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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크비건 거쳐 건강한 집밥으로… 1주간 '완전 채식' 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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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가 심각한 건 알겠는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일상 속 친환경 행동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고요? 열받은 지구를 식힐 효과적인 솔루션을 찾는 당신을 위해 바로 실천 가능한 기후행동을 엄선해 소개합니다.
"전기자동차를 몰면서 육류를 먹는 사람과 휘발유 자동차를 몰면서 채식하는 사람 중 누구의 탄소 배출량이 더 적었을까요?"
인터뷰 중 이원복 한국채식연합 대표의 질문에 말문이 막혔어요. 정답은 놀랍게도 '휘발유 차를 몬 사람의 탄소 배출량이 훨씬 적었다'였습니다. 채식의 탄소 절감 효과가 이 정도였다니요.
육식은 기후위기의 주원인입니다. 브라질 산타카타리나 연방대학 등 국제 연구팀은 지난 2월 "잦은 벌목 등으로 인해 아마존 밀림 10~47%가 2050년쯤 빠르게 망가질 것"이라고 예측했어요. 그런데 브라질 연방검찰청 환경 보고서에 따르면 아마존 벌채의 80%가 소 목축을 위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오로지 쇠고기를 먹기 위해 '지구의 허파'를 파괴 중인 거죠. 이 소들은 방귀와 트림으로 연간 약 최대 1억8,000만 톤의 메탄가스까지 배출합니다.
나 하나쯤 채식하는 게 도움이 될까? 물론입니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영국 기준) 전 국민이 1주에 단 하루만 채식을 한다면 자동차 500만 대가 운전을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관련기사: 고기반찬 4개→2개로... 자동차 13분 탈 때 나오는 온실가스 줄어든다)
채식이 빠르고 확실한 기후행동임은 분명하지만 엄두가 잘 나지 않습니다. 쇠고기 스테이크와 삼겹살을 무척 좋아해온 제가 과연 비건(Vegan·동물성 식품을 전혀 먹지 않는 채식주의) 식단을 실천할 수 있을까요? 1주간 체험해보니, 충분히 가능했습니다!
물론 처음엔 쉽지 않았어요. 우선 비건 참치 김밥 두 세트를 배달 주문해 1일 차 저녁부터 2일 차 아침까지 먹었습니다. 이후 점심으로는 패스트푸드점 감자튀김과 편의점 샐러드를, 저녁으론 비건 피자를 먹었어요. 비건 냉동만두까지 주문했죠. 분명 비건은 맞는데 뭔가 잘못돼 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틀간 식단의 대부분은 '정크비건'이었습니다. 채식은 맞지만 가공식품이나 대체육(대체생선), 즉석음식 등 건강하지 못한 식단을 뜻하는 말이에요. 고기만 안 먹으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남은 5일간 어떻게 식단을 실천해야 할지 막막해졌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3, 4일 차엔 비건 '맛집' 탐방에 나섰습니다. 서울 종로구 식당 '이밥'을 찾아 취나물과 견과류로 고소한 맛을 낸 주먹밥을 먹고 인근 카페 '텅'에서 비건 라테를 마셨어요. 또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비건 맛집 동네를 찾아 중식당 '황금룡'의 야채짬뽕과 마파두부, '승승밀크티'의 밀크티, 글루텐 프리 베이커리 '라므아르'의 케이크를 전부 비건으로 즐겼습니다.
외식을 다녀오니 맛있는 비건 음식을 만들고 싶다는 의지가 강해졌어요. 5일 차엔 냉동만두와 각종 채소로 비건 만두전골을 끓였습니다. 6, 7일 차엔 전골을 하고 남은 식재료를 조합해 보리쌈밥, 두부면 비빔국수, 두부숙주덮밥 등 다양한 비건 집밥을 해먹었어요. 생각보다 장점이 많더라고요. 우선 맛있고, 고기에 비해 빨리 익으면서도 누린내가 없어 조리가 쉬우면서, 기름기가 적어 설거지도 수월하고, 속까지 편했습니다.
사실 3일 차 저녁엔 비건 식단에 무참히 실패했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생선회에 쇠고기까지 먹어 버렸거든요. '비건 체험 중이라고 말했어야 했나' '회식을 가지 말았어야 했나' 등 죄책감이 밀려왔어요. 5년간 비건 생활을 하다 1년 6개월째 중단 중이라는 이솔(27)씨 역시 "채식을 할 땐 회식부터 사적 만남까지 외식 관련 모든 일이 스트레스로 다가왔다"고 털어놨습니다.
비건을 오래 지속해온 이들은 오히려 "채식에 대한 강박을 버리라"고 조언합니다. 비건 블로그를 운영하는 김모(33)씨는 "나도 모르게 동물성 원료를 먹는 일이 생긴다"며 "자책하지 말고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된다'는 생각으로 지속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국내 비건들 사이에선 '비(非)덩주의'라는 말도 널리 쓰입니다. 국물·양념 대부분에 동물성 원료가 포함된 한식 특성을 고려해 회식처럼 불가피한 상황에선 고기 덩어리만 피하자는 채식법인데요. 채식에 실패하더라도 '오늘은 비덩이다!'를 외치고 내일부터 다시 힘내면 된다는 것이죠.
온라인상의 채식 커뮤니티에 의지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저 역시 각종 비건 블로그에서 서울 비건 맛집 지도를 얻고 해시태그 #나의_비거니즘_일기로 요리법을 배웠는데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던 채식 요리법을 모아 '나의 채식 테이블'을 출간한 정혜성(37)씨는 "채식은 보통 홀로 실천하는 데다 여전히 극소수"라며 "함께 채식하는 사람이 있음을 인지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서울과 제주에서 '비건책방'을 운영하는 A씨 역시 "책방에서 만나는 분들뿐만 아니라 멀리 있는 비건들과도 함께하기 위해 SNS 계정을 병행하고 있다"고 했어요.
'채식하기 좋은 사회'가 되려면 채식에 대한 수요가 더 커져야 합니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는 육식이 '3N'(Natural, Necessary, Normal-자연스럽고, 필수적이고, 일반적이다)이라는 고정관념이 강하다"며 "하지만 현대엔 채식으로도 영양소를 충분히 얻을 수 있고 오히려 가공육의 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많은 시민이 이를 깨닫고 채식에 나서야 관련 산업과 인프라가 함께 발달할 것"이라고 했어요.
채식친화적 인식을 키우기 위해선 청소년기부터 채식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강성미 사단법인 유기농문화센터 원장은 "우리나라는 이유식 단계에서부터 선택권 없이 평생 육식 위주 식사에 길들여져 채식에 대한 거부감이 생기기 쉽다"며 "채식 급식 선택권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어요. 2022년 서울시교육청은 서울 76개 학교에 채식 메뉴를 추가 제공하는 '그린 급식바'를 설치했습니다. "모든 식당과 카페에 채식 메뉴가 한 개씩은 있으면 좋겠다"던 이솔씨의 바람대로, 채식 선택권이 일부 학교를 넘어 전 사회로 확산되면 좋겠죠.
1주 체험기는 끝났지만 비건 식단의 맛을 알게 된 요즘, 하루 한 끼씩은 비건 요리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외식할 때도 비건 맛집 지도를 자주 참고해요. 완벽하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채식을 실천하려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채식하기 좋은 사회가 되기 더 쉬워진다는 걸 기억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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