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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 의해 죽은 선수들 위한 메달"… 최세빈 꺾고 눈물 흘린 우크라 검객

입력
2024.07.30 18:28
수정
2024.07.30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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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이후 우크라이나 첫 올림픽 메달

우크라이나의 올하 하를란이 29일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개인전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국의 최세빈에게 승리한 뒤 피스트에서 무릎을 꿇고 기뻐하고 있다. 파리=연합뉴스

우크라이나의 올하 하를란이 29일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개인전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국의 최세빈에게 승리한 뒤 피스트에서 무릎을 꿇고 기뻐하고 있다. 파리=연합뉴스

2024 파리 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동메달 결정전이 열린 29일(현지시간) 그랑팔레, 한국 대표팀 최세빈(전남도청)에게 마지막 15점째를 낸 올하 하를란(우크라이나)은 눈물을 흘렸다. 무릎을 꿇더니 우크라이나 국기가 그려진 마스크를 벗고 경기장 바닥에 입을 맞췄다.

하를란은 이날 접전 끝에 최세빈을 15-14로 누르고 동메달을 획득했다. 5-11까지 밀리며 '노메달'로 대회를 마칠 위기에 처했지만 극적인 역전을 이뤘다. 최세빈과 한국 입장에선 메달을 눈앞에서 놓친 아쉬운 순간이었지만, 하를란에겐 감격의 순간이었다. 관중들 역시 박수와 함성으로 그랑팔레 중앙홀을 가득 메웠다.

그도 그럴 것이, 하를란의 동메달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가 획득한 첫 올림픽 메달이었다. 여전히 전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참여한 올림픽인 만큼 메달의 의미는 더욱 깊을 수밖에 없었다.

우크라이나에 전쟁 이후 첫 메달을 선물한 하를란은 34세의 베테랑 '국민 검객'이다. 2008년 베이징 대회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2012년 런던 대회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단체전과 개인전에서 은메달과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지난해 7월 이탈리아 밀라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펜싱 팬들을 넘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개인전 64강에서 중립국 소속 개인 자격으로 출전한 러시아 선수 안나 스미르노바를 15-7로 꺾은 뒤 스미르노바의 악수 요청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국제펜싱연맹(FIE) 규정상 의무로 명시된 악수를 하지 않은 하를란은 실격당했다. 파리 올림픽 출전에 필요한 세계랭킹 포인트를 딸 기회까지 잃게 된 것이다. 이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하를란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선제적으로 올림픽 초청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결국 메달까지 획득한 하를란은 경기 후 "정말 특별하다. 믿을 수가 없다"며 "조국을 위한 메달이고, 우크라이나를 지키는 사람들을 위한 메달"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여기 오지 못한 선수들, 러시아에 의해 죽은 선수들을 위한 메달"이라고 말했다.

공식 기자회견에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상황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하를란은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전쟁과 관련해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신경 쓰고 있다. 그건 힘든 일"이라며 "우리 우크라이나 선수들이 다 고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메달이 조국에 기쁨, 희망을 가져다주길 바란다"며 "우크라이나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림픽이 아닌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의 선전을 응원하는 취지로 해석될 수도 있는 하를란의 발언에 대해 IOC가 어떤 판단을 할지는 미지수다. IOC 헌장 50조는 "올림픽이 열리는 장소, 경기장 등 기타 지역에서 어떠한 종류의 시위나 정치적·종교적·인종적 선전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한편, 전통의 펜싱 강국이었던 러시아는 이번 올림픽 출전 자체를 금지당했다. IOC는 이번 올림픽에서 러시아 및 러시아의 동맹인 벨라루스 선수의 경우 '개별 중립 선수(AIN)' 자격으로만 참여를 허가했다. 또한 '전쟁 지지자나 안보 기관과 연계된 선수 등의 출전을 금지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이에 따라 올림픽에 출전하게 된 러시아 출신 선수는 15명, 벨라루스 출신 선수는 17명이다. 우크라이나 역시 전쟁 피해로 인해 역대 하계 올림픽 중 가장 작은 규모인 26개 종목 140명으로 선수단을 꾸렸다.

정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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