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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차세대 발사체 지식재산권 ‘공동소유’ 안 된다"... ’뉴 스페이스’ 시대 먹구름?

입력
2024.07.24 04:3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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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연, 독점 우려해 한화에어로에 통보
한화에어로, 기술료 부담 떠안아야 하나
협력 필수라 결국 갈등 가라앉을 가능성
"상업 우주활동 규정·법 정비돼야 할 때"

지난해 5월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3차 발사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지난해 5월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3차 발사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차세대 우주발사체 제작을 총괄할 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에어로)가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으로부터 발사체 기술에 대한 지식재산권 공동 소유 요구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뜻을 전달받은 것으로 23일 확인됐다. 항우연은 전액 국가 예산으로 진행되는 개발 사업이어서 특정 기업과 지식재산권을 공동으로 소유하면 특혜 논란이 생길 거라는 입장인데, 세계 우주산업의 흐름이 정부가 아닌 민간이 주도하는 ‘뉴 스페이스(New space)’로 전환되고 있는 상황에서 시대에 뒤처진 행보라는 비판도 나온다.

지재권 빌려 쓰면 수익의 20% 기술료로 내야

이날 방산업계에 따르면 항우연은 차세대 발사체 사업 제안서에 담긴 ‘연구개발과제 수행으로 발생하는 모든 유ㆍ무형적인 성과물은 주관 연구개발 기관 소유임을 원칙으로 한다’는 규정에 따라 한화에어로에 지식재산권의 공동 소유는 가능하지 않다고 최근 통보했다. 항우연 측은 “국비 100%가 투입된 사업인데 지식재산권을 한화에어로와 공동 소유할 경우 나중에 다른 기업들에 기술을 이전할 때 한화에어로의 동의를 받아야만 하는 문제가 생긴다”며 “오히려 여러 기업으로의 기술 확산이 어려워지는, 한화에어로의 독점 체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한화에어로는 지난달 법무법인을 통해 차세대 발사체 사업에서 발생하는 지식재산권 소유와 관련해 항우연에 이의를 제기했다. 해당 사업은 2032년까지 9,505억 원을 투입해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뒤를 잇는 차세대 발사체 기술을 양측이 공동 개발한다는 내용으로, 지난 5월 본 계약을 체결했다. 한화에어로는 사업 제안서에 담긴 ‘체계종합기업(한화에어로)의 기여도에 대해 별도 협의를 통해 (성과물의) 소유 배분을 정할 수 있다’는 조항을 근거로 향후 발생할 지식재산권의 공동 소유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 조항에 대해 항우연은 향후 개발 상황에 따라 기술 이전의 여지를 남긴 것일 뿐, 단독 소유를 포기한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업계에선 이번 문제의 핵심이 특허권 사용에 따른 기술료 지급에 있다고 본다. 한화에어로가 항우연과 차세대 발사체 기술의 지식재산권을 공동 소유하지 못하고 '빌려와' 사업을 벌일 경우에는 얻는 총수익의 20% 정도를 기술료로 지급해야 할 거라고 업계는 관측한다. 특히 차세대 발사체는 재사용 발사체가 아니라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이어서 사업성도 낮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차세대 발사체 사업에 참여하려다 막판에 포기한 것도 사업성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며 “한화에어로 입장에선 기술료까지 지급하면 해당 사업에서 남는 수익이 없을 거라고 보는 것”이라고 전했다.

경남 창원에 있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1사업장 내 누리호 엔진 조립동에서 기술진이 기기들을 점검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경남 창원에 있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1사업장 내 누리호 엔진 조립동에서 기술진이 기기들을 점검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민간 기술 이전 늦어지면 시장에서 사장될 우려

다만 차세대 발사체 개발을 위해 한화에어로는 누리호 개발 경험이 있는 항우연과 2032년까지 긴밀히 협력해야 하는 만큼 양측 간 갈등이 불거지는 걸 내부적으로 상당히 부담스러워하고 있는 걸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양측의 지식재산권 공동 소유 문제는 더 이상 상황이 나빠지지 않고 결국 어떻게든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러나 업계에선 이번 일을 계기로 뉴 스페이스 시대에 맞게 국가 연구기관과 민간 기업 간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비를 들여 고도화해놓은 기술을 민간으로 이전하는 시기가 늦어지면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서 사장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지난 5월 우주항공청 출범과 함께 우리나라 우주 정책은 국가기관 중심의 우주기술 확보에서 우주산업 생태계 조성과 우주기업 육성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데 방점이 찍혔다. 국가가 확보한 기술을 민간에서 산업화하는 데 좀 더 적극적이어야 할 시점이라는 게 업계 주장이다.

방효충 한국과학기술원(KAISTㆍ카이스트)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민간 우주개발 시대를 맞아 유사한 문제가 앞으로도 많이 생길 것”이라며 “미국에선 2000년대 초반에 민간 기업의 상업 우주 활동을 위한 법률이 정비됐는데, 우리나라도 연구용역을 통해 애매한 규정이나 법을 새롭게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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