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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이 먹히니까?"...죽은 중국인의 소설을 자기 걸로 발표한 백인 작가

입력
2024.07.26 13:3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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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중국계 미국인 R. F. 쿠앙의 소설 ‘옐로페이스’
백인이 중국인 소설 쓰는 문화적 전유, 차별 등
현실 문화계 쟁점 짚으며 정면으로 문제 제기

소설 '옐로페이스'를 쓴 중국계 미국인 작가 R. F. 쿠앙. ⓒJohn Packman 문학사상 제공

소설 '옐로페이스'를 쓴 중국계 미국인 작가 R. F. 쿠앙. ⓒJohn Packman 문학사상 제공

‘우리에게 필요한 AAPI(아시아계와 태평양 제도 출신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줄 출판계의 샛별’이라고 불리는 중국계 미국인 작가 아테나 리우. 집안 내 모든 죽은 여인들의 유령을 불러낼 수 있는 중국계 미국인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아테나의 장편소설 데뷔작은 온갖 문학상을 탔다. 그의 친구이자 ‘평범한’ 백인 작가인 준 헤이워드는 이런 인기를 “명백히 그녀의 글이 아니라 ‘그녀 자체’로 인한 것”이라고 여긴다. “아름다운 미국 예일대학 졸업생인 동시에 뭐라 규정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을 가진 유색인종 여성”인 아테나를 출판계가 ‘선택’했다는 것이다.

중국계 미국인 작가 R. F. 쿠앙의 장편 소설 ‘옐로페이스’는 준이 팬케이크를 먹다 질식사한 아테나의 소설 ‘최후의 전선’을 훔쳐 발표한다는 한 줄짜리 로그 라인으로 정리할 수 있다. 다만 소설이 하려는 이야기는 절대 짧지 않다. 다양성과 문화적 전유 혹은 착취, 윤리적 소비, 창조와 표절,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문화까지 현대 사회의 온갖 병폐를 대담하게 훑는다.

‘인종차별’ ‘훔친 소설’ 논란에도 승승장구, 왜?

옐로페이스·R. F. 쿠앙 지음·신혜연 번역·문학사상 발행·444쪽·1만8,000원

옐로페이스·R. F. 쿠앙 지음·신혜연 번역·문학사상 발행·444쪽·1만8,000원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선에서 복무한 중국인 노동자 부대를 다룬 소설을 백인 여성 작가가 발표한다면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출판사의 권유에 준은 아시아계를 떠올리게 하는 ‘주니퍼 송’이라는 이름을 쓴다. ‘최후의 전설’은 베스트셀러가 되지만, 곳곳에 암초가 도사린다. “중국인이 아닌 작가가 이런 이야기를 써서 이익을 얻어도 되는가”라고 여기는 일부 독자들의 ‘인종 차별주의자’라는 비판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트위터(현 엑스)에는 폭로 게시물이 올라온다. “준 헤이워드라고도 알려진 주니퍼 송은 ‘최후의 전선’을 쓰지 않았다. 내가 썼다. #아테나 살리기”

자신을 죽은 아테나라고 주장하는 온라인 익명 계정과 자꾸만 나타나는 아테나의 유령에 시달리면서도 준은 자신을 항변하려 애쓴다. 아테나 역시 중국계이지만 중국어를 할 줄 몰랐고, 한국인도 아니면서 한국전쟁을 다룬 소설을 써서 상을 받은 적도 있는 데다 타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그대로 갖다 쓰기도 했다는 사실을 되새기면서. 상황은 갈수록 아이러니해진다. 백인 작가인 준을 보호하려 보수 성향 언론 폭스뉴스에서 그를 편들고, 수천 명의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이 ‘최후의 전선’을 구입하는 문화전쟁으로 번진다. 논란이 커질수록 책의 판매고는 치솟기만 한다.

“지금은 오히려 아시아계인 게 더 좋아”라는 역설

아시아계 미국인 가족에 대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배우 등이 지난해 3월 1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로스앤젤레스=AP 연합뉴스

아시아계 미국인 가족에 대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배우 등이 지난해 3월 1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로스앤젤레스=AP 연합뉴스

“지금은 오히려 아시아계인 게 더 좋아. 다양성이야말로 지금 제일 잘 팔리는 주제야. 편집자들은 소외된 목소리를 몹시 갈망하고 있거든.”

준은 소설에서 아시아계 작가 지망생에게 멘토로서 이 같은 말을 건넨다. 실제로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BEEF)’ ‘삼체’ 영화 ‘미나리’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등 최근 영미권에서 눈길을 끄는 아시아계 콘텐츠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의 성공이 오직 ‘다양성’ 덕일까. 준의 시선대로 “아시아계인 게 더 좋은” 세상이라면, 숫자만 따졌을 때 이들의 이야기가 백인 주류 이야기보다 앞서야 마땅하다. 현실은 여전히 “한 시즌에 두 개의 소수집단 이야기는 내놓을 수 없다”고 말하는 문화계다.

‘옐로페이스’가 던지는 “당사자가 아닌 작가가 소수자의 이야기를 써도 되는가”라는 질문에 쿠앙은 영국 가디언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써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남성이 쓴 여성은 대부분 형편없지만, 이는 생물학적 자격이 아니라 기술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결국 진정성의 문제라는 것인데, ‘옐로페이스’를 두고 중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주한 작가가 “자신을 넘어서는 질문을 거부하고 있다”는 비판이 미국에서도 나왔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아시아계인 쿠앙이 인종에 갇혀 본인과 작품에 자기 변명을 시도한다는 주장이었다. 이 소설의 아이디어를 처음 접한 출판사는 작가에게 “사람들이 불쾌하게 여길까 걱정된다”고 반응한 것으로 전해진다. ‘옐로페이스’는 ‘모범적인 소수자’라는 환상을 배신하는 소설이다. 이에 대해 느끼는 불쾌함은 과연 어디서부터 오는 걸까.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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