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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 중에도 "김광석 추모공연 준비 잘해라"...김민기는 끝까지 '뒷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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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음악 역사의 봉우리 같은 존재. 후배들에겐 아버지이자 스승 같았던 분."
암 투병 끝에 별세한 김민기 학전 대표에 대해 가수 박학기가 22일 한국일보에 전해온 말이다. 슬픔에 빠진 문화예술인들은 고인이 그들의 삶과 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다시 한번 돌아봤다. 박학기는 "김 선배는 사회 부조리에 맞서 말이 아닌 '상록수' '작은 연못' 등의 노래로 투쟁한 '한국의 밥 딜런'"이라고 했다. 박학기는 1991년 고인이 설립한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의 올해 3월 폐관을 앞두고 마지막 공연 '학전 어게인'을 기획했다.
이수만 전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는 한국일보에 "역경과 성장으로 점철된 혼돈의 시대에 대한민국에 음악으로 청년 정신을 심어 준 김 선배께 마음 깊이 존경을 표하며 명복을 빈다"고 애도했다. 고인의 서울대 후배인 그는 학전이 문을 닫기 직전인 지난 1월 "학전 정리에 쓰라"며 1억5,000만 원을 극장에 전달했다.
문화예술인들은 김 대표를 '아버지'이자 '스승'으로 불렀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음악감독인 작곡가 정재일은 콘서트 현장 등에서 김민기를 "음악의 아버지"라고 표현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콘서트에서 마지막 앙코르곡으로 김민기의 육성에 라이브 연주를 덧입힌 '아름다운 사람'을 들려줬다. "어린 시절 여러 음악을 찾아 방황하던 시기에 나를 새로운 음악의 세계로 이끈 예술가"라고 고인을 소개하면서다.
올봄 전파를 탄 SBS TV 다큐멘터리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에서 학전 출신 배우 이황의는 "허우적대다가 (고인에게) 구조당한 느낌"이라고 인연을 소개했다. 학전을 만들 때 김민기는 당시 관행을 깨고 모든 출연자, 스태프와 정식계약을 했다. 이황의는 "그때 극단에선 상상도 못 할 4대보험을 가입해 주셔서 은행 전세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고인이 만든 학전의 배우 교육 시스템은 K팝 아이돌 연습생 시스템에 견줘도 될 만큼 체계적이었다. '천만 배우' 황정민을 비롯한 많은 배우들이 "배우로서 배워야 할 모든 것을 학전에서 배웠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에서 배우 김대명은 "오디션에 합격하면 11주 계획표에 따라 노래와 대본 연습을 하고 동선을 짰고, 마지막 11주째는 리허설과 공연을 하고, 창까지 배웠다"며 "기숙학원처럼 학전에서 배운 게 (배우로서) 거의 다였다"고 말했다.
'학전 어게인 콘서트' 마지막 20회 무대에 선 배우 황정민이 가장 먼저 떠올린 것도 김민기의 가르침이었다. 그는 "열정만 가득했던 20대 빨간 얼굴을 가진 아이에게 기본을 강조하신 김민기 선생님의 가르침은 짜증 나고 지겨운 일이었을 것"이라며 "그 교훈이 지금 배우 활동의 원동력이 되리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고 말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문화예술인들의 추모가 이어졌다. 가수 윤도현은 "김 선생님은 제게 아버지 같은 존재이자 존경하는 음악가"라며 "학전도 선생님도 대학로도 많이 그리울 것"이라고 썼다. 가수 이적은 김민기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나의 영웅이여, 감사했습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적었다. 가수 김광진은 "대학 시절 저희의 많은 부분을 이끌어 주신 (고인의) 음악들에 감사드린다"며 "음악도 삶도, 저희한테 주셨던 따뜻한 격려도 기억한다"고 했다.
뒤에서 배우와 가수를 받쳐주는 '뒷것 인생'을 산 고인은 마지막 가는 길도 '뒷것'의 길을 택한 듯했다. 유족과 학전 측은 조의금과 조화를 사양했다. 학전 관계자는 "선생님은 배우 설경구, 장현성이 와도 '밥은 먹었냐'고 하실 분"이라며 "(평소 성격을 미뤄) 결정했다"고 말했다. 고인과 가까웠던 사람들이 빈소 안팎에서 말을 아낀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학전 기획자 출신 공연 관계자는 “고인을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 그에 대해 언급하는 게 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에서 문화평론가인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는 "김민기는 마음먹고 돈을 벌려고 했으면 얼마든지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사람"이라며 "그의 자기원칙, 결벽증 같은 부분 때문에 존경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고인은 지인과의 마지막 통화에서도 헌신하는 뒷것의 태도를 놓지 않았다. 박학기는 "2주 전 마지막으로 통화했을 때 항암 치료로 힘들어하면서도 (김)광석이 추모 공연을 김광석추모재단과 잘 진행해 달라'는 부탁을 하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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