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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찾아다니는 당신의 여행, 프랑스 타이어 회사 마케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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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 음식평론가가 흥미진진한 역사 속 식사 이야기를 통해 ‘식’의 역사(食史)를 새로 씁니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제33회 하계 올림픽이 프랑스 파리에서 개막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기자간담회를 열어 프랑스 문화를 자화자찬했다. 음식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프랑스 문화를 언급하는데 음식이 빠지면 심심하다. 그냥 음식이라기보다 '미식'이라 일컫는 게 맞을 정도로 프랑스 식문화는 엄청나게 발달했다. 그 원동력은 상당 부분 제국으로서 수탈한 식민지에서 왔다.
로마제국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던가. 프랑스 미식도 마찬가지다. 프랑스 식문화의 많은 형식과 절차가 1799년 마무리된 프랑스혁명 전후로 태동해 근현대를 거치며 서서히 발전해왔다. 100년 만에 다시 파리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프랑스 미식 근현대사의 중요한 국면들을 살펴보자.
우리가 아는 레스토랑, 즉 돈을 주고 음식을 사 먹는 식당의 개념은 프랑스혁명 전후에 등장했다. 레스토랑의 탄생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는 귀족의 몰락으로 자유를 얻은 요리사의 설이다. 말 그대로 혁명으로 귀족 신분과 함께 특권이 사라지자 그들이 고용했던 상주 요리사들이 자유의 몸이 됐다. 전속 상태에서 풀려난 요리사들이 생계를 위해 차린 음식점이 레스토랑이라는 설이다.
다른 하나는 프랑스혁명 이전에 레스토랑이 이미 존재했다는 설이다. 원래 레스토랑은 닭이나 쇠고기로 끓인 육수, 즉 부용(bouillon)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레스토랑이 생기기 전 프랑스에는 '공동 식탁' 형식으로 음식점이 존재했다. 하나의 큰 식탁에 옹기종기 앉아 음식은 주는 대로 받아 먹는 형식이었다. 메뉴 선택의 여지가 없고 여성은 발도 들일 수 없는 공동 식탁을 두고 비위생적이라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공동 식탁을 기피하자 반작용으로 개인 식탁을 구비한 외식 공간이 생겨났다. 여기에서 팔기 시작한 수프 '레스토랑'이 건강 음식이라는 평판을 얻었고, 동시에 음식의 이름인 레스토랑이 식당의 명칭으로 자리를 잡게 됐다. 사업가 마튀랭 로즈 드 샹투아소(1730~1806)가 최초로 고안해 낸 레스토랑은 세월을 거치며 건강보다는 지극한 즐거움을 위해 음식을 먹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프랑스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 '프랑스식 문법'이다. 재료는 조리법에 따라 천차만별 다른 음식으로 승화한다. 이때 조리법뿐 아니라 함께 내는 소스에 따라서도 요리의 느낌이 현저하게 달라진다. 말하자면 고기와 해산물 등의 단백질 식재료와 소스의 조합이라는 양식의 문법이 프랑스에서 확립됐다. 마치 암기 과목을 숙지하듯, 요리사는 복잡 미묘한 소스의 세계를 훤히 꿰뚫고 있어야 한다.
요리를 내는 문법 또한 프랑스가 확립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코스, 즉 요리를 하나씩 시간 차를 두고 내는 '시간 전개형'의 형식 또한 프랑스에서 정착됐다. 짠맛 위주의 음식을 쭉 먹다가 마지막으로 디저트를 먹어 입을 씻는 맛의 확실한 분리 또한 시간 전개형 코스 요리와 더불어 형성됐다.
이 모든 변화를 프랑스에서 최초로 주도한 셰프가 바로 마리 앙투안 카렘(1784~1833)이다. 역사에 이름이 남은 최초의 스타 셰프라 할 수 있는 카렘은 원래 파티시에, 즉 페이스트리 셰프(빵, 과자, 케이크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요리사)였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카렘은 어릴 때부터 레스토랑에서 일하기 시작해 페이스트리의 세계에 몸담으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파티시에로 명성을 얻은 그는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를 위한 연회를 총괄하면서 최정상 셰프에 등극한다.
원래 전통적인 프랑스식 접객은 한식의 한상차림, 즉 '공간 전개형'과 같았다. 이를 카렘은 러시아식의 시간 전개형으로 바꿔 놓았다. 우리가 프랑스식이라 믿는 코스 요리는 사실 러시아가 기원이었다. 요리가 한 가지씩 나오기에 일정 시간 동안 온도 등의 조건이 최선인 상태에서 맛을 오롯이 즐길 수 있다. 이후 코스는 양식의 기본 형식으로 뿌리를 굳건히 내렸다.
프랑스 요리의 핵심인 소스의 세계를 최초로 정리한 것도 카렘이었다. 프랑스 요리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소스들이 있는데, 이는 몇몇 기본 소스에 추가 재료를 더해 맛의 가지를 친 응용 소스의 군집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이 개념을 이해한 카렘은 1833년 에스파뇰, 벨루테, 알망드, 베샤멜의 네 가지 모체 소스와 재료를 더해 응용한 응용 소스로 정리했다.
카렘이 근대화를 주도한 프랑스 요리는 1900년경 본격적인 현대화의 기회를 맞는다. 오트 퀴진(Haute Cuisine)이라 명명된 이 요리 세계의 특징은 '고급의, 상류층의'이라는 프랑스어 단어 '오트'가 실마리이다. 최고의 재료에 최고난도의 조리 기술 및 문법을 적용해 요리를 예술 수준으로 승화 및 격상시키는 게 목표다.
오트 퀴진을 주도한 셰프는 오귀스트 에스코피에(1846~1935)다. 카렘의 뒤를 이은 2대 스타셰프라 할 수 있는 에스코피에 또한 프랑스 요리, 더 나아가 양식의 전형을 고안하고 정착시켰다. 대표적 업적을 꼽자면 일단 주방의 전면 분업화가 있다. 재료 손질부터 소스, 수프, 단백질 조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리를 분야별로 나눠 전담 요리사를 붙였다.
분업화뿐만 아니라 요리 난이도에 따라 분업화가 되었기에 주방은 실질적으로 계급이 존재하는 군대의 체계로 재정립됐다. 재료 손질부터 시작해 가장 난도 높은 단백질 조리까지를 넘어 주방의 관리에 이르는 서열을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는 시스템이 된 것이다. 이 모든 요리사들을 굽어보고 관리하는 이가 셰프(chef), 즉 우두머리(chief)라 불리게 됐다.
에스코피에는 후대가 참고할 수 있도록 프랑스 요리 문법을 책으로 남겼다. '요리의 길잡이(Le Guide Culinaire·1903)'를 비롯해 상당수의 책을 썼으며, 카렘이 정립한 네 종류의 모체 소스를 다섯 종류(에스파뇰, 벨루테, 베샤멜, 토마테, 홀랜다이즈)로 재정리했다. 에스코피에가 정리한 다섯 가지 모체 소스는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온다.
오트 퀴진이 등장한 1900년대 초, 프랑스에서는 또 다른 미식의 움직임이 싹텄다. 레스토랑을 더 잘 즐기기 위한 길잡이인 미쉐린(미슐랭) 가이드의 등장이었다. 에두아르와 앙드레 미쉐린 형제가 설립한 미쉐린 타이어 회사는 당시 막 등장한 자동차의 쓰임새가 늘어나면 타이어 수요도 따라 늘어나리라 예상했다. 이를 위해 여행만큼 좋은 촉진제가 없었으니, 미쉐린은 말하자면 '맛집 여행'을 위한 가이드를 내놓았다.
미쉐린 가이드는 별점 시스템으로 유명하다. 별 한 개는 '아주 좋은 레스토랑'이며, 두 개는 '따로 시간을 내서라도 들러볼 만한 곳'이며 세 개는 '그곳에 가는 것 자체를 여정으로 삼을 만한 곳'을 의미한다. 이런 분류와 더불어 '목적지 레스토랑(Destination Restaurant)'이라는 개념이 생겨나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최고의 식재료를 최고의 예술로 승화시킨다는 오트 퀴진이 50년 넘게 주도권을 잡아오면서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지나치게 복잡하고 사람 손을 많이 타서 즐기기 어렵다는 논리였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1960년대 말 프랑스에서는 누벨 퀴진(Nouvelle Cuisine)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누벨 퀴진은 오랫동안 대세였던 오트 퀴진의 대척점을 추구했다.
미쉐린과 숙적인 골미요 가이드를 출범시킨 음식평론가 앙리 골과 크리스티앙 미요, 그리고 폴 부퀴즈, 알랭 샤펠, 미셸 게라르 등의 셰프가 누벨 퀴진 운동을 주도했다. 쓸데없이 복잡한 형식 지양, 소스보다 재료 자체의 맛 살리기, 짧고 소박한 메뉴 등이 누벨 퀴진의 핵심이었다. 전통을 수호하는 이들에게 조롱과 비판을 당하기도 했지만, 프랑스 요리에서 많은 부담을 덜어냈다는 차원에서 누벨 퀴진은 가치를 높게 인정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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