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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한 뇌영양제 처방 안 해요"… 안방으로 찾아가는 '원미동 주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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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와 의대 증원을 발표하며 의료개혁 기치를 올린 지 6개월. 의대 정원이 내년부터 대폭 늘어나 의사 인력 부족 해소의 전기가 마련됐지만, 전공의와 의대생의 이탈로 촉발된 의료공백은 의료체계를 보다 지속가능하도록 개혁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국내외 의료현장 취재와 전문가 자문을 통해 의료개혁 성공 조건과 보완 과제를 점검한다.
“나를 아는 주치의가 있는 곳”
경기 부천시 원미동 부흥시장 골목길을 따라 부천시민의원에 다다르면 벽에 새겨진 큼지막한 문구가 가장 먼저 환자를 맞이한다. 이웃한 야채가게, 떡집, 통닭집처럼 소박한 동네의원이지만 첫인상부터 믿음직하다. 지난달 18일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서자 조규석 원장이 통화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대장암 2기면 전이된 건 아니니 수술받으면 괜찮아질 거예요. 더 궁금한 게 있으면 한 번 들르세요.” 통화를 마친 조 원장은 “이렇게 수시로 환자한테 상담 전화가 온다”며 웃었다.
부천시민의원은 마을 건강 공동체를 목표로 주민과 의료인이 함께 출자해 설립한 부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지역사회 주치의 역할을 하며 재택의료 등 대안적·공익적 의료를 제공한다. 불필요한 비급여 진료와 혼합 진료, 각종 검사 등 소위 ‘돈 되는’ 치료를 하지 않아 살림살이는 늘 빠듯하지만, 환자들은 그래서 더욱 믿고 찾는다. 진료실 한쪽에는 환자의 알 권리와 진료받을 권리 등을 명시한 ‘환자 권리 장전’이 붙어 있었다.
조 원장은 2013년부터 조합 설립에 참여하고 2017년 부천시민의원 개원을 주도했지만 원래 순천향대 부천병원 외과 교수였다. 위암 복강경 수술로 꽤 유명했다. 그러다 2021년 부천시민의원 원장 자리가 비게 되자 대학병원을 미련 없이 그만두고 ‘원미동 주치의’로 변신했다. “우리나라 의료체계 문제는 시민이 나서야 바꿀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건강보험에서 정한 진찰료가 워낙 낮은 탓에 양심만 갖고 병원을 운영하기 벅찼다. 주위를 둘러보니 동네의원은 비급여 진료로 돈벌이를 하고 환자는 동네의원을 불신해 상급병원으로 몰리는 악순환에 모두 길들여져 있었다. 조 원장은 “최근 뇌영양제가 치매 예방약으로 잘못 알려지면서 소화제, 진통제를 제치고 처방률 1위 의약품이 됐다”며 “환자에게 ‘의사들이 돈 벌려고 광고한 것’이라고 설득해도 끝끝내 처방을 요구해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조 원장은 그래서 주치의 제도 도입을 강하게 주장한다. 환자가 가까운 의원에 등록해 전담 주치의에게 진료받게 하면 불필요한 의료 이용을 막고 한정된 자원과 인력을 환자 중증도에 따라 합리적으로 배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도 자신을 잘 아는 주치의한테 관리받으면 “중증질환을 예방할 수 있어 막대한 의료비를 아끼는 데다 큰 병원을 오가느라 시간 낭비를 안 해도 돼” 훨씬 이롭다. 호주, 캐나다, 프랑스, 독일, 영국 등에선 주치의 보유 비율이 80~90%에 이르지만, 아직 한국에선 29.8%에 불과하다.
의료기관 문턱이 낮은 한국에서 의료 이용에 제약이 따르는 주치의 제도를 환자들이 받아들이게 하려면 병원이 먼저 변해야 한다는 게 조 원장의 지론이다. 웬만한 큰 도시에는 의원이 널려 있지만 대부분 정형외과, 안과, 이비인후과 같은 전문 의원이고, 모든 질병을 아우르며 포괄적 진료를 하는 동네의원은 매우 드물다. 그러다 보니 환자는 눈에 염증이 생기면 안과로, 감기 걸리면 이비인후과로, 혈압약 처방을 받으러 내과로, 병원을 순회하게 된다. 의사 수가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평균 3.7명) 꼴찌 수준인데도 1인당 외래 이용 횟수는 연간 15.7회로 평균(5.9회)보다 2.7배 많다는 통계와 무관하지 않은 현실이다. 조 원장은 “주치의가 있으면 의원 한 곳에서 모두 치료할 수 있다”며 “부실한 일차의료가 과잉 진료 관행을 부추겼다”고 짚었다.
부천시민의원이 특히 힘을 쏟는 방문진료는 주치의 제도의 모범적 변형이다. 조 원장은 “방문진료 의사는 자연스럽게 주치의 역할을 하게 된다”며 “특정층에 먼저 주치의 제도를 접목해 보고 차츰 대상을 넓혀가면 더 쉽게 안착될 것”이라고 짚었다. 실제로 고령환자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재택의료 수요는 크게 늘었다. 정부도 재택의료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조 원장은 일주일에 사흘씩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직접 찾아간다. 욕창 소독, 콧줄 교환, 영양 상담, 약 처방은 기본이고, 환기와 청결 상태 같은 집 안 환경까지 세심하게 살핀다. 환자가 신경과, 내과, 정형외과 등에서 각각 처방받은 약에 효능이 비슷한 성분이 중복돼 있으면 과잉된 약을 정리해 주기도 한다. 복용량만 조절해도 환자 상태가 금세 호전된다고 한다.
보호자 만족도도 높다. 급성 뇌출혈로 쓰러져 장애인이 된 아들을 7년째 간병하는 임덕춘씨는 “아들을 병원에 데려가기 힘든데 의사 간호사 선생님이 주기적으로 방문해 돌봐 주고 나도 언제든 전화로 궁금증을 물어볼 수 있어 안심이 된다”며 “이런 좋은 제도가 사라질까 봐 걱정될 정도”라고 했다. 임씨는 이날 방문진료팀을 반갑게 맞이하면서 그간의 경과를 상담했고, 의료진은 이전에 찍어 둔 사진과 비교하면서 환자 상태를 확인했다.
조 원장은 “의료개혁의 출발점은 일차의료 강화”라고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 정부가 일차의료 전문가 양성에 재정을 투자하고, 기존 개원 의사 재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동네 주치의를 늘리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환자의 합리적 의료 이용을 제도적으로 강제할 필요도 있다. 조 원장은 “주치의를 지정한 환자한테 인센티브를 주고, 의사도 환자 입원율, 합병증 발병률 등 의료행위 성과에 따라 보상을 받도록 제도를 개선해, 의료현장의 변화를 적극 유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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