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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벨리온 사라지고 사피온 남는다' 양 사 합병 후 존속 법인은 사피온

입력
2024.07.25 09:48
수정
2024.07.25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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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말 합병 회사 출범
주식 합병 비율은 1 대 2.2~2.3주

인공지능(AI) 반도체를 개발하는 국내 대표적 신생기업(스타트업)의 합병으로 화제를 모은 리벨리온과 사피온이 다음 달 말 사피온을 존속 법인으로 한 새 회사로 거듭난다. 즉 합병을 통해 사피온이 남고 리벨리온이 사라지는 형태다.

새 회사의 경영권을 가져가는 리벨리온이 아닌 사피온을 존속 법인으로 남기는 특이한 선택을 통해 사피온의 모회사인 SK텔레콤은 명분을 챙기고, 리벨리온은 박성현 대표가 합병 회사의 대표를 맡아 AI 반도체 개발을 이끌면서 실리를 취할 수 있게 됐다. 배경에는 절세도 한 몫 했다.

2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리벨리온과 사피온은 이달 말 상호 실사를 마치고 사피온을 존속 법인으로 남기는 합병 회사를 빠르면 다음 달 말 출범시킨다. 양 사의 주식 교환 비율은 사피온 1주당 리벨리온 주식 2.2주 또는 2.3주를 교환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양 사 관계자는 "사피온을 존속 법인으로 남기는 것은 합병 논의 단계에서 결정됐다"며 "실사 과정에서 특별한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아 예정보다 빨리 끝나면서 빠르면 8월 말, 늦어도 9월 안에 합병 법인을 출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리벨리온의 AI 반도체. 리벨리온은 올해 말을 목표로 거대언어모델(LLM)용 AI 반도체 '리벨'을 개발하고 있다. 리벨리온 제공

리벨리온의 AI 반도체. 리벨리온은 올해 말을 목표로 거대언어모델(LLM)용 AI 반도체 '리벨'을 개발하고 있다. 리벨리온 제공

사피온을 존속 법인으로 남기는 것은 미국 진출 및 세계 시장을 염두에 둔 조치다. 관계자는 “사피온은 미국 실리콘밸리에 사피온 inc라는 법인이 있어 미국 진출에 용이하다"며 "사피온이 해외에서 SK텔레콤 관계사로 널리 알려진 점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사피온은 주주 구성 차이에서 발생하는 중요한 세금 문제를 피할 수 있다. 사피온의 경우 미국 법인 사피온 inc가 100% 지분을 갖고 있다. 따라서 사피온이 합병으로 소멸하면 사피온 inc가 소멸 후 발생하는 자본 이득에 대한 세금을 미국 정부에 내야 한다. 만약 사피온 inc가 자금 여력이 없으면 세금 부담이 주요 투자자인 SK텔레콤, SK하이닉스, SK스퀘어에게 전가될 수 있다. 따라서 SK는 절세 차원에서 사피온을 존속 법인으로 남겨 미국의 과세 부담을 피하게 됐다.

리벨리온의 경우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 등에서 투자를 받았지만 두 나라 모두 합병으로 발생하는 자본 이득에 대한 세금을 부과하지 않아 사피온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국내에서도 양 사 합병은 일정 요건을 갖춘 '적격합병'에 해당해 별도 세 부담이 없다.

하지만 합병 법인의 사명까지 사피온을 유지할지는 미정이다. 관계자는 "사피온의 사업자 등록번호를 유지하지만 사명까지 유지하는 것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양 사가 합병을 통해 가장 크게 기대하는 것은 개발인력이다. 현재 국내에 AI 반도체 및 소프트웨어 개발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양 사는 합병을 통해 개발인력을 두 배로 늘릴 수 있게 됐다. 관계자는 "신경망처리장치(NPU) 분야에서 경험 있는 개발자가 많이 부족하다"며 "합병을 통해 부족한 인력 공급 문제를 해결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꼽았다.

더불어 SK텔레콤은 사피온의 적자가 연결재무제표에 반영돼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도 합병으로 떼어낼 수 있게 됐다. 사피온코리아는 지난해 약 260억 원의 적자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이번 양 사 합병을 계기로 국내 AI 반도체 개발업체들의 세력 구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에는 리벨리온, 사피온, 네이버가 투자한 퓨리오사 등이 비슷한 경쟁력을 갖췄으나 합병 회사가 출범하면 규모를 키운 합병 회사가 유리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합병 회사는 개발인력이 크게 늘어나고 SK텔레콤과 KT를 투자자로 둬 사업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며 "AI 반도체 개발 업체들 사이에 세력 구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연진 IT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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