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 지도자 이란서 암살, 이스라엘 겨냥 보복 다짐... 더 위험해진 중동

'테헤란 공습'에... 이스마일 하니예 사망
이스라엘, 전날엔 레바논 베이루트 공습
본토 공격에 이란 분노... '저항의 축' 결집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정치 지도자인 이스마일 하니예(앞줄 가운데)가 30일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해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려 보이고 있다. 그는 다음 날 테헤란 내 거처에 머물다 공습을 받아 숨졌다. 테헤란=로이터 연합뉴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31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암살됐다. 이스라엘이 하니예 거처로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는 게 이란·하마스 등의 판단이다. 이번 공격은 이스라엘이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 군사작전 고문 푸아드 슈크르를 겨냥해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외곽을 공습한 지 몇 시간 만에 이뤄졌다.

이란과 레바논 안방에서 친(親)이란 세력 지도부를 잇따라 제거한 이스라엘에 대해 이란 등은 강력한 보복을 다짐했다. 확전 우려가 팽배해지면서 중동은 더욱 격랑에 휩싸이게 됐다.

하니예, 이란 새 대통령 취임식 찾았다가 살해

이스라엘 타임스오브이스라엘, 중동권 알자지라방송 등을 종합하면 하마스는 이날 오전 성명에서 "하니예가 테헤란 거처를 노린 시온주의자들(이스라엘)의 기만적 습격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란혁명수비대(IRGC)도 "하니예가 경호원 한 명과 함께 순교했다"고 확인했다. 하니예는 2017년부터 하마스 정치국 최고지도자를 맡고 있다.

카타르, 튀르키예 등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하니예는 전날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신임 대통령 취임식 참석을 위해 테헤란을 찾았다. 이날 취임식에는 하마스, 헤즈볼라, 예멘 반군 후티 등 친이란 '저항의 축' 관계자들이 총출동했다. 하니예는 테헤란 내 참전용사 시설에 마련된 특별 거처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오전 2시쯤 이란 바깥에서 발사된 유도미사일이 해당 장소를 타격했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10월 가자지구에서 하마스와의 전쟁을 시작한 이래 줄곧 '하니예 제거'를 공언해 왔다. 다만 하니예 암살 후 이스라엘은 공식 반응은 내놓지 않고 있다.

4월 17일 이란 테헤란의 한 군사기지에서 진행된 육군의 날 기념행사에서 이란 중거리 미사일 '나자트'를 실은 군용 차량이 이스라엘 공격 성공을 자축하는 군사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다. 테헤란=EPA 연합뉴스

이란, 이스라엘에 보복 예고... "복수는 우리 의무"

테헤란 공습이 이스라엘 소행이라면 가자지구 전쟁 후 이스라엘의 이란 본토 타격은 지난 4월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이란은 이스라엘이 수도 한복판에서 하니예를 죽인 것은 물론 이란의 중대 행사인 대통령 취임식 초대 손님을 살해했다는 점에서 이번 암살을 '이란에 대한 선전포고'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는 성명을 통해 "시오니스트 정권(이스라엘)의 범죄와 테러를 엄중히 처벌할 토대가 마련됐다"며 "복수는 우리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이란을 중심으로 저항의 축도 결집하고 있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에 대한 우리의 저항은 더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헤즈볼라가 지난 27일 이스라엘이 점령 중인 골란고원 내 축구장을 폭격해 이스라엘 어린이와 청소년 등 12명이 희생되자 이스라엘은 30일 베이루트 헤즈볼라 지휘부 공습으로 보복에 나섰다. 또 같은 날 이라크 친이란 민병대인 인민동원군 주둔지에서도 미군 공격 추정 폭발이 발생하는 등 중동 전역에서 군사 충돌이 이어지고 있다.

이란이 이번 암살을 빌미로 이스라엘을 겨냥한 직접 공격에 나서고 이스라엘이 재보복을 강행할 경우 중동 전체로 전선이 확장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지난 4월처럼 양측이 제한적인 범위에서 공습을 주고받은 채 사태를 마무리하는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bshin@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