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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제 가노라"는 '아침이슬' 가사처럼...김민기라는 큰 '봉우리'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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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수'처럼 살고자 한 대한민국 문화계의 '봉우리'가 스러졌다.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는 '아침이슬'의 가사처럼 세상을 훌쩍 떠났다.
한국 최초의 싱어송라이터이자 서울 대학로 소극장 '학전'을 설립해 30년 넘게 이끈 공연 연출·기획자 김민기가 21일 암 투병 중 별세했다. 향년 73세. 고인은 지난해 가을 위암 4기 판정을 받고 치료를 시작했으나 암이 간으로 전이되고 최근 폐렴까지 걸리며 건강이 악화했다. 가수 박학기는 “일주일 전 전화통화 때만 해도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김민기는 1970~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청년문화의 상징이었다. 후배 문화예술인들이 '아버지' '스승'이라 부르는 한국 대중문화의 뿌리였으며, "내가 만든 (저항의) 노래가 아직도 울려 퍼지는 현실이 부끄럽다"고 개탄한 큰어른이었다. 그는 공연과 음악에 헌신하면서도 "나는 뒷것이다. 자꾸 앞으로 불러내지 말라"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 삶을 살았다.
1951년생인 김민기는 서울대 회화학과를 졸업한 뒤 1970년 친구 김영세와 포크 듀오 도비두를 결성해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청년문화 집결지였던 서울 명동 YWCA 회관 ‘청개구리의 집’에서 노래하며 ‘아침이슬’ ‘가을편지’ ‘꽃 피우는 아이’ 등을 만들었다.
김민기는 '아침이슬'을 민주화운동을 염두에 두고 쓰지 않았으나, 투쟁 현장에서 널리 불리면서 창작자의 의도를 초월해 대한민국 현대사를 상징하는 노래가 됐다. 고인은 언론 인터뷰에서 “내 몸에서 나간 것의 백 배가 되어서 돌아오면 버겁다"며 몸을 낮추었다.
1971년 가수 양희은이 먼저 부른 '아침이슬'은 대학생들 사이에서 퍼져 나갔고, 유신정권은 ‘건전가요 서울시문화상’까지 받은 이 노래를 구체적 사유도 없이 금지시켰다. 고인은 경찰, 보안사, 안기부 등에 연행돼 고초를 겪었다. 정권의 탄압 속에서도 이 노래는 끈질기게 생명력을 이어갔다.
김민기는 박정희 정권에 '요주의 인물'로 찍혀 발표하는 노래마다 금지곡 판정을 받았다. 이후 그는 정부의 감시와 탄압을 피해 노동현장에 뛰어들어 노래 ‘상록수’와 노래굿 ‘공장의 불빛’ 등을 만들었다. 198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해 낙담한 선수들을 위해 ‘봉우리’를 작곡해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라는 가사로 위로하기도 했다. 1978년 발표한 ‘공장의 불빛’은 당시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낸 다큐멘터리라는 평가를 받는다. ‘아침이슬’은 1987년 6·10 민주항쟁 이후 해금됐고, 고인은 그제서야 이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김민기는 1991년 음반 계약금을 쏟아부어 180여 석 규모의 공연장 학전을 대학로에 열었고, 라이브 콘서트 문화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일궈냈다. ‘학전(學田)’이란 이름은 ‘배움의 밭’, 즉 인재들의 ‘못자리’가 되기를 바라는 뜻으로 지었다. 수많은 배우와 음악가가 학전을 거쳐갔다. 배우 황정민 설경구 김윤석 조승우 이정은 강신일 장현성, 그룹 들국화, 가수 김광석 안치환 이소라 장필순 윤도현 나윤선, 작곡가 정재일 등 700여 명의 예술인을 배출하며 한국 대중문화의 산실이 됐다.
김민기가 기획·연출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1994년 초연 이후 8,000회 이상 공연되며 대표적인 국내 창작 뮤지컬로 자리 잡았다. 고인은 어린이·청소년 연극에 깊은 애정을 보였다. ‘우리는 친구다’(2004)와 ‘고추장 떡볶이’(2008) 등 어린이를 위한 공연을 끈질기에 무대에 올렸다. “우리의 미래는 어린이”라는 소신이 그의 동력이었다.
학전은 오랜 재정난에 고인의 건강 악화까지 겹쳐 개관 33년 만인 지난 3월 폐관했다. 문을 닫기에 앞서 이곳을 거쳐간 50여 명의 배우, 가수, 예술인이 모여 ‘학전, 어게인 프로젝트’ 공연을 열었다. 김민기는 지난해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죽는 날까지 학전을 운영하려 했는데,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며 깊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학전은 지난 17일 건물을 리모델링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이 운영하는 어린이·청소년 중심 공연장 ‘아르코꿈밭극장’으로 재개관했다. 고인은 ‘학전’이란 이름을 쓰지 않도록 했다. 학전이 정치∙경제적으로 이용되지 않기를 바라는 뜻에서였다. ‘지하철 1호선’도 다시 만나기 어렵게 됐다. 고인의 조카인 김성민 학전 팀장은 “김민기가 연출하지 않는 ‘지하철 1호선’은 없다”면서도 “많은 분들이 염원한다면 학전의 40주년, 50주년이 되는 날 (기념 공연을) 할 수 있도록 유족과 이야기해보겠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미영씨와 2남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학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24일 오전 8시, 장지는 천안공원묘원이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학전 측은 “발인 당일 학전 극장과 마당을 한 바퀴 돌고 장지로 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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