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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수평아리!

입력
2024.07.31 04:30
27면

생태계

편집자주

사람에게 따뜻함을 주는 반려동물부터 지구의 생물공동체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구체적 지식과 정보를 소개한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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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초등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를 사서 열심히 기른 적이 있다. '잘 자라서 알을 낳으면 농장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며 애지중지 키웠지만 결국 죽고 말았다. 그 후 시간이 흘러 고 신해철의 '날아라 병아리'를 듣고, 괜히 병아리를 사 왔다고 후회하면서 눈시울을 붉히곤 했다. 그러나 동물법 변호사가 된 후 이런 죄책감은 사라졌다. 내가 샀던 병아리는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고 나를 만나 그나마 행복했던 것이었다.

닭은 크게 육계(고기용), 산란계(달걀용) 또는 종계(번식용)로 나뉜다. 산란계의 경우 수평아리는 알을 낳지 못하므로 쓸모가 없다. 따라서 수평아리는 태어나자마자 성 감별 절차를 거친 후 도태(폐기)된다. 전 세계적으로 연간 65억~70억 마리, 우리나라는 연간 5,000만 마리의 수평아리가 도태되는 것으로 추정된다(나는 이렇게 도태될 예정인 수평아리를 산 것이다).

그렇다면 수평아리는 어떤 방식으로 도태될까?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끔찍하므로 마음이 약한 분들은 여기서 읽는 걸 멈추시길 바란다. 수평아리는 태어난 다음 날 바로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가 분쇄기로 떨어져서 산 채로 갈리거나, 이산화탄소 가스에 질식당하거나, 물에 30분 이상 방치되어 익사하거나, 큰 통에 계속 담기어 압사하게 된다.

동물보호법 제13조는 "누구든지 혐오감을 주거나 잔인한 방법으로 동물을 도살하여서는 아니 되며, 도살과정에서 불필요한 고통이나 공포, 스트레스를 주어서는 아니 된다"라고 하면서, 동물을 불가피하게 죽일 때에도 고통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수평아리 도살 방법은 아무리 봐도 고통이 심할 텐데, 동물학대에 해당하는 건 아닐까.

그렇지만 이런 생각이 무색하게도 위 도살 방법들은 전 세계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미국수의학협회에서는 부화 후 72시간 이내의 수평아리 분쇄를 인도적 안락사 방법으로 규정하고 있고, 2016년 독일 법원은 수평아리 도태가 동물학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다만, 독일은 2022년 1월 법을 개정하여 수평아리 도태를 금지하였고, 오스트리아는 2022년 7월에, 프랑스는 2022년 12월에 독일과 같이 수평아리 도태를 금지한 바 있다. 위 국가들은 고통을 느낄 수 없는 달걀 단계에서 성 감별을 통해 수평아리가 태어날 달걀을 폐기하도록 하고, 이미 태어난 수평아리는 육계로 사육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세계적 추세에 따라 수평아리에 대한 현황 파악 및 대안 마련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한재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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