, 수술할 때도 편하며, 가까운 글을 읽을 때에도 안경을 벗을 필요가 없다. 필요한 때에 안경을 벗지 않아서, 오히려 노안이 아직 오지 않은 젊은 느낌을 주변 사람에게 준다.
내 몸이 유연할 수 없다면, 유연한 도구를 쓰자. 생각이 굳어 있다면 말을 더 줄이고, 다양한 사람의 말을 경청하거나 책을 보자. 요즘 유행인 큰글자책은 읽기도 편하다. 몸에도 생각에도 다초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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