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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궁기' 여름에도 피어나는 꽃들

입력
2024.07.24 04:30
27면

식물

편집자주

사람에게 따뜻함을 주는 반려동물부터 지구의 생물공동체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구체적 지식과 정보를 소개한다.

덕수궁의 배롱나무. ⓒ서효원

덕수궁의 배롱나무. ⓒ서효원

장마 기간이라 습하고 무덥다. 뜨겁고 끈적한 기운의 바깥 날씨로 주말에도 야외를 돌아볼 엄두를 내기가 쉽지 않은 요즘이다. 이맘때를 산과 들에 피는 꽃이 적다고 하여 '꽃궁기'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주변에 많이 심은 목련과 벚꽃, 철쭉과 이팝나무, 아까시나무꽃이 지천으로 피던 봄이 지나고, 녹음이 짙어져 꽃이 적게 보이는 때라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둘러보면 요즘 같은 날씨에도 도처에 피고 있는 꽃들을 만날 수 있다.

흐리긴 했지만 주말 한나절 비가 내리지 않는 틈을 타 회사가 있는 전주 인근 한 바퀴를 꽃을 찾아 돌아보았다. 혁신도시를 빠져나와 삼례 쪽 1번 국도에 오르니 도로변 양쪽이 오색의 꽃으로 현란하다. 도로변에 심은 배롱나무꽃이 흰색과 분홍색, 붉은색과 자주색으로 활짝 피고 있었다. 차를 멈출 수 없는 것이 아쉬웠지만 지금쯤 피어 있을 한옥마을 경기전과 덕수궁 석조전 앞 배롱나무꽃을 상상하며 천천히 차를 몰았다.

해안가에 핀 참나리. ⓒ서효원

해안가에 핀 참나리. ⓒ서효원

삼례 근처 JC에서 군산 방향 21번 국도와 새만금에서 이어지는 4번 국도를 타고 고군산군도로 향했다. 다리로 이어지는 섬들을 건너면서 산 아래 붉은색 꽃들이 언뜻언뜻 시야를 스쳐 지나친다. 참나리로 짐작하지만 차를 멈춰 확인할 수는 없었다. 선유도가 건너 보이는 바닷가 주차장에 차를 대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바다를 향해 피어 있는 붉은빛의 꽃무리는 참나리가 맞았다. 뜨거운 여름철 습한 해무와 거친 해풍을 겪고도 커다랗게 핀 참나리의 강인함에 경외감이 느껴질 정도다. 우리나라 전국 어디에서나 늠름한 꽃대와 큰 꽃이 피는 자태는 여름철 풀꽃의 왕이라 할 만하다.

무궁화. ⓒ서효원

무궁화. ⓒ서효원

차를 돌려 집으로 오는 귀갓길을 서전주 방향으로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의 말을 거스르고 콩쥐팥쥐로에 올라 완주 쪽으로 향했다. 구이면 사무소 인근부터 가로수로 많이 심겨있는 무궁화가 예년처럼 피고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언제 심었는지 십수 년은 되어 보이는 무궁화에서 올해도 어김없이 무수한 꽃이 피고 있었다. 삼복을 지나 초가을까지 한동안 거리풍경을 책임지는 무궁화에서 나라의 상징으로서가 아닌 꽃으로서도 대단한 기품이 느껴진다.

호우 예보에 근처 한옥마을 능소화를 보러 갈 계획은 접었다. 올여름 폭우 피해가 컸고, 또 멀리 태풍 소식에 걱정이다. 달포쯤이면 벼 이삭이 패기 시작한다. 웬만한 더위와 비에도 끄떡없이 꽃이 피고 풍년을 이루는 벼꽃의 강인함은 꽃 중에 최고가 아닐까?


서효원 식물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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