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정보사령부 해외공작부서 소속 군무원 A씨가 우리 '블랙 요원'들의 신상 등 기밀을 중국 동포에게 유출한 혐의로 구속됐다. 국군방첩사령부는 중국 동포가 북한 정찰총국 정보원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수사하고 있다. 미국 수사당국의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 기소 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의 허술한 정보 활동이 그대로 노출된 데 이어 군 정보기관의 보안에도 구멍이 확인된 건 충격이다. 더구나 북한이 러시아와 군사 동맹 수준의 조약을 체결하는 등 대북 정보 수집이 중요해진 때 우리 해외 요원 명단이 통째로 넘어간 건 정보망이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는 안보 참사가 아닐 수 없다. 군 당국은 관련자를 철저히 색출해 엄벌하는 한편 전체 보안 시스템을 점검하고 재발 방지책도 빈틈없이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간첩죄 관련 법 조항이 시대에 안 맞고 미비한 점이 있다면 보완은 당연하다. 실제로 1953년 제정된 형법 제98조는 ‘적국’을 위해 간첩을 하거나 군사상 기밀을 ‘적국’에 누설한 자를 처벌하도록 돼 있어 ‘적국’이 아닌 ‘외국’ 간첩에겐 적용할 수 없다. A씨도 북한과 관련 없는 중국 동포와 접촉했다고 하면 간첩죄를 묻기 힘든 상황이다. 간첩죄 범위를 ‘외국’으로 확대하는 법 개정을 통해 국가안보를 더 튼튼히 해야 한다는 데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이런 중차대한 안보 사안마저 여아가 정치 공방의 소재로 소비하는 건 한심하고 황당하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21대 국회에서 간첩법 개정이 안 된 책임과 관련해 “민주당 의원들이 막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은 당시 법원행정처가 반대하고, 여당 의원들이 법 개정에 우려를 표한 사실을 들어 오히려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 대표의 책임이 더 크다고 반박했다. 국가 위기 상황에도 정치권은 네 탓 타령과 정쟁만 벌인 셈이다.
지금 중요한 건 한시라도 빨리 법을 개정해 더 이상 간첩들이 활개 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국가정보원부터 정보사까지 국가정보 역량을 다시 정비하는 것도 시급하다. 여전히 이역만리에서 목숨을 내놓고 나라를 위해 일하는 정보요원이 적잖다. 적어도 이들에겐 부끄럽지 않은 정치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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