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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5가 고2 수학 배워"... 기승부리는 '초등 의대반' 잡을 법 없나

입력
2024.07.23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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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당국, 선행학습 유발 광고 학원 점검
의대 증원 여파 '초등 의대반' 전국 확산
처벌 규정 없어 시정 명령 등 행정 처분만

지난달 3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 의대 진학 홍보 문구가 새겨진 간판이 세워져 있다. 뉴스1

지난달 3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 의대 진학 홍보 문구가 새겨진 간판이 세워져 있다. 뉴스1

'의대 진학하기 위해서는 교과 선행 및 심화, 경시대회 문제를 통해 초격차 문제해결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수학 학원의 온라인 광고다. 이 학원은 초등학교 5학년과 6학년을 대상으로 6개월 만에 고등학교 수학까지 마치는 이른바 ‘초등 의대반’을 운영한다. 의대반에 들어가려면 레벨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테스트를 통과하면 하루에 2~3시간씩 경시대회 대비 고난도 문제를 풀고, 고등학교 수학 과정을 배운다. 7년에 걸친 정상 교육과정(초5~고2) 대비 14배 빠른 선행학습이다.

23일 교육부는 강남서초교육지원청과 함께 대치동 일대 초등 의대반 운영 학원을 특별 점검했다. 정부의 의대 증원으로 과도한 선행학습을 시키는 초등 의대반이 전국적으로 성행하는 데 따른 조치다. 대치동 일대에서 성행했던 초등 의대반은 비수도권 의대 증원이 확정되면서 부산, 대전, 대구 등 전국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현행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학원법)에 따르면 학원이나 교습소 등이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거짓·과장 광고를 하거나 등록 외 교습과정을 운영할 경우 시정명령을 내리거나 등록말소 등 행정 처분을 할 수 있다.

교육부는 지난 8일부터 19일까지 선행학습을 조장하거나 거짓·과장 광고로 의심되는 학원 광고 130건을 적발했다. ‘의대, 치대, 한의대, 약대, 수의대반 개강, 입시 성공은 초등학생 때 결정됩니다’, ‘초등 고학년 학생 대상 영재 의대반 신설’ ‘초등 의대관, 초등 3~6학년 의대 진학 기회의 창이 열립니다’ 등이다. 교육당국은 적발 결과를 관할 지역 교육청에 통보해 광고를 삭제하도록 행정지도할 방침이다.

당국의 단속에도 초등 의대반을 제재할 법적 근거가 없어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집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선행학습 거짓·과장 광고 적발 건수는 104건에 불과하다. 적발돼도 관할 교육청의 시정명령 등 행정지도에 그쳤다. 현행법상 과도한 선행교육 상품에 대한 제재 규정은 전혀 없다. 공교육정상화법에 '학원, 교습소 또는 개인과외교습자는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광고 또는 선전을 하면 안 된다'는 조항이 있지만 위반 시 처벌 조항은 없다.

백병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정책팀장은 “과도한 선행학습은 공교육 현장의 문제를 초래하는 교육 상품으로 규제해야 한다”며 “특히 초등학생이 고등학교 수학을 배우는, 학교급을 넘어서는 선행교육 상품에 대한 금지 규정 등이 포함된 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8월 말까지 전국 의대 입시 준비 학원을 대상으로 선행학습 유발 광고 등 학원법 위반 여부에 대한 특별 점검을 실시한다. '사교육 카르텔·부조리 신고센터' 홈페이지에서 '선행학습 유발 광고 학원 집중 신고 기간'도 이달 말까지 운영한다.

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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