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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의 사회화' 숙제 받은 토종 IT 기업들...혁신하고 국민 신뢰 되찾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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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줄줄이 위기다. 국내 전자상거래(이커머스) 기업 티몬·위메프는 최악의 유동성 위기에 내몰렸고 국내 대표 메신저 플랫폼인 카카오와 소프트웨어 기업인 한글과컴퓨터는 그룹과 오너의 사법리스크로 발이 묶였다. 플랫폼 업계의 큰 형님인 네이버는 라인야후 사태 후폭풍으로 속절없는 주가 하락에 속앓이 중이다. 토종 IT 기업들이 국민 신뢰를 회복하려면 기업 윤리와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IT 업계에 따르면 토종 IT 기업들은 1990년대 말 인터넷 등장과 함께 국내 시장에 대한 독점력을 무기로 급성장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고속 성장에 가려졌던 문제점들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
문제의 내용과 원인은 다르지만 이들 기업은 덩치가 커졌음에도 경영 체계와 경영 철학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수합병(M&A)과 기업공개(IPO)를 반복하며 10여 년 만에 대기업으로 성장한 카카오가 대표 사례다. 카카오는 2010년 카카오톡 출시로 성공한 뒤 유망 기업을 인수해 외연을 넓히는 전략을 썼다. 인수한 기업의 경영진에 자율경영권을 갖도록 하고 필요한 자금은 IPO로 조달하는 방식이다.
'문어발 확장 내수 기업'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카카오는 해외 진출을 위해 혁신 서비스를 내놓기보다는 상장이라는 쉬운 길을 택했다. 카카오가 SM엔터테인먼트(SM엔터) 인수에 나선 것도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하려면 지식재산권(IP)을 많이 보유한 SM엔터가 필요하다고 봐서다. 하지만 SM엔터 주가 시세조종 의혹으로 김범수 창업자가 구속돼 사법리스크를 떠안았다. 또한 카카오엔터와 SM엔터의 화학적 결합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2010년 1세대 커머스로 시작한 티몬과 위메프는 사태의 배경에도 전자상거래 시장 선점을 위한 몸집 키우기와 무리한 출혈 경쟁이 자리 잡고 있다. 지마켓 창업자 출신 구영배 대표가 싱가포르에서 창업한 큐텐이 티몬과 위메프에 이어 인터파크커머스와 AK몰, 미국 이커머스 업체 '위시'까지 연달아 인수하며 덩치를 빠르게 불리다가 자금난에 빠졌기 때문이다. 큐텐의 최대 목표도 큐텐 산하 물류 기업 큐익스프레스의 미국 나스닥 상장이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테크 스타트업의 최대 목표는 기업을 키워 돈을 많이 버는 것이어서 경영 방식이 공격적"이라며 "초기 창업자를 비롯해 몇 명의 의사 결정에 지나치게 많은 힘이 실리다 보니 의사 결정 과정에서 법과 규제, 기업의 사회적 영향과 역할 등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부족한 경향이 있다"고 짚었다.
1990년 토종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출발한 한컴은 비윤리적 경영이 도마에 올랐다. 김상철 한컴 회장이 가상화폐 '아로와나 토큰'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김 회장 차남이자 한컴위드 사내이사인 김모(35)씨는 한컴 계열사가 투자한 가상 자산으로 90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하고 사적으로 사용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IT 업계에선 한컴 오너 일가가 일탈을 하게 된 여러 원인 중 하나로 국내 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꼽는다. 1990년 설립된 한컴은 한때 마이크로소프트(MS)의 워드 프로그램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으나 현재는 정부와 공공기관 등만 사용해 '내수용 소프트웨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MS가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 등 기업용 소프트웨어에 생성형 AI를 담아 성능을 혁신하고 한국어 활용 능력을 향상한 데 비해 한컴 오피스는 활용도가 떨어져 민간 기업들이 잘 활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업계 관계자는 "2004년 정부가 국산 소프트웨어를 육성한다는 이유로 부처와 공공기관에 한컴 오피스를 도입하면서 한컴은 20년째 정부 시장을 독점하며 땅 짚고 헤엄치는 식으로 사업을 해왔다"며 "안정적 수익이 나오는데 혁신을 할 필요성을 얼마나 느꼈겠느냐"고 되물었다.
1999년 닷컴 버블 시기에 창업해 대기업으로 성장한 네이버도 성장통을 겪고 있다. 호실적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힘을 쓰지 못하고 있어서다. 네이버 주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 세계 IT 주가가 폭등했던 2021년 7월 30일 46만5,000원을 찍은 뒤 내리막이다. 2023년 생성형 AI인 '하이퍼클로바X'를 내놓으며 20만 원대를 회복했지만 올해 들어 17만 원대로 떨어졌다.
네이버의 시가 총액도 2021년 59조 원 수준에서 올해 들어 약 29조 원으로 내려앉았다. 경기 침체로 국내 증시 유동성이 크게 줄긴 했지만 글로벌 빅테크에 투자금이 몰리는 것을 감안하면 국내 대표 테크 기업의 부진은 이례적이다.
이른바 '라인야후 사태'로 인한 네이버의 경영 불확실성과 빅테크에 밀리는 AI 서비스 경쟁력이 원인으로 꼽힌다.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라인야후 사태가 한일 관계로 인해 꼬이는 과정에서 네이버는 소프트뱅크와 진행한 협상을 위해 침묵을 유지했는데 결과적으론 국민과 주주들의 불안은 해소해주지 못했다"며 "네이버의 영향력을 고려하면 더 적극적이고 기민하게 소통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빠르게 성장한 IT기업들이 각종 리스크를 줄이려면 경영적 측면에서 '사회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지적한다. 홍 교수는 "스타트업이 대기업으로 가는 과정은 결국 사회와 공생하는 과정"이러며 "기업이 자신들의 역할과 사회적 영향력을 고민하고 경영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좀 더 노력하고 균형점을 찾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토종 IT 기업들이 성장통을 겪는 과정에서 정부가 각종 규제 강화로만 대처하면 국내 플랫폼 생태계 성장만 방해할 수 있다는 걱정도 있다. 검색, 커머스, 메신저, 영상 등 플랫폼 전반에 걸쳐 구글, 메타, 알리, 틱톡 등 글로벌 빅테크의 국내 영향력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벤처창업학회장을 지낸 전성민 가천대 교수는 "정부가 플랫폼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려는 시점에서 이런 일들이 터진 게 안타깝다"면서 "규제 강도가 높아지고 기업들이 대기업에 가까워질수록 혁신이 어려워지는 문제도 있으니 규제 당국은 양면성을 고려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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