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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코인세탁방서 빨래 대신 '밥상' 차린 불청객…무인점포 수난시대

입력
2024.07.31 15:00
수정
2024.07.3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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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보니 빨랫감도 없이 방문
외부 음식 들고 와 테이블서 식사
다른 손님 신고로 경찰 출동
매출 악영향 우려에 고소도 못 해

31일 0시 12분쯤 충북 청주의 한 무인 코인세탁방에 청년 3명이 들어와 테이블에서 외부 음식으로 밥을 먹고 있다. 이들은 세탁방 손님이 아니었다. 코인세탁방 CCTV 화면

31일 0시 12분쯤 충북 청주의 한 무인 코인세탁방에 청년 3명이 들어와 테이블에서 외부 음식으로 밥을 먹고 있다. 이들은 세탁방 손님이 아니었다. 코인세탁방 CCTV 화면

"아직도 이런 사람들이 있을 줄이야…"

충북 청주에서 24시간 무인 코인 세탁방을 운영하는 점주 A(32)씨는 가게 내부를 비추는 폐쇄회로(CC)TV 영상을 돌려보다 허탈감에 긴 한숨을 내쉬었다. 31일 새벽 세탁방 중앙에 있는 테이블에서는 각각 20, 30대로 보이는 남성 2명과 여성 1명이 밥을 먹고 있었다. 언뜻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장면이었지만 A씨가 분노한 이유가 있었다. 이들은 세탁방 이용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A씨 가게의 CCTV 영상을 보면 이날 오전 0시 12분쯤 세탁방 안으로 3명이 들어왔다. 이들의 손에는 음식이 담긴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테이블에 음식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는 일행의 행동은 태연했다. 가게를 처음 방문한 게 아닌 듯 익숙한 동작이었다. 그런데 이들 중 누구도 빨랫감을 들고 온 사람은 없었다.

일행이 식사하는 도중 다른 손님이 가게를 찾았다. 세탁기에 빨래를 넣은 손님은 식사 중인 3명을 흘깃 보더니 가게 밖으로 나갔다. 3분 정도가 지나자, 가게 앞에 경찰차가 섰다. 경찰의 출동 모습을 지켜본 3명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여성은 갑자기 가게 한편에 있던 안마의자에 요금을 결제한 뒤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척했다. 경찰에 세탁방 손님이라고 변명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됐다. 가게로 들어온 경찰이 이들에게 경고와 함께 퇴실을 요청하고 나서야 불청객들은 세탁방을 나갔다.

31일 새벽 충북 청주에 있는 한 코인세탁방에서 손님이 아닌 청년들이 식사 중인 것을 지켜본 다른 손님이 신고한 결과, 경찰이 현장에 출동해 이들에게 경고하며 퇴실을 요구하고 있다. 코인세탁방 CCTV 화면

31일 새벽 충북 청주에 있는 한 코인세탁방에서 손님이 아닌 청년들이 식사 중인 것을 지켜본 다른 손님이 신고한 결과, 경찰이 현장에 출동해 이들에게 경고하며 퇴실을 요구하고 있다. 코인세탁방 CCTV 화면

경찰이 때마침 현장을 찾은 건 빨래를 하러 왔던 손님이 신고했기 때문이었다. 이 손님은 A씨에게도 당시 상황을 공유했다. A씨는 이날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밥을 먹던 사람들의 몸에 문신이 있기도 했고, 위협적인 분위기에 손님이 신고한 것 같다"고 말했다. A씨는 신고한 손님의 연락을 받고 당장 가게로 뛰어가고 싶었지만, 당사자들과 마주치면 싸움이 벌어질까 싶어 꾹 참았다고 한다. 그는 "시간이 지나 가게에 갔더니 그들이 쓰레기 일부를 버리고 간 것을 보고 화를 참기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인건비 절약을 위한 무인점포가 급증하면서 '진상 고객' 사례도 덩달아 속출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자영업자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 성인 남성 2명이 무인 사진관 카드 단말기에 먹던 아이스크림을 꽂아 놓고 가버려 기계가 고장이 났다는 사연이 올라왔다. 두 달 뒤엔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를 방문한 고객이 물건은 안 사고 결제 기계에서 한 움큼 되는 동전만 지폐로 교환해 간 사실이 알려져 공분을 샀다.

무인점포 늘며 '진상고객' 속출

지난 3월 자영업자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무인 사진관 결제 단말기에 먹던 아이스크림을 꽂아 놓고 떠난 진상 고객의 사연이 공유됐다. '아프니까 사장이다' 화면 캡처

지난 3월 자영업자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무인 사진관 결제 단말기에 먹던 아이스크림을 꽂아 놓고 떠난 진상 고객의 사연이 공유됐다. '아프니까 사장이다' 화면 캡처

A씨는 "뉴스에서나 보던 무인점포 진상 고객을 내가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털어놨다. 두 달 전 세탁방을 인수했다는 A씨는 "먼저 운영했던 점주도 '한밤에 단체로 와서 중국요리를 시킨 뒤 고량주까지 마시고 간 사람들도 있었다'고 했다"고 전했다.

A씨의 가게에서 식사한 청년들은 다른 손님에게 거부감을 줬다는 점에서 업무방해죄에 해당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A씨는 고소를 포기했다. 갈등이 불거지면 매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는 "보는 사람이 없다고 기계를 발로 차는 손님들 때문에 세탁기와 건조기가 한 대씩 고장이 나서 이미 매출 타격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장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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