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독 작곡가 윤이상, 동백림 사건 재심 개시 확정

박정희정부, 정치적으로 확대·과장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2년 복역

작곡가 윤이상.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정희 정권 당시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돼 2년간 옥고를 치른 작곡가 고(故) 윤이상(1917~1995) 사건에 대한 재심 개시가 확정됐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서울고법의 재심 개시 결정에 대한 검찰의 항고를 전날 기각했다. 이로써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 권순형)에 배당된 윤이상 재심 사건 심리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동백림 사건은 1967년 중앙정보부가 유럽에 있는 유학생과 교민 등 200여 명이 동베를린 북한 대사관을 드나들며 간첩활동을 했다고 발표한 사건이다. 서베를린에서 활동하던 윤이상은 국내로 이송돼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간첩 혐의는 무죄였지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독일연방공화국(서독) 정부의 항의가 있자, 박정희 정권은 2년 뒤 윤이상을 석방했다. 천상병 시인, 이응노 화백도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곤욕을 치렀다.

2006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위한 발전위원회는 박정희 정권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동백림 사건을 대규모 간첩사건으로 확대·과장했다고 밝혔다. 당시 조사 결과에 따르면, 1967년 6월 17일 독일에 파견된 중정 직원 등은 거짓말로 윤이상을 한국대사관으로 유인했다. 윤이상은 현지에서 2박 3일 조사를 받고 국내로 송환돼 바로 구금됐다.

시간이 흐른 뒤인 2020년 5월 유족들은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3년 만인 지난해 5월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직무 관련 죄를 범한 경우로 재심 사유가 된다"면서 재심을 결정했다. 검찰이 즉시 항고했지만 대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그대로 재심 개시가 확정됐다.

윤이상은 동백림 사건으로 고초를 겪은 뒤 서독으로 돌아갔고, 2년 뒤 서독 국적을 취득했다. 이후 1995년 사망할 때까지 다시는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유해는 2018년 국내로 돌아와 고향(연고지)인 경남 통영시의 통영국제음악당에 안장됐다. 통영국제음악당에선 매년 윤이상국제콩쿠르(첼로-피아노-바이올린 돌아가며 열림)가 개최된다.

이근아 기자 gale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