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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 희생자 임기윤 목사… 법원 "국가가 유족에게 배상해야"

입력
2024.07.25 18:49
수정
2024.07.25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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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 비판 설교, 연행 조사 끝 사망
"반인권적 행위… 위법성 정도 중대"

서울중앙지법·서울고법이 위치한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중앙지법·서울고법이 위치한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수사를 받다가 사망한 고 임기윤(1922~1980) 목사의 유족에게 국가가 손해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다만, 인용된 금액은 청구 금액 60억 원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2억여 원에 그쳤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0부(부장 정찬우)는 임 목사의 배우자와 자녀 등 4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25일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국가가 배상해야 하는 액수는 총 2억1,000만 원이다. 임 목사 유족들은 당초 60억 원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수사관들의 불법구금 및 조사 과정에서의 강압적인 행위들이 망인의 사망에 직간접적 원인이 되었다고 봄이 상당하다"면서 "배우자와 자녀들인 원고들의 정신적 고통도 자명하다"고 지적했다.

임 목사는 박정희 군사정권의 독재와 인권탄압에 맞서 1974년 유신헌법 개헌청원 서명운동을 벌였다. 1980년 5월 전두환 신군부의 비상계엄이 선포된 후 광주에서 벌어진 학살의 진상을 알리고, 신군부를 비판하는 설교를 했다. 그해 7월 19일 임 목사는 부산지구 계엄합동수사단의 출석요구를 받고 출석해 '김대중 내란음모사건'과 관련한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조사 3일 만에 뇌출혈이 발생해 결국 사망했다.

2001년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합동수사단 측이 진술을 강요했고, 결국 지병인 고혈압 증세가 악화돼 사망한 것이라고 밝혔다. 위원회는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사망했다"고 판단했다. 위원회 판단을 근거로 유족들은 지난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심 재판부는 손해배상 범위를 정하면서 망인의 위자료 청구권은 인정하면서도, 유족들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 부분은 소멸시효를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임 목사는 1998년 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 보상심의위원회에서 5·18민주유공자로 인정받았다. 재판부는 유족들이 이미 그때 국가의 불법행위를 인지했을 것으로 판단, 단기소멸시효인 3년이 지나 소를 제기한 것이라고 봤다. 민법상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피해자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이다.

재판부는 "망인에 대한 불법 구금이나 사망에 이르게 된 경위, 시대적 상황 등에 비추어 망인이 겪었을 고통이 상당했을 것"이라면서 "이 사건의 불법행위는 국가기관이 헌법질서 파괴 범죄를 자행하는 과정에서 저지른 반인권적 행위로 위법성의 정도도 매우 중대하다"고 설명했다.

이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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