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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자수성가 아이콘 카카오 아버지, 구속으로 최대 시련 겪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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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벤처 기업 신화를 써온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이 고난과 시련의 계절을 보내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 주가 시세 조종에 관여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23일 구속되면서다.
김 위원장은 끊임없는 도전 정신으로 한국 인터넷 업계를 이끌어왔다.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 고인이 된 넥슨의 창업주인 김정주 전 회장과 서울대 86학번 동기다.
김 위원장은 서울대 산업공학과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삼성SDS에 입사했다. 삼성SDS에서 유니텔을 만든 이후 퇴사한 뒤 1998년 온라인 게임 포털인 한게임커뮤니케이션을 설립했다. 이때 창업 자금 마련을 위해 한양대 앞에서 대형 PC방을 운영한 일화가 유명하다.
김 위원장은 2000년 한게임과 이해진 GIO의 포털 네이버컴(현 네이버)을 합병해 NHN을 만들었다. 네이버는 한게임 이용자들을 포털 사이트로 끌어들여 큰 성공을 거뒀다. 2007년 NHN을 떠난 김 위원장은 미국에서 애플의 성공을 본 후 모바일 앱에 관심을 가졌다. 이후 2010년 모바일 메신저인 카카오톡을 개발·출시해 성공 가도를 달렸다.
카카오는 고속 성장한 기업이다. 2014년 포털 다음과의 합병을 시작으로 계열사를 빠르게 늘려 대기업 반열에 올랐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17년 63개였던 카카오 계열사는 2023년 4월 기준 147개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국내 기업 중 SK그룹(198개)에 이어 두 번째로 계열사를 많이 거느리고 있다.
김 위원장은 한때 한국 최고 부자에도 올랐다. 2021년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의 당시 재산은 약 15조 원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보다 많았다. 김 위원장은 어린 시절 여덟 가족이 단칸방에 살았다. 다섯 형제 중 유일하게 대학에 진학해 학업을 한 '흙수저'여서 자수성가의 아이콘으로 불렸다. 또 불어난 재산만큼 사회공헌에도 적극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반면 김 위원장의 소극적 리더십과 측근 위주의 인재 기용이 카카오를 위기에 이르게 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김 위원장은 평소 권력이나 조직 장악력보다 자율성을 중요하게 여겨왔다. 카카오를 '공동체'로 부른 이유다. 특히 100명의 최고경영자(CEO)를 키우는 것을 목표로 계열사들이 스스로 투자를 유치하고 M&A나 기업공개(IPO)를 결정하도록 독려해왔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김범수 키즈'로 불리는 CEO들의 자율성만 지나치게 존중하다 보니 내부 견제가 이뤄지지 않고 조직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카카오모빌리티의 매출 부풀리기 의혹이나 카카오페이 경영진의 스톡옵션 먹튀 논란 등이 대표 사례로 꼽힌다. 골목 상권 침해 문제에도 불구하고 문어발식으로 계열사를 늘린 데 대한 우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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