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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품 대금 줘" 전자소송 편의성 이용 100억 뜯으려던 일당들

입력
2024.07.25 15:51
수정
2024.07.2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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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지검 "총책 등 6명 구속 기소"
전자소송 이용 허위 지급명령 받아
24개 회사 법인서 16억 원 가로채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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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소송 제도의 편의성을 이용해 유령법인을 세운 뒤 물품 대금을 지급한 것처럼 계좌명세를 조작, 법원으로부터 100억 원 가까운 지급명령을 받아 피해자들의 회삿돈을 가로챈 일당이 붙잡혔다.

춘천지검 형사2부(부장 홍승현)는 사기, 사기미수, 공전자기록 등 불실기재 및 행사, 금융실명법 위반 혐의로 범행 전반을 계획한 총책 A(46)씨 등 6명을 구속기소했다고 25일 밝혔다.

검찰이 밝힌 이들의 수법은 치밀했다. A씨 등은 먼저 범행 대상으로 삼은 피해 회사와 같은 이름으로 법인을 만들어 계좌를 개설했다. 이후 이 계좌에 송금과 출금을 반복한 뒤 송금명세만 편집해 피해 회사에 물품대금을 보낸 것처럼 허위 자료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대금을 미리 지급했는데 물품을 못 받았으니 대금을 반환해달라"며 피해 회사를 상대로 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했다.

A씨 등은 법원의 전자소송을 활용했다. 일반 민사소송 사건과 달리 법원에서 서류 심리만으로 지급명령을 발급하고 문서 제출 절차 등이 신속하다는 점을 노렸다.

이렇게 지급명령을 받아낸 A씨 등은 '지급명령 정본'까지 가로챘다. 통상 지급명령이 발령되면 채무자는 지급명령 정본을 송달받아야 돈을 줘야 할 의무가 생긴 것을 알게 된다. 이들은 송달시점에 맞춰 피해 회사 사무실 근처에 미리 대기하며 관계자 행세를 하며 지급명령 정본을 가로챘다. 결국 지급명령이 내려진 사실을 몰랐던 피해회사는 이의신청을 하지 못했고 A씨 등은 해당 회사 계좌에서 채권추심을 가장해 돈을 빼낼 수 있었다.

A씨 일당은 이 같은 수법으로 지난해 5월부터 11월까지 모두 10개의 유령법인을 설립한 뒤 28개 회사를 상대로 전국 법원에서 99억 원 상당의 지급명령을 받아냈고 은행을 찾아 24개 피해회사 법인 계좌에서 16억6,000만 원을 가로챘다.

이들의 범행은 피해회사의 민원을 통해 소송사기를 의심한 춘천지법의 수사 의뢰와 검찰의 추적으로 들통났다. 검찰은 지난 5월 지급명령 사건의 채권자 역할을 맡았던 조직원 2명을 먼저 구속한 뒤, 추가 수사를 통해 최근 총책 A씨와 중간관리자 B(23)씨 등 4명을 차례로 구속했다.

검찰은 지급명령 신청 근거자료로 내는 계좌명세에 법인 상호만 표시되고 등록번호는 표시되지 않는 점, 피해회사 관계자 행세를 하면 별다른 본인확인 절차 없이 지급명령 정본을 수령할 수 있는 점을 이용해 범행이 이뤄진 사실을 파악하고 법원행정처에 제도 개선방안 검토를 권고하기로 했다.

박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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